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귀부 및 이수 (보물 446호)

younghwan 2011. 1. 9. 16:25
반응형


 양양에서 구룡령을 넘어가는 56번국도 근처에 있는 미천골자연휴양림 내에는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옛 절터인 선림원지가 있다. 선림원지는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가 창건한 사찰로 대표적인 선종의 수행도량이었다고 한다. 선림원지에는 3층석탑과 석등, 부도, 홍각선사탑비 등이 남아 있으며, 신라범종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이다.

 이 곳 선림원지에 남아 있는 유물 중 홍각선사탑비는 신라 정강왕때인 886년에 홍각선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워진 탑비이다. 이 탑비는 조선시대 이전에 파손되어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던 것을 최근 몸돌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귀부는 용의 머리가 직립한 모습이고, 비좌에는 구름무늬가 둘러져 있다. 이수에는 "홍각선사비명"이라는 전액을 양각으로 새기고 주위에는 구름과 용이 새겨져 있는데 전형적인 통일신라말기 탑비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선림원지 절터 한쪽편에 있는 홍각선사 탑비.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귀부는 화강석으로 만들었는네 조각수법이 세련되었으며 원래의 모습이 크게 훼손되지 않고 있어서 당시의 석재 가공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귀부는 거북의 몸에 용의 얼굴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탑비 귀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비몸을 세우는 자리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뒷편에서 본 이수. 거북등껍질을 육각무늬로 잘 묘사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다. 조각수법이 생동감있고 세밀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비몸은 파손되어 조각편만 일부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글씨는 왕휘지의 글씨를 모아서 새긴 것이라고 한다.


이수는 구름과 용을 새겨놓은 운용문으로 장식하고 있으며 중앙에 비의 주인공이 홍각선사임을 밝히는 글씨가 있다.


옆면과 뒷면에 본 이수. 용이 엉켜있는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선림원지 석등과 탑비.


선림원지 홍각선사 탑비


탑비와 석등은 선림원지 옛절터 한쪽편 축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원래의 위치는 아닌 듯 하다.



홍각선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한 탑비이다. 선림원터에 있으며, 통일신라 정강왕 원년(886)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비는 일반적으로 비받침인 거북머리의 귀부(龜趺)와 비몸, 비머리돌로 구성되는데 이 비는 비받침 위에 바로 비머리가 올려져있다. 비문이 새겨지는 비몸은 파편만 남아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던 것을 2008년에 비신을 새로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비받침의 거북은 목을 곧추세운 용의 머리모양으로 바뀌어있고, 등에는 6각형의 무늬가 있다. 등에 붙어 있는 네모난 돌은 비몸을 세우는 자리로 연꽃무늬와 구름무늬가 새겨 있다. 비머리에는 전체적으로 구름과 용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었고, 중앙에 비의 주인공이 홍각선사임을 밝히는 글씨가 있다. 홍각선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비의 파편과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경서에 해박하고 수양이 깊어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비문은 운철이 왕희지의 글씨를 다른 곳에서 모아 새긴 것인데 신라 후기에 왕희지의 글씨가 보급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출처:문화재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