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불교건축(불전_요사)

공주 마곡사 주불전인 대광보전 (802호), 조선후기에 지어진 웅장한 건축물

younghwan 2011. 5. 2. 15:13
반응형


 마곡사 경내에는 주불전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과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이 있고, 서쪽편에 웅진전과 조사당을 보조적인 성격의 불전으로 두고 있다. 마곡사는 충남지역 조계종 산하 사찰들을 관장하는 규모가 큰 사찰로 선종 사찰의 성격이 강한 곳이기도 한다. 또한 합천 해인사와 함께 대광보전을 주불전으로 삼고 있는 많지 않은 사찰 중의 하나이다.

 마곡사 대광보전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것으로 19세기초에 중건한 사찰건물로 보물 802호로 지정된 건축물이기도 하다. 이 대광보전은 건축연대가 오래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외관이 장대하면서 화려하여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건물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의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화려한 외관이 특징인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색이 바랬지만, 건물에 칠한 단청또한 상당히 화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물 802호로 지정된 마곡사 대광보전. 충남지역 조계종 사찰을 관장하는 큰 사찰의 중불전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웅장한 외형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건물을 웅장하게 보이려고 기단을 높게 쌓는 다른 사찰 건물과는 달리 경내외 비슷한 높이에 지었지만 건물자체에서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 주불전이라고 해도 오래된 사찰의 경우 앞면이 3칸인 경우가 많은데, 이 건물은 앞면 5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라 지은 건축물이다. 건물 기단부는 화강석으로 쌓은 최근에 지은 불전들과는 달리 자연석을 다듬어서 쌓고 있는데, 높지가 않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문살에는 다양한 꽃무늬를 새겨 놓고 있다. 1칸에는 문짝이 3개씩 달려 있으며 1칸의 폭이 넓은 편에 속한다.


문살과 기둥에 걸어 놓은 주련에서 오래된 사찰의 느낌이 묻어난다.


공포는 다포계이며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다. 지금은 색감이 많이 바랬지만 원래는 상당히 화려한 색감의 단청이었던 것 같다.


공포에 그려진 그림


서쪽편 벽면에 그려진 그림


화려한 팔작지붕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 기둥으로 처마를 받치고 있다.


마곡사 대광보전 측면.


마곡사 경내는 중앙에 오층석탑, 대광보전, 대웅보전이 일렬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서쪽편에 웅진전을 비롯한 불전들이, 동쪽편에는 심검당을 비롯한 요사채들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이다.


대웅보전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본 대광보전


마곡사 대광보전



마곡사 대광보전(보물 802호)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이다. 원래의 건물은 임진왜란(1592)때 불타 없어졌는데, 1813년에 다시 지었다. 건물 안 바닥에는 참나무로 만든 돗자리가 깔려 있고, 그 위에 비로나자불이 모셔져 있으며, 부처님이 서쪽에서 동쪽을 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축양식은 외관이 장대하면서도 화련한 특징을 갖는 다포식이며, 건물의 앞쪽엔 다양한 무늬의 꽃살 무늬의 문을 달았다. 건물 내부의 화려한 공간 구성과 함께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전통 목조 건물이다. <출처:마곡사>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던 절로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었다. 훗날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대웅전·영산전·대적광전 등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해탈문·천왕문과 일직선으로 놓여 있다.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건물로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불에 타버렸던 것을 조선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5칸에는 3짝씩 문을 달았는데 문살은 꽃 모양을 섞은 조각으로 장식하였고 가운데 칸 기둥 위로 용 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고, 불단은 서쪽으로 마련하였는데 불단 위에는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닫집을 정교하게 꾸며 달았다.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 수법이 독특한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