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양양 선림원지 승탑(보물 447호)

younghwan 2011. 1. 4. 15:59
반응형


 양양 선림원지는 양양에서 백두대간을 넘어서 서울로 가는 중요한 교통로인 구룡령을 넘어가기 직전에 위치한 절터이다. 선림원은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가 창건한 사찰로 부근의 진전사와 함께 우리나라에 처음 선종을 도입한 사찰 중의 하나로 보인다. 선림원으니 10세기경에 산사태로 매몰되었던 것을 1960년대에 발굴 복원한 것이라 한다.

 선림원지 부도는 일제강점기에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1965년에 각 부재를 수습하여 복원한 것으로 지금은 기단부만 남아 있다. 원 위치는 뒷산 중턱의 50m 쯤 올라간 곳이었다고 한다. 이 부도의 네모난 지대와 8각의 아래받침돌은 같은 돌로 2매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받침돌 8각의 각 면에는 각기 안상이 1구씩이 있으며, 안상안에 교대로 사자 1쌍씩 4쌍이 새겨져 있다. 아래받침돌 위에 연화대석이 놓여 있고, 그 위에 간주 모양의 중간받침돌과 원형평면의 윗받침돌이 한돌로 만들어져 놓여 있다. 중대석 표면에 용이 새겨진 운룡문이 있는데 이는 부도 중대석에 용이 새겨진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선림원지 부도는 통일신라시대인 88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승려의 사리탑인 부도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여겨진다. 현재 탑신과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고 기단부만 있는데, 우리나라 조각기술의 전성기인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부도라서 그런지 석재의 재질도 우수하고 그 조각수법도 상당히 세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도탑의 아래받침돌은 팔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4면의 안중에 사자가 한쌍씩 새겨져 있다.


중간받침돌에는 용과 구름무늬를 새겨 놓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남아 있는 용무늬를 새겨놓은 부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기단부 중간 받침돌에 새겨진 용과 구름무늬


윗받침돌에는 8장의 연꽃잎을 새겨 놓고 있다.


선림원지 승탑. 우리나라에는 많은 승려들의 사리탑인 부도가 남아 있는데, 그 제작수법의 수준을 보면 통일신라말기에서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것이 조각수법의 수준이 상당히 높음을 알 수 있다.


선림원지 절터 뒷편에 있는 부도




선림원은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가 연 절로, 1948년 절터에서 연대가 804년으로 적힌 신라시대 범종이 나오면서 창건연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부도는 일제시대에 완전히 파손되었던 것을 1965년 11월에 각 부분을 수습하여 현재의 자리에 복원한 것으로 기단부(基壇部)만이 남아있다. 기단의 구조로 보아 8각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부도임을 알 수 있는데, 신라 때에 돌로 만든 부도는 대부분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정사각형의 바닥돌 위로 기단의 아래받침돌·중간받침돌·윗받침돌을 올렸다. 아래받침돌은 2단인데, 아래단이 바닥돌과 한 돌로 짜여진 점이 특이하다. 윗단에는 두 겹으로 8장의 연꽃잎을 큼직하게 새기고, 그 위에 괴임을 2단으로 두툼하게 두었다. 중간받침돌은 거의 둥그스름한데 여기에 높게 돋을새김해 놓은 용과 구름무늬의 조각수법이 매우 웅장한 느낌을 준다. 윗받침돌에 2겹으로 새긴 8장의 연꽃잎은 밑돌에서의 수법과 거의 같다.기단의 위아래를 마무리하는 수법에서 뛰어난 안정감을 보이고 있는 부도로, 기단 아래받침돌 밑을 크게 강조한 것은 8각형의 일반적인 부도양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정확한 부도의 건립시기는 절터에 남아있는 홍각선사비와 이 부도가 홍각선사의 부도인 점으로 미루어 신라 정강왕 1년(886)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