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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유적_왕릉

[서울 고궁박물관] 자격루를 복원한 물시계

younghwan 2010. 12. 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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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궁박물관에는 몇년전에 뉴스에 크게 등장했던 조선시대 물시계인 자격루를 복원한 물시계가 전시되어 있다. 조선 세종때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는 정해진 시간에 종과 징.북이 저절로 울리도록 한 물시계로 국가의 표준시로 운영되었던 것이다. 워낙 기계장치가 복잡하고 정밀해서인지 오래 사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전해오는 국보 229호로 지정된 덕수궁에 전시된 보루각 자격루는 그 후 중종때 만들어 진 것이라고한다. 중국 북경에서 표준시를 정하기 위한 물시계는 자금성 북쪽편 고루에서 볼 수 있는데,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웅장함에는 자격루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덕수궁에 전시된 자격루는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던 기계장치들은 남아 있지 않고, 기계장치에 물을 공급해 주던 물통만이 남아 있는데, 이를 근거로 해서 2000년대에 여러 과학자들이 참여하여 만든 것이 덕수궁에 전시된 물시계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만든 것이지만 실물을 보면 원래의 보루각 자격루에 비해서 그 제작수법이 상당히 떨어지고 약간 조잡하다는 느낌마저 주기도 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옛날 문화재를 복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옛날만큼 잘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대상을 만드는 원리를 이해하고 있더라도 실제로는 숙련된 기술자들을 구할 수 없어서 그런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옛것을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만은 높게 평가 해 줄 필요은 있는 같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조선시대 자격루을 복원한 물시계. 전체를 대부분 목재로 복원하고 있으며, 덕수궁의 보루각자격루와는 달리 물을 공급하는 물통은 목재로 만든 누각위에 올려 놓고 있다. 현대에는 이런 종류의 구조물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기술자가 없어서 그런지 약간 엉성하다는 느낌을 준다.


물시계는 크게 물을 공급해주는 물통을 올려놓는 자격루와 시간을 측정해 주는 물받이통, 물받이통의 잣대의 변화에 따라서 정해진 시간에 징이나 북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장치인 시보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덕수궁에 전시된 보루각자격루에서 알 수 있듯에 물을 공급해 주는 물통은 큰물통에서 작은 물통까지 3단으로 되어 있다.


물통에 받은 물의 수위가 변해감에 따라서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하는 잣대를 설치한 물통이다. 덕수궁에 설치된 물통과 복원한 물시계의 물통을 비교해 보면, 원리는 똑같지만 만드는 제작수법이 상당히 떨어짐을 알 수 있다.


물받이통. 옛날 것은 전시만 해 놓고 있고, 실제로는 프라스틱 물통을 사용하고 있다.


남아 있는 유물이 없어서 자료와 기계작동 원리에 대한 추론으로 구현해 놓은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는 장치. 징과 북, 종을 울리도록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신호를 기준으로 해서 종루에 걸린 종을 울려서 성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준다.


시간을 알리는 방법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쇠구슬이 굴러가서 인형이 종이나 북을 치도록 하는 기계장치이다. 이는 서양에서 차임벨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쇠구슬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표시해 주기도 했다는데 이런 세세한 내용까지는 복원하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을 알려주는 종


시간을 알려주는 인형 아래에는 기계장치가 들어 있을 것 같은데 문이 잠겨 있다.


조선시대 표준시를 정해주는 중요한 시설답게 규모가 크고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덕수궁에 전시된 물통만 남아 있는 국보229호인 보루각 자격루


북경 자금성 북쪽편에는 북경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거대한 누각인 고루와 종루가 있는데, 그 중 북이 설치된 고루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인 비루가 설치되어 있다. 비루에서 정해진 시간을 알려주면 고루를 지키던 병사들이 시간에 맞게 북을 울리고, 그 북소리를 듣고 종루에 종을 치는 순서로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서울 종로에도 시간을 알려주던 종이 설치된 종루가 있다. 그 원리는 북경의 경우와 같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물시계는 물의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서, 삼국시대부터 나라의 표준 시계로 사용하였다. 조선 세종 16년(1434) 장영실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종과 징·북이 저절로 울리도록 한 물시계가 처음 제작되었으나, 오래 사용되지는 못하였고, 중종 31년(1536)에 다시 제작한 자격루의 일부가 현재 남아 있다. 물시계의 원리를 보면, 맨 위에 있는 큰 물그릇에 넉넉히 물을 부어주면 그 물이 아래의 작은 그릇을 거쳐, 제일 아래쪽 길고 높은 물받이 통에 흘러든다.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떠 있는 잣대가 점점 올라가 미리 정해진 눈금에 닿으며, 그곳에 장치해 놓은 지렛대 장치를 건드려 그 끝의 쇠 구슬을 구멍 속에 굴려 넣어준다. 이 쇠구슬은 다른 쇠구슬을 굴려주고 그것들이 차례로 미리 꾸며놓은 여러 공이를 건드려 종과 징·북을 울리기도 하고, 또는 나무로 만든 인형이 나타나 시각을 알려주는 팻말을 들어 보이기도 한다. 지금 남아 있는 물시계는 쇠구슬이 굴러 조화를 이루던 부분이 없어진 채, 물통 부분들만 남아 있다. 청동으로 된 큰 물그릇은 지름 93.5㎝, 높이 70.0㎝이며, 작은 물그릇은 지름 46.0㎝, 높이 40.5㎝이다. 작은 물그릇이 놓였던 돌 받침대는 지금 창경궁 명정전 뒤에 2개가 남아 있다. 현재 중국 광동에 남아 있는 명나라의 물시계보다 조금 늦게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규모가 크고 만듦새가 훌륭하여 매우 귀중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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