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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궁박물관] 궁궐건축

younghwan 2010. 11. 16.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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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궁박물관에는 경복궁을 비롯한 조선시대 궁궐을 수리, 중건하면서 발굴된 각종 건축부자재들을 전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궁궐 건축자재로 각종 기와파편과 궁궐 추녀마루를 장식했던 잡상들과 각종 주려 등이 있다. 경복궁에서 발견된 청기와 파편들로 미루어 볼 때 조선전기에는 우리나라의 궁궐도 중국 자금성의 유리기와처럼 청기와를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창덕궁 편전인 선정전은 궁궐건물 중 유일하게 유리기와를 얹은 건물이다. 이 건물의 청기와를 봤을때는 선정전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청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오해를 했는데, 고궁박물관에서 왜 우리나라 궁궐건물에는 유리기와를 얹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경복궁 근정문을 장식하고 있는 잡상들 중 삼장법사(사화상)을 묘사한 잡상, 불길한 기운을 막기 위해 지붕의 추녀마루 끝에 앉히는 잡상들이다. 서유기의 인물과 토신으로 이루어지며 대개 홀수로 배열하였다. 일반적으로 법전이 근정전에는 7개의 잡상이 올려져 있고, 나머지 건물이나, 도성 문루에는 5개의 잡상이 올려져 있다. 예외적으로 근정전에는 9개의 잡상이 올려져 있다. 중국 자금성의 경우는 대체로 우리나라보다 2개씩 많이 얹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경복궁 근정문 잡상 중 손오공, 저팔계, 천산갑, 이구룡, 마화상, 사오정


용두, 경복궁 근정문 내림마루 끝에 올렸던 용머리 모양의 장식이다.


청기와 토수, 창덕궁 선정전에서 수습된 것으로 추녀 끝에 끼웠던 것이다. 선정전은 푸른색 기와를 덮은 청기와 건물이다.


운룡문 수막새편과 봉황문 수막새, 경복궁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수기와편과 수기와
 

운룡문 암막새편과 암기와편


용문 암막새편과 용문 암막새, 처마 끝에 걸리는 장식기와로 내림마루나 추녀마루 끝을 마감하기위한 망와로도 쓰였다.

청기와
청기와는 점토로 기왕 형태를 빚은 후 염초로 만든 유약을 발라 푸른 빛깔이 나도록 구운 것으로, 경복궁 침전 지구의 발굴 조사에서 수기와.암기와는 물론 막새.잡상.토수 등의 청색기와 파편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전의 경복궁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조선 초기만 해도 궁궐의 주요 전각과 사찰 등의 지붕을 청기와로 화려하게 덮은 사실이 실록 등에 다수 전한다. 그러나 공정이 까다로운 청기와를 지붕에 빼곡히 덮을 경우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물을 허비한다 하여 논란도 적지 않았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광해군 재위기간에 인경궁을 창건하면서 청기와를 얹은 것을 제외하고는 경제적.정치적 이유로 널리 사용되지 못하였다. 현존하는 궁궐 건축 중에서는 유일하게 창덕궁의 선정전이 청기와를 덮고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어좌 봉황무늬 보개장식


어좌 용무늬 보개장식

어좌 천장장식. 보개는 궁궐 정전이나 편전의 어좌 위에 놓여 왕의 공간을 장식함으로써 왕의 신성과 위엄을 강조하였다. 보개에는 왕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인 용과 봉황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조각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경회루 연못 출토 용. 경회루 연못 준설작업 도중에 출토된 것으로,  경회루선도에 의하면 화재 방지를 위해 청동으로 만든 용 두마리를 연못에 넣었다고 한다.


상서로운 동물 조각상.

창덕궁에 보관되어 있던 것으로 궁궐 계단의 난간 역할을 한 동물상으로 추측된다. 돌계단을 만들 때 계단의 면에 해태나 용 등을 조각하여 경사지게 올려놓는 돌을 소맷돌이라고 하는데, 생김새로 보아 이와 같은 역할을 했던 부재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건물 외부에 설치되기 때문에 돌로 만들어지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서수상은 나무로 만들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나무로 만들고 표면에 단청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아 실내 계단에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고궁박물관>


덕수궁 종이주련(복제품)

중화전 뒤편에 위치한 석어당.즉조당.준명당에 붙어 있던 종이 주련이다. 석어당과 즉조당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경복궁을 대신해 선조가 임시 어소로 사용했던 곳으로 훗날 임금들이 국난의 어려운 시기를 잊지 않고 상기하고 화려한 장식을 삼갔다. 1897년 지어진 준명당과 함꼐 1904년 화재로 소실된 후 새로 중건되었다. 이 곳 경운궁에 거처해 있던 고종의 장수와 대한제국의 번영을 기원하는 글귀를 종이 위에 쓰고 대청의 기둥 안쪽에 마주보며 대련하도록 발라 놓았다. <출처:고궁박물관>


궁궐의 주련은 서로 짝이되는 글귀를 쓰거나 판자에 음각 또는 양각으로 새겨 건축물의 기둥에 붙여 고정시킨 것을 말한다. 건축물을 꾸미는 장식적인 요소일 뿐 아니라 좋은 글귀와 글씨는 감상의 대상이 되었다. 주로 시 구절이나 고전 등에서 좋은 문구를 발췌하거나 창작하였는데, 자연의 풍경을 읊거나 장수와 복되고 건강한 삶을 기원하는 글귀 또는 교훈이 되는 문구 등을 당시에 글 잘 쓰는 명사가 직접 쓰거나 유명한 서예가의 필적을 본떴다. <출처:고궁박물관>


창덕궁 수리공사 의궤. 인조반정(1623년)에 불탄 창덕궁을 수리한 기록으로 광해군이 창건한 인경궁의 재목, 기와 등을 철거하여 창덕궁을 수리하였다.


선원전 중건공사 의궤, 선원전은 임금의 초상을 모시는 건물로 이 의궤는 경복궁과 창덕궁 선원전에 각각 1실을 증건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영선사 현판. 영선사에 걸었던 현판으로 영선사는 궁내부에 소속되어 궁궐의 건축.수리를 맡은 관청이다.


옛 경복궁 평면도. 경복궁 중건 이전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경복궁 교태전 평면도


궁궐지. 조선시대 궁궐에 대한 기록이다. 경복궁.창덕궁.창경궁.경희궁의 전각 명치.위치.연혁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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