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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곽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도성으로 태조가 조선을 개국한 이래로 한양으로 천도한 이후 북쪽의 북악산(백악산), 동쪽 낙산, 남쪽 남산(목멱산), 서쪽 인왕산을 연결한 총 길이 18.2km의 성곽이다. 처음에는 평지는 토성, 산지는 산성으로 쌓았던 것을 세종 27년에 석축성으로 보수하였으며, 병자호란 이후 숙종대에 대대적은 보수작업을 통해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서울성곽은 조선이 개국한 이래로 끊임없이 보수작업이 이루어졌기때문에 시대에 따른 성곽 축성방법을 볼 수 있다.

 서울 성곽 중 북쪽편 성곽에 해당하는 북악산은 조선이 한양을 도읍을 정할때 주산을 해발 342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산세는 험한편이라 할 수 있다. 북악산 성곽은 1960년대 무장공비 침입이후 전면적으로 통제되었다가 2006년에 처음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 지금도 청와대를 경비하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자유롭게 성곽 주변을 탐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성곽길을 걷다가 북악산 정상 등 지정된 장소만 탐방과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북악산 성곽길은 한양도성의 북소문인 창의문에 출발하여 성균관대 뒷편에 위치한 와룡공원까지이며, 성곽탐방도 좋지만 성곽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울의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또하나의 즐거움이다.

 북악산 성곽은 서울도심에서 보이는 모습대로 서쪽편은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고 동쪽편은 완만한 편이다. 창의문에서 출발하여 인왕산과 북한산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다가 중턱에 위치한 돌고래쉼터에서 잠시 쉬고 해발 342m의 북악산 정산에 도착하게 된다. 북악산 정상에서 동쪽편 성곽길을 따라서 걸어 내려가다 보면 총맞은 소나무를 지나 경북궁과 광화문광장이 일직선으로 보이는 청운대에 도착하게 된다. 청운대를 지나서 한참을 내려가면 한양도성 북문이 숙정문을 지나 성균관대학 뒷편에 위치한 와룡공원으로 나온다. 청와대를 경비하는 군부대 초소들이 많아서 약간은 긴장된 분위기를 주기도 한다.



한양도성의 북소문에 해당하는 창의문에서 북악산 성곽길 걷기가 시작된다. 물론 와룡공원에서 출발해서 이 곳에서 탐방을 마칠 수도 있다.


북악산 성곽길은 청와대를 경비하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지역으로 이 곳에 신분증 검사를 하고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창의문에서 북악산 중턱인 돌고래쉼터까지 이어진 성곽길. 성곽의 여장들은 대부분 숙종때 쌓은 것으로 그 중 상당수는 최근에 보수한 것으로 보인다.


중턱에서부터는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다.


쉼터 북쪽편으로 보이는 문수봉과 비봉 일대의 북한산과 평창동 주택가


해발 342m의 한양도성 주산인 북악산 정상. 지금은 북악산이라 불리지만 원래 이름은 백악산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본 북악산. 광화문, 경복궁, 청와대, 북악산이 거의 일자로 배치된 형태이다.


북악산 정상의 표지석


북악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울 도심. 멀리 남산타워와 도심의 고층빌딩을 보인다. 맑은 날씨였지만 시계는 그리 좋지 못한 편이었다.


북악산 동쪽편 인왕산과 안산 일대


멀리 보이는 인왕산 성곽.


북악산 정상의 소나무


총탄맞은 흔적이 남아 있는 '1.21사태 소나무'라 부르는 소나무.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부대 김신조 등 31명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하여, 현 청운동 앞에서 경찰과 교전후 북악산 및 인왕산지역으로 도주하였다. 당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 중 현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 되었고, 이후 이 소나무를 1.21사태 소나무라 부르고 있다. <출처:서울시청>


조선후기에 쌓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여장. 글자가 새겨진 돌을 볼 수 있다.


