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낙동강변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사적 488호로 지정된 도동서원이다. 이 서원은 조선중기 유학자 김굉필을 모시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조선시대 5대 서원 중 하나로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 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원래는 현풍현 비슬산에 세워졌던 것이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리고 1604년(선조 37)에 현재에 위치에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국가에서 '도동'이라는 사액을 내리고, 주변의 땅을 이 서원에 하사하였다고 한다.
김굉필은 조선전기 성리학자로 조선중기 이후 조선사회를 이끌어온 사림세력의 태두라 할 수 있는 김종직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1498년 무오사화로 평안도 희천으로 유배되었을 때 조광조에게 학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림세력이자 유학자를 대표하는 인물인 김종직->김굉필->조광조->이황.이이로 이어지는 정통 성리학을 계승한 유학자로서 후대에 많은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를 모시는 서원으로는 아산의 인산서원, 희천의 상현서원, 순천의 옥천서원, 달성의 도동 서원 등이 있다고 한다.
대구 달성 도동서원은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마을과 농토에서 떨어진 고립된 위치에 있으면서도 낙동강 건너편으로는 마을과 농토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서원의 입지로서는 아주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안동의 도산서원과 입지면에서 같은 맥락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동서원의 건물배치는 경사진 지형에 수월루, 환주문, 중정당, 사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사당을 높은 곳에 두는 전학후묘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이 서원의 흙과 기와로 쌓은 담장이 강당,사당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달성 도동서원 전경. 조선중기에 세워진 이 서원은 상당히 넓은 부지 위에 세워져 있다. 입구에는 이 서원을 건립하면서 기념으로 심은 일명 '김굉필나무'로 불리는 나무가 인상적이다.
도동서원 외삼문이자 문루인 수월루. 이 곳을 찾은 손님들과 함께 낙동강 경치를 감상하면서 풍류를 즐기던 공간으로 보이며, 강학공간과는 담장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유생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도동서원은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서 부지를 조성했는 바깥쪽에는 일반적인 큰 돌을 쌓아서 축대와 담장을 조성했다. 수월루 양쪽으로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좋아했던 베롱나무에 꽃이 활짝피어 있다.
수월루 앞 마당에 심어진 일명 '김굉필나무'. 이 서원을 지을때 김굉필의 외증손 한강 정구가 심었다고 한다. 잎이 무성하고 가지가 많이 벌어져 작은 숲처럼 보인다. 나무 뒷편으로는 김굉필을 기리는 신도비가 서 있다.
김굉필나무
김굉필은 조선 전기 성리학자로서 벼슬길보다는 학문과 교육에 치중하여 성리학과 사림 정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리하여 광해군 2년(1610)에는 조선 성리학의 정통을 계승한 '동방오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조선 선조 40년(1607)에 김굉필의 외증손 한강 정구가 도동서원 건립을 기념해 심어서 '김굉필 나무'라고 이름지었다. 이 나무는 도동서원 앞을 돌아 흐르는 낙동강을 굽어 보며 서 있는데, 높이가 25m, 줄기 둘레가 8.7m이다. 잎이 무성하고 가지가 많이 벌여져 었어서 이 나무를 멀리서 바라보면 울창한 숲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달성군청>
도동서원 강학공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인 환주문이다. 기와를 얹은 작은 문으로 양쪽으로 기와와 흙을 쌓아서 만든 아름다운 담장이 있다.
강학공간을 들어서면 축대위에 세워진 보물 350호로 지정된 강당이 중정당이 보인다. 이 건물은 앞면 5칸의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양쪽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 정면 기단에는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머리 4개와 다람쥐 모양의 동물이 장식되어 있다. 4개의 용머리는 서원 앞 낙동강물이 넘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한 비보책으로 물의 신 '용'을 상징한다.
도동서원 강당인 중정당 대청마루. 대청마루에 걸려 있는 '도동서원'이라고 적힌 현판은 조선 국왕 중 명필로 알려진 선조가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동쪽편 유생들의 기숙사 거인재 앞면 3칸으로 온돌방 2칸과 대청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편 기숙사인 거의재.
강당에서 내려다 본 도동서원 담장. 기와와 흙을 쌓고 그 위에 기와지붕을 얹어 놓은 담장으로 간결하면서도 잘 만들어진 담장이다.
강당을 지나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흙과 돌을 쌓아서 만든 고직사 굴뚝.
강당 뒷편에 있는 사당은 강당보다 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언덕에 큰돌로 축대를 쌓고 작은 정원을 조성해 놓고 있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
사당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판문을 달아 놓고 있다.
도동서원 동쪽편에는 사당에 제사를 준비하는 건물인 전사청이다. 원래 전사청은 제기 등을 보관하는 작은 건물이고,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은 고직사라고 하는데, 도동서원에서는 한 건물에서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관리인이 거주하고 있다.
천사청 아패쪽으로 흙담에 기와를 얹어놓은 곡식 등을 보관하던 곶간채가 있다.
지금은 창고로 쓰이는 문간채
바깥에서 본 문간채
문간채 대문 앞에서 내려다 본 도동서원 앞마당.
도동서원 유물전시관
도동서원을 오가는 시내버스가 주차장에 한가로이 주차해 있다.
도동서원 앞을 흐르는 낙동강. 건너편에 있는 작은 동산이 마치 작은 섬처럼 느껴진다.
현풍에서 도동서원으로 넘어가는 다람재에서 내려다 본 도동서원.
달성 도동서원(사적 488호)
도동서원은 조선시대 유학자인 한훤당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세운 서원이다. 이 서원은 소수서원.병산서원.도산서원.옥산서원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서원 중 하나이며,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보존된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이 서원은 선조1년(1568)에 쌍계서원이라는 이름으로 현풍 비슬산 기슭에 세워졌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뒤 선조 37년(1604)에 보로동서원이란 이름으로 지금 이 자라에 옮겨 다시 세웠으며, 광해군 2년(1610)에 '도동'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서원의 정문인 수월루 아래 외삼문과 환주문을 지나면 강당인 중정당과 유생들이 기거하던 동재와 서재가 있다. 중정당 오른쪽 건물은 서원 관리인이 살았던 전사청이고, 왼쪽 뒤편의 건물은 목판과 유물을 보관하던 장판각이다. 중정당 뒤편에 있는 돌계단을 오르면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과 사당이 있으며, 내삼문 오른쪽에는 제기를 보관하는 증반소가 있다. 도동서원은 수월루에서 높은 곳을 따라 환주문.중정당.사당을 일직선상에 두어 앞에는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영역, 뒤에는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 구조이다. 또한 흙과 기와로 쌓아 만든 담장을 둘러서 검소하고 단아하면서도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한국 서원 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출처:달성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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