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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고성 소을비포성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조선전기에 쌓은 남해안 성곽

younghwan 2011. 8. 2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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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 하일면 동하리에 소재한 소을비포성이다. 이 곳에는 조선전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연 전국적으로 방어체제를 구축할 당시에 쌓은 성곽으로 왜구의 침입이 줄어들고 안정화되었던 시기은 성종대에서 선조대까지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남해안 해상교통로인 통영과 삼천포 사이의 해안에 위치한 이 성곽은 조선시대 군사적인 목적으로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인 소을비포진이 있었던 곳이다. 이 성은 만(灣)을 형성하고 있는 내해에서 해안으로 돌출한 구릉 정상부에 둘레 200m, 높이 3m 규모의 성으로 주민들이 거주했던 읍성과는 달리 군사들이 주둔했던 주둔지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군사적인 필요에 따라 설치된 행정구역인 진(鎭)은 북쪽 국경지대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해안가에 많이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의 진은 절도사(종2품)가 지휘하는 주진, 절제사(정3품).첨절제사(종3품)가 지휘하는 거진, 동첨절제사(종4품), 만호(종4품).병마절제도위(종6품)가 주재하는 제진이 있었다고 한다. 일반전으로 작은 규모의 진(鎭)은 주로 만호(종4품)가 지휘하던 곳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100여 명의 군사가 상주하면서 요새 등을 방어 했다고 한다.


경남 고성군 하일면 동화리에 남아 있는 소을비포성이다. 조선시대 해안가 요새로 쌓았던 이 성곽은 그 터와 북문지만 남아 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 것으로 보인다. 해안가 구릉 능선을 따라서 석축을 쌓은 성곽으로 읍성이라기보다는 군사 주둔지의 성격이 강한 성곽이다. 남해안 연안 항로를 관리하고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조선초에 쌓은 성곽이다.


소을비포성의 주출입문이라고 할 수 있는 북문이다. 그 터만 남아 있던 것을 최근에 성문과 문루를 복원하였다.


북문 주위의 석축. 옛 성곽의 석축은 찾아보기 힘들며 고증을 통해서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북문 문루. 산성의 형태로 성을 쌓았고, 북문은 내륙과 연결되는 출입문으로 적의 침입 우려가 낮아서인지 그리 견고하게 쌓았다고 볼 수는 없다. 북문 앞쪽으로 관아 건물이 있었던 건물터가 남아 있다.


소을비포성 성곽 안쪽에 남아 있는 옛 관아 건물터


조선전기에 쌓은 성곽이라서 성벽 위에 여장을 설치해 놓고 있지 않다. 이는 우리나라 대부분 산성이나 읍성과 비슷한 형태이며 아마도 성벽 위에 목책을 설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곽 서남쪽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옹성과 같은 형태의 출입문을 두고 있다. 아마도 적에게 가장 많이 노출되는 부분이라서 옹성을 설치했던 것 같다. 


옹성 출입문. 원래 이런 모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루나 출입문을 별도로 만들어 놓고 있지 않으며 옹성 형태만 유지하고 있다. 멀리 바다에서 들어오는 배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높은 망루가 필요한 지점으로 생각된다.


소을비포성 성관 내부는 부지가 그리 넓지 않은편이며, 관청 건물과 소수의 병사들만 주둔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사시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많은 공간을 비워놓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소을비포성 남쪽편 성곽. 석축을 쌓아 만든 작은 홍예가 남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포구에 정박한 수군들이 왕래할 수 있도록 만든 출입문으로 생각된다.


남측 석축


작은 홍예로 되어 있는 남문. 위에 문루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북문에 비해서 견고하게 쌓은 것으로 보인다.


고성 소을비포성으로 들어오는 길.


이 곳은 바다가 육지로 많이 들어와 있어서 잔잔한 호수같은 느낌을 주는 작은 만(灣)이다.


이곳에는 파도가 거의 없어서 그런지 방파제는 필요없고 배가 정박할 수 있는 시설만 있다. 크고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이 곳 바다는 육지로 상당히 깊이 들어와 있는 만(灣)으로, 진(鎭)이 설치된 소을비포성을 바다가 감싸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깊숙한 내해를 형성하고 있어서 바다로부터 적이 침입하기는 상당히 곤란해 보인다.



고성 소을비포성지, 경남 고성군 하일면 동화리
이 곳에는 조선전기에 설치된 소을비포진이 위치했던 곳이며 성곽 축조시기는 성종~선조 년간으로 추정된다. 이 성은 사량성, 가배량성과 더불어 왜구 방비를 위해 남해안 고성만에 축조한 수군 기지로서 임진왜란시에는 인접한 자란도와 가용포에 고성 현치소릴 일시 이동하면서 적극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성은 해안에 돌출한 구릉 정상부를 성내로 삼고 8부 능선상에 타원으로 축조한 석축성이다. 현재 둘레 200 m 높이 3m 규모의 성벽이 지상에 남아 있고 북쪽 체성에 성문 흔적이 있다. 성벽은 자연 대석을 이용하여 협축한 전형적인 조선전기 관방성 축조법을 가졌으며 주변에는 바다로 둘러싸인 천연해자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좌이산과 사량진주봉 봉수대는 이 성의 별망처럼 근접해서 위치하고 있다. <출처:고성군청>

* 자료참조: 네이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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