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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건축(불전_요사)

부여 무량사 극락전 (보물 356호), 삼국시대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불전

younghwan 2011. 1. 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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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무량사는 통일신라 말기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세한 내력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만 조선초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 선생이 말년에 이 사찰에 머물다 세상을 떠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량사는 부여군에 속해 있는 만수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지만 실제로 부여읍에서는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보령시와 경계를 이루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무량사 극락전은 우리나라 사찰 불전 중 삼국시대 지어진 황룡사나 미륵사에 있었던 큰 불전인 미륵불을 모신 장륙전과 비슷하게 외부에서는 2층, 내부는 단층으로 이루어진 불전이다. 남아 있는 불전 중 비슷한 형태로는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대웅전을 들 수 있다. 이런 사찰들은 대부분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대형사찰들로 전란과 조선시대 억불숭유 정책을 피해갈 수 있었던 사찰들이다.

 이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기단은 다른 사찰에 비해서 그리 높게 쌓지는 않고 있다. 지붕을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1층과 2층에 화려한 공포로 장식하고 있는 다포계 건축물이다.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대웅전과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사찰로 보이며 이들 사찰들은 2차례의 전란 중에 많은 사람이 피신할 수 있도록 했거나, 승병을 파견하는 등 전란 극복에 많은 기여를 했기때문에 후대에 보상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량사는 후대 집권세력인 사림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생육신 중 한사람인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이었기때문에 큰 규모의 불전을 지을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부여 무량사 극락전. 이 건물은 형태는 미륵불을 모신 삼국시대 금당인 장류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불전내부에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아미타불을 내세를 기원하는 상징성이 있는 부처의 모습으로 아미타불을 모신 불전을 극락전, 무량수전이라 부른데 주로 이름난 산중에 있는 사찰에는 극락전이 주불전인 경우가 많다.


이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밖에서보면 2층건물처럼 보인다. 조선시대에 지은 사찰 건물 중에는 규모가 상당히 큰 편에 속한다.


건물의 기단부는 그리 높지 않게 만들어 놓고 있다. 5칸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가운데 칸은 넓고, 양쪽에 있는 칸능 좁게 만들어 졌다.


건물 가운데 문살과 기둥의 주련


제일 바캍쪽 칸의 문살과 기둥의 주련. 현재는 건물 옆면에 난 작은 출입문으로 이 불전을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이 건물의 공포는 다포식이며, 공포를 아주 촘좀하고 화려하게 짜 놓고 있다.


건물 네 모서리 추녀에는 활주를 세워 받쳐두고 있다.


무량사 극락전 2층는 3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팔작지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날렵한 느낌이다.


옆면에서 본 2층. 원래는 창문을 설치되어 빛이 들어오도록 되어 있었는데, 나무로 막아 놓고 있다고 한다. 2층의 공포는 아주 촘촘하게 짜여져 있다.


화겨한 느낌을 주는 앞면에 비해서 뒷면은 약간 밋밋한 느낌을 준다.


부여 무량사의 금당배치는 석탑이 중앙에 있고, 뒷편에 금당이 있는 삼국시대 가람배치의 모습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무량사 천왕문을 들어서면 볼 수 있는 경내의 모습. 석등,오층석탑,극락전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며, 무량사에는 요사채는 많이 있지는 않지만, 오층석탑과 극락전이 있는 마당은 다른 사찰에 비해서 상당히 넓은 편이다.



무량사는 신라 말에 범일이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으나 자세한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신라말 고승 무염대사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었으며, 김시습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않는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위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다. 아래층 평면은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기둥 사이를 나누어 놓았는데 기둥은 매우 높은 것을 사용하였다. 위층은 아래층에 세운 높은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4면의 벽면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는 그 얼마되지 않는 낮은 벽면에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창문을 설치했었는데 지금은 나무판 벽으로 막아놓았다. 아미타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이 불전은 조선 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낸 불교 건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수한 건물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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