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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병자호란 이후 북방민족에 침입에 대배하여 국방상 매우 중요한 요충지로 인식된 강화도에는 군사조직으로 5진 7보가 설치되었고 방어시설로는 강화산성, 외성, 53돈대가 숙종대까지 설치되었다. 월곶진은 한강이 서해로 나가면서 강화해협인 염하와 서해로 나누어진 곳에 위치하고 하고 있어며, 한강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인 문수산성과 마주 하고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월곶진에서 다른 진.보보다는 높은 종3품인 첨사가 담당하는 군사조직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산하에 옥창돈, 월곶돈,휴함돈,적북돈을 두고 있다.

 월곶진은 강화10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절경으로 옛날 서해에서 한강을 거슬러 한양으로 가는 배가 닻을 내려 조류를 기다리던 곳이며, 한양에서 강화를 방문하는 인사들이 배를 타고 올때 이 곳에서 내려 강화산성 동문을 거쳐서 강화로 들어가는 중요한 교통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월곶진 월곶돈대에는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면서 풍류를 즐기던 작은 정자인 연미정이 있다. 이 연미정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고려시대에 이 정자의 존재가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 한다.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인조 5년 정묘호란 강화조약이 이곳에서 체결되었다고 한다.



한강이 서해바다와 만나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월곶돈대. 강화를 방어하기 위한 군사조직인 월곶진 산하 4개 돈대 중 하나이다. 상당부분 훼손되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월곶돈대 전경. 이 곳에는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본부격인 월곶진이 같이 있던 곳으로 지금 복원공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안의 낮은 구릉에 나무가 울창하며, 돈대에 올라가면 한강과 서해바다의 경치가 매우 수려하다.


복원공사가 진행중인 이 곳은 아마도 월곶진을 복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안쪽으로 쌓아 놓은 성벽. 복원한 것이기는 하지만 원래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여장과 총구가 설치되어 있는 조선후기 한양의 성곽 모습을 하고 있다.


월곶돈대는 원형의 돈대로 약 20~30의 군사가 상시 주둔했다고 한다.


월곶돈대 출입문. 화강석으로 쌓은 홍예문을 통해 돈대 내부로 들어간다. 돈대를 쌓은 석축은 상당히 큰 화강석을 잘 다듬어서 쌓았다. 현재 석축을 쌓은 돌을 보면 오래된 돌과 복원한 것들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돈대 남쪽편 도로. 이 길을 따라서 가면 강화읍에 쌓은 산성인 강화산성 동문과 연결된다. 서울에서 강화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했던 교통로 중 하나이다.


강화도와 김포사이를 흐르는 염하주변에는 지금도 해안방어를 위해 만들어 놓은 철책을 볼 수 있다.


서해바다와 한강, 염하가 만드는 모양새가 마치 제비꼬리같다고 하여 이 곳을 연미라고 부르기도 하며, 월곶돈대에 세워진 정자를 연미정이라고 한다. 멀리 북녘땅이 한눈에 들어 온다.


월곶돈대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보이는 작은 정자인 연미정이 보인다. 이 정자에 내려다 보는 한강과 서해바다의 경치가 매우 수려하며, 기록에는 고려시대부터 이 곳에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월곶돈대는 원형으로 만든 돈대로 아래쪽에는 블랑기라는 화포를 장착할 수 있는 포구가 설치되어있고, 위쪽 여장에는 소총을 쏠 수 있는 포구가 설치되어 있다.


돈대 여장에 설치된 포구. 다양한 방향으로 총을 쏠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다.


월곶돈대 북쪽편 성벽의 여장.


염하 방향의 여장. 건너편으로 문수산성이 보인다.


멀리 서해로 빠져나가는 교동도 방향의 여장


월곶돈대에서 제일 높은 곳에 설치된 연미정. 이곳에는 정자가 고려시대부터 설치된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으며, 조선 중종때 삼포왜변에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정자를 하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현재의 정자는 영조 20년(1744)에 중건된 것이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정면에서 본 연미정. 이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사방이 틔여있어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되어 있다. 원래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마루가 설치되어 있지는 않다. 이 곳은 정묘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와 강화조약을 맺은 곳이기도 한다.


정자는 화강석을 가공한 기둥처럼 생긴 긴 초석위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렸다. 마루는 설치해 놓고 있지 않다.


연미정 전경


연미정 뒷편으로는 수령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상당히 우거진 2그루의 나무와 여장이 배경을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주고 있다.


연미정 동쪽편을 흐르는 강화해협인 염하와 건너편에 보이는 문수산성


한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작은 무인도인 우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지만, 현재는 남북관계상 무인도로 남겨두고 있다.


연미정 북쪽편으로 보이는 서해바다와 북녘땅


돈대에 설치된 여장 너머로 보이는 서해바다와 북녁땅. 이쪽으로 넘어가서는 사진촬영을 하지말라는 안내표지판이 있다.


월곶돈대 북쪽편 강화도 해안. 월곶돈대를 기준으로 민통선이 설치되어 이 안쪽으로는 넘어갈 수 없다.


이 곳 너머로 넘어갈 수 없는 민통선임을 알려주는 초소가멀리 보인다. 이 곳 월곶돈대와 연미정도 최근까지는 민통선 안쪽에 있어서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었지만 최근에 개방한 것으로 보인다.



강화 연미정,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242
월곶리는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서해와 인천으로 물길이 흐르는 모양이 제비 꼬리와 같다하여 정자의 이름을 연미정이라 하였다. 강화 10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절경을 이루는 곶으로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 갔다고 한다. 건립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 1244년 왕이 구재의 학생들을 이 곳에 모아 면학케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정묘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와 굴욕적인 형제관계의 강화조약을 맺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영조 20년(1744)에 중건되었고, 1891년 중수한 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출처:강화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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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 연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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