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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서울 석파정 별당, 흥선대원군 별장

younghwan 2011. 3. 3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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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검정 삼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흥선대원군 별장이었던 석파정의 별당 건물로 원래는 창의문 바깥쪽 바위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1958년엔 서예가 손재형이 현재의 위치에 자기집을 지으면서 옮겼다고 한다. 석파정은 원래 김흥근이라는 사람이 소유했던 별장을 고종 즉위 후 흥선대원군이 강제로 빼았다시피하였던 곳으로 한양도성의 북소문인 창의문 밖 바위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북악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구한말 대표적인 정자건축물이다.

석파정 별당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 집은 원래 서예가 손재형이 1958년에 지은 집으로 지금은 석파랑이라는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 별당 건물은 구한말에 지어진 건물로 측면을 구운 벽돌로 쌓은 중국풍의 건물로 그 규모는 앞면 4칸 정도로 그리 큰 건물은 아니지만 당대의 장인들이 고급 자재로 지은 구한말 상류층의 취향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세검정 삼거리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석파정 별당 전경.


석파정 별당 건물은 식당으로 운영되는 석파랑 마당을 통해서 올라가거나, 뒷편 주차장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다. 이 곳 세검정은 바위가 많은 지역으로 이 저택은 자연 환경을 잘 활용하여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놓고 있다.


구안말에 중국풍으로 지어진  석파정 별당 건물은 중앙에 대청이 있고, 양쪽으로 방이 있는 'ㄱ'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구한말에 크게 유행했던 툇마루 난간. 중앙 대청마루에는 문을 달아 놓거 있어서 일반적인 주택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측면은 구운벽돌을 쌓아서 만들었으며, 우리나라 전통한옥에서는 볼 수 없는 중국풍의 건축양식이다.


중국집 유리창같은 느낌의 창문


서예가 손재형이 이 곳으로 옮기면서 나름 운치있는 장소에 별당을 세워놓고 있다. 지금은 개천이 흐르지는 않지만, 별당건물에서 내려다 보는 세검정 일대의 경치가 아름다웠을 것 같다.


주자장에서 본 석파정 별당


별당 한편에 쌓아 놓은 옛날 기와조각들


석파정 별당에서 내려다 본 이 저택의 정원. 이 저택 바깥쪽으로는 지금은 도로가 있지만 원래는 개천이 흘렀을 던 것 같다.


일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 한옥건물로 아마도 1958년도에 지어진 건물인 것으로 보인다. 앞면이 6칸으로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규모가 큰 건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안채 건물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석파랑이라는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집 주인이 살던 건물. 아마도 사랑채로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에 지어서 벽돌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구한말에 유행했던 누마루를 달아놓고 있다.


석파랑 출입문. 솟을대문을 하고 있다.


정원에 심어 놓은 대나무


석파랑 별당에서 내려다 본 주위의 경치. 지금은 상명대학교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지만, 이곳은 옛날 산수화에도 많이 등장하는 서울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던 명소였다.


19세기에 유숙이라는 사람이 세검정일대 풍경을 그린 산수화이다.


석파정 별당.

석파정 별당, 19세기중엽 건립, 1958년 이전
이 집은 19세기 중엽에 건축된 것으로 창의문 밖에 있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인 석파정 별당이다. 1958년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이곳에 자신의 집을 지으면서 이 별당을 뒤끌에 옮겨 지었다. 이 집은 중앙에 대청이 있고 양 옆에 방이 있는 'ㄱ'자형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흥선대원군이 앞쪽으로 돌출된 큰 방을 사용하였고, 난초를 그릴 때에만 대청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손님을 접대할 때는 건넌방을 사용하였다. 지붕이 끝나는 측면에는 붉은 벽돌로 벽을 세웠고, 벽 중앙에 원형과 반원형의 창을 내었다. 이는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중국풍 건축의 특징이다. 정면의 툇마루에 설치된 난간은 상류사회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 집은 규모는 작지만, 훌륭한 기술을 지닌 장인들이 고급 자재를 사용하여 지은 조선 후기 상류사회의 대표적인 별장 건축물이다. <출처: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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