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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대구 달성 하엽정, 연꽃으로 가득찬 전통 정원을 잘 보여주는 삼가헌 별당

younghwan 2011. 8. 2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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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가헌은 사육신 중 한명으로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는 달성 묘골마을 인근에 있는 저택이다. 이 곳은 원래 박팽년을 비롯하여 사육신을 모셨던 낙빈서원이 인근에 있으며, 낙동강이 근처에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박팽년의 11대손인 삼가헌 박성수가 1769년(영조45)에 사랑채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삼가헌이라고 불렀다.

 하엽정은 이 가옥의 별당으로 삼가헌을 지은 이듬해에 별당을 세우고 주변과 연못에 국화와 연꽃을 심었다고 한다. 원래는 파산서당이라는 작은 서당 건물로 지었던 것을 구한말인 고종때 별당건물로 고쳐지었다고 한다. 하엽정은 건물의 크기나 마당은 그리 넓지는 않으나 연못과 수목들을 잘 배치하여 절제된 듯 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주는 조선시대 사대부 저택의 정원과 별당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건물은 앞면 4칸에 안쪽에 구한말에 크게 유행한 누마루를 달아내어 놓은 형태로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온돌방과 골방이 배열되어 있다.


삼가헌 별당 건물이 하엽정. 원래는 파산서당 건물이 있었던 곳에 구한말에 당시 유행했던 건축양식에 따라서 새로 만든 별당건물이다. 건물이 크지도 않으면서, 연못과 정원이 어울려 은근히 화려한 건물이다. 


건물은 앞면 4칸으로 왼쪽끝에 구한말에 유행했던 누마루를 달아내어 놓고 있다. 지금도 이다끔 온돌방에 불을 지피는 것으로 보이며, 그 흔적이 아궁이 주변에 보인다.


'파산서당'이라고 적혀 있는 현판과 온돌방.


하협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누마루. 


건물에 달아내어 놓은 누마루는 조선후기에 크게 유행했던 건축양식으로 대저택의 경우 석재 주춧돌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목재로 단아하게 누마루를 만들어 놓고 있다. 전반적으로 검소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건축물이다.


하엽정 앞 연못에는 연꽃을 심어놓고 있는데 때마침 연꽃이 활짝핀 시절에 이곳을 방문하게 되어서 연꼿과 연잎이 가득한 한국 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곳곳에서 활짝 핀 연꽃을 볼 수 있다. 연꽃은 꽃이 아름답기는 아지만 연못을 가득메우고 있는 연잎들이 장관을 이루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연못 가운데 조성한 작은 섬으로 건너가는 통나무 다리. 연꽃이 무성해서 그런지 가운데 섬이 있다는 것도 실제로 인식하지 못했다.


삼가헌에서 하엽정으로 들어오는 쪽문 앞에 있는 선비들이 좋했던 베롱꽃도 활짝 피어 있다.


연못을 뒤덮고 있는 연꽃


하엽정 전경



묘동 박엽씨 가옥의 별당으로 원래는 서당으로 썼으나 1874년에 지금의 모양과 같이 다시 지었다.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온돌방과 골방이 배열되어 있으며, 왼쪽 끝방 앞에는 1칸 누마루를 꾸몄다. ‘하엽정’이라는 현판은 가운데 온돌방의 윗부분에 걸려있는데, 앞으로는 큰 연못이 있고 뒤로는 대나무숲이 울창하여 그 경관이 아름답다. 삼가현은 충정공 박팽년(1417∼1456)의 자손들이 정착하여 온 박씨마을 묘골과 낮은 산 하나를 경계로 하여 자리잡은 조선시대의 주택이다. 넓은 터에 대문간채·사랑채·안채·별당·연못이 배치되어 있다. 충정공의 11대손인 삼가헌 박성수가 영조 45년(1769)에 사랑채를 짓고 자신의 호를 현판으로 걸어 '삼가헌'이라 이름지었다. 그 이듬해에는 삼가헌 서쪽편에 별당을 세우고 주변과 연못에 각각 국화와 연꽃을 심은 뒤 '하엽정'이라 불렀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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