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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공주 포정사문루와 옛 충청감영터

younghwan 2011. 4. 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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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감영은 충청도관찰사가 근무하던 곳으로 원래 청주에 있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부터 공주로 옮겼으며, 공산성을 비롯하여 여러 장소로 옮겼다가 숙종때인 1603년 이후부터 현 공주사대부속고등학교가 있는 자리에서 200년동안 있었다고 한다. 구한말 공주감영에는 49동 481칸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일제강점기에 도청이 들어서면서 상당수 건물들이 없어지고, 충청관찰사가 근무하던 선화당과 구한말에 지어진 공주목 동헌, 그리고 정문인 포정사 문루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포정사문루는 조선시대 공주에 있었던 충청감영 정문이다. 아래층에는 큰 문을 달아서 감영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로, 2층은 누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까지 공주사대부고 정문으로 사용했던 것을 공주군청으로 옮겨졌다가 199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충청감영 정문인 포정사 문루.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문루의 형태를 하고 있다. 보통 지방관아의 출입문인 아문의 문루는 앞면 3칸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감영 출입문이라서 그런지 5칸의 문루를 사용하고 있다.


감영 출입문으로 사용되는 포정사문루 1층에는 3개의 출입문이 있으며, 가운데 출입문은 크고 양쪽은 문은 작게 만들었다.


안쪽에서 본 문루 출입문, 성문과는 달리 견고하게 만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문루 2층은 넒은 누각으로 되어 있다. 연회를 베푸는 누각이라기보다는 잠시 문루에 올라사 관내를 한번 둘러보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루의 난간과 기둥


포정사 문루 현판. '충청도포정사'라고 적혀 있다.


옆에서 본 문루


감영내에서 보이는 문루의 모습


포정사 문루


원래 포정사문루가 있었던 충청감영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공주사대부속고등학교.


공주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남아 있는 옛 충청감영 건물 초석들

 


건물 초석만이 이 곳이 옛 감영터임을 말해주고 있다.


 

충청감영 포정사 문루


포정사문루 앞으로는 공주 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충청감영터
조선후기 충청도의 관찰사가 집무던 보던 충청감영이 있던 곳이다. 원래 충청감영은 청주에 있었는데,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전략적 요충지로써의 공주가 재인식 되면서 이 곳 공주로 옮겨왔다. 공주로 옮겨온 후 감영터는 몇 차례 이전을 거듭하였다. 감영이 옮겨온 첫 해에 감영터가 어디에 있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1603년 두번째 관찰사로 부임해 온 유근에 의해 공산성 안에 감영이 설치되었다가 면적이 좁다는 이ㅠ로 이듬해에 평지의 구영으로 옮겨졌다. 그 후 공산성과 제민천변을 몇자례 오가다 마침내 1707년 봉황산 기숡의 현 위치에 자리하여 1932년에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옮겨질 때까지 200여년간 충남 감영 및 충남 도청으로 존속하게 되었다. 감영에는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을 비롯하여 정문이 포정문 등 많은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규모가 점점 커져 공산지가 발간되는 1859년에는 49동 481칸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관련 유물만 교정 곳곳에 남아 있다. <출처:공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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