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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제천 청풍 한벽루 (보물 528호), 조선시대 문인들이 남한강 경치를 감상하던 곳

younghwan 2011. 5. 1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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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에 소재한 보물 528호로 지정된 청풍 한벽루이다. 이 누각은 고려 충숙왕때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하자 관아 객사 옆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옛 청풍도호부 관아가 있던 지역이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어 남한강변 언덕 위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 누각은 1972년 대홍수때도 무너졌다고 한다. 밀양 영남루, 남원 광한루와 함께 계단식 익랑을 두고 있는 조선시대 관아 부속 건물로 쓰였던 누각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주심포계 양식의 누각건물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구조이다. 건물의 오른편에는 앞면 3칸의 계단식 익랑을 두고 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려 있었고, 내부에는 우암 송시열과 김수증이 쓴 편액이 있었다고 한다. 청풍도호부는 조선시대 선비들 사이에 크게 유행했던 관동팔경 유람길의 마지막 행선지 중의 하나로 죽령길을 넘어서, 단양군을 지나 이 곳 청풍도호부에서 며칠을 묵으면서 남한강 경치를 감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누각 마루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조선시대 문인들이 경치를 감상하면서 즐겼던 유서깊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제천 청풍문화재단지에서 남한강 경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옮겨놓은 청풍 한벽루. 조선시대 관아의 부속 건물로 각종 연회와 행사가 치러졌던 누각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목조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이 누각은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관아 부속 누각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에 주로 사용했던 주심포 양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붕은 날렵하게 생긴 팔작 지붕을 하고 있다.


안쪽에서 본 청풍 한벽루.


추사 김정희가 쓴 '청풍 한벽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고 하며, 현재의 현판은 원본이 아닌듯 하다.??


이 누각은 자연석 위에 굵은 목재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2층 마루를 설치하였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시원하게 잘 만들어진 누각이다.


청풍 한벽루.


건물 우측편에는 계단식으로 익랑을 달아 놓고 있는데, 밀영 영남루와 남원 광한루에 볼 수 있는 조선시대 관아 부속 누각 건물 양식이다.


익랑은 자연석 위에 육면체로 가공된 석재를 올려 놓고 그 위에 목재 기둥을 세웠다.


익랑 마루는 통로의 용도로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나무계단만으로 된 일반적인 누각에 비해서 운치 있어 보인다.


한벽루를 오르는 통로


한벽루의 넓은 마루. 청풍 도호부를 찾았던 많은 문인들이나 고위 인사들을 접대했던 공간이다. 영남과 서울을 연결해주는 죽령길을 지났던 수 많은 인사들이 이 마루에 올라 남한강 경치를 감상했던 유서깊은 곳이다.


1975년에 한벽루를 복원하면서 걸었던 것으로 보이는 글이다.


한벽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 청풍호수 풍경


한벽루 뒷편 망월산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청풍 한벽루


청풍 한벽루는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마 짜임새 있게 잘 만들어진 건축물로 조선시대 관동팔경 유람을 나섰던 많은 문인들과 죽령길을 넘었던 영남지역 인사들 들러서 풍류를 즐겼던 유서깊은 건축물이다.



제천 청풍 한벽루 (보물 528호)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다. 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다. 이 루는 석축토단의 자연석 주초석 위에 기둥이 배가 부른 엔타시스 수법을 쓴 층 아래 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계 양식이다. 누의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 익랑(대문간에 붙여 지은 방)을 달았다. <출처:제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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