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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육영재, 학동마을에서 세운 재실

younghwan 2011. 8. 2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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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담장으로 유명한 고성학동마을의 전주 최씨 집안에서 세운 재실인 고성 육영재이다. 원래는 초가 건물로 1723년에 세운 것을 184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고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재실은 본관, 사랑채, 곳간채와 솟을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작은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재실로서는 부지가 넓고 건물 규모도 큰 편에 속하는 건축물이다.

 재실은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은 집으로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숙식을 하고, 음식 장만을 하기 위한 공간이다. 조선시대 왕릉에서 국왕이 제사 준비를 하기 위해 숙식을 하던 산을제도가 권문세가를 비롯한 사대부 집안으로 확산하면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주로 시제를 준비하거나 끝난 후 음복을 하거나 문중회의를 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조선후기에 경쟁적으로 세워진 많은 서원들 또한 일종의 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곳 육영재는 설명에 의하면 후손들의 교육을 위해 세워진 건물이라고 하는데, 맞는 설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반 재실과는 다른 용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고성 육영재 솟을대문.


재실로서는 상당히 마당을 넓게 쓰고 건물을 크게 지었다. 본당은 앞면 6칸으로 서원이나 향교의 강당에 비해서 건물 규모가 적지 않다. 아마도 서원으로 바꿀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본당 앞 마당 양쪽에 마주보는 사랑채와 곳간채 건물이 있는 점도 일반적인 서원의 건물 배치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마당 왼편에 있는 앞면 5칸, 옆면 2칸의 사랑채.


마당 오른편에는 앞면 5칸의 곳간채를 두고 있는데 아마도 제기 등 제수용품을 보관하던 곳간으로 보인다.


육영재는 아름다운 담장으로 유명한 학동마을 사람들에 세운 재실로 담장이 학돌마을 돌담장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담장이 아름다운 고성 학동마을 돌담길



고성 육영재, 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이 곳에 처음 재사 건물이 세워진 것은 1723년이었다. 당시 학동 마을의 전주 최씨 문중에서 비록 초가 삼칸 집이지만 후손들의 교육을 위해 재사를 마련했던 것이다. 이후 학생수가 늘어남에 따라 문중의 힘을 모아 1845년에 건물을 새로 지은 것이 지금에 전해지고 있다. 솟을대문 안의 경내에는 4동의 팔작지붕 목조기와 건물이 사방에 배치되어 있다. 그 중 본관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이고, 사랑채와 곳간채는 각각 정면 5칸에 측면 2칸과 1칸 크기이다. 본관 건물은 직경이 50cm에 달하는 원형기둥으로 견고하게 지지되고 있으며, 정교하게 만들어진 문짝과 육송판재를 조각하여 만든 좌우측 방의 천정이 독특하다. <출처:고성군청>

* 자료참조: 네이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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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 고성육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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