성벽에 새겨진 글자는 성벽축조 당시 공사구역과 공사담당 군현, 공사일자와 책임자 등이 적혀있다. 서울 성곽은 약 180m씩 총 97구간으로 나누어 공사를 했는데, 공사를 담당한 군현을 표시하여 그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성벽에 새겨진 글자들
서울 성곽의 성벽 들 중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돌들이 있다. 이는 대개 성벽 축조 당시 천자문 글자에서 따온 공사구역 표시, 공사담당 군현, 그리고 공사 일자와 공사 책임자의 직책과 이름 등이다. 서울 성곽은 태조 5년(1396) 처음 쌓을 때부터 전체 59,500자(약 18.2km)를 600자(약180m) 단위로 나누어 총 97구간으로 구획하고 천자문 순으로 표시하였다. 북악산 정상에서 천지현황의 천자에서 시작한 구획표시는 낙산, 남산, 인왕산을 거쳐 조민벌죄의 조자에서 끝난다. 성벽 곳곳에는 진자종면, '강자육백척' 등 각 구역을 표시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 조선 팔도 각 지역에서 인원을 동원하였기 때문에 도 또는 현의 담당 지역을 표시하여, '의령시면', '흥해시면' 등의 글씨가 성벽 틀에 새겨져 있다. 이러한 공사실명제는 이후에도 계속되어 후대에는 아예 감독관의 직채과 이름 및 날짜가 기록된 것도 있다. <출처:서울시청>


총맞은 소나무를 지나서 조금 내려오면 경복궁과 광화문 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해발 293m의 청운대에 도착하게 된다.


청운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복궁과 광화문 광장


청운대에서 보이는 북악산 정상


청운대 소나무


원래 있었던 암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청운대에서 잠깐 성곽 바깥쪽으로 나와볼 수 있다. 이 곳 성곽 석축을 쌓은 돌들이 크고 잘다듬어진 것으로 볼때 조선후기 숙종대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성곽의 석축은 시대별로 다른 형태를 하고 있는데 태조 5년(1396)에 쌓은 성벽은 큰 메주만 한 크기의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고, 세종 4년(1422)의 성벽, 장방형 돌을 기본으로 하면서 사이사이에 잔돌을 섞어 쌓았으며, 숙종 30년(1704)의 성벽, 2x2자의 석재를 정사각형에 가깝게 규격화하여 튼튼하게 쌓았다.


숙정문 부근의 촛대바위


숙정문 부근의 성곽길


경사가 심했던 북악산 서쪽 성곽과는 달리 동쪽 성곽길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한양도성의 북문에 해당하는 숙정문. 이 성문은 경복궁과 연결되는데, 실제로 일반인들이 통행하는 출입문이라기보다는 암문의 성격을 갖는 성문이다.


숙정문 아래쪽 와룡공원으로 연결되는 성곽.


북악산 뒷쪽편 팔각정


팔각정 아래 성북동 마을


말바위안내소에서 보이는 북악산 정상


북악산 정상에서 숙정문으로 이어진 서울성곽


성북동 일대 전경


북악산 성곽길 탐방이 끝나는 말바위 안내소. 이 곳에서 출입증을 반납하고 나온다.


와룡공원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와룡공원으로 나오는 길.



서울 백악산일원,
백악산은 조선시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주산으로 삼았던 산인데 현재는 북악산으로 불린다. 조선 건국 후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기 위해 도시를 새로 구성하였는데, 우뚝 솟은 백악산을 북쪽의 주산으로 삼아 배경이 되게 하였고, 지금의 남산인 목멱산을 안산으로 두어 남쪽 경계로 삼았다. 동쪽의 낙산이 좌청룡, 서쪽의 인왕산이 우백호가 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주산인 백악산 아래에 경복궁을 짓고 이를 기준으로 하여 한양 도성 계획을 세웠다. 곧 백악산은 풍수지리에 따라 한양의 도성을 계획할 때 중심이 되었다. 문화재 명칭을 백악산으로 한 것은 조선시대 도성 축성의 의미를 되살리고, 조선시대의 각종 사료에 나타나는 '백악'의 지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서울성곽과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등이 있는 백악산 일원은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으며 자연 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출처: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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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 북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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