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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중국과의 무역과 인적교류는 명나라의 바다를 통한 무역을 금지한 해금정책에 따라 공식적인 외교절차로 사신들이 상호 방문하는 조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조선시대 조공은 국가적인 중요한 행사에 사신단이 상호 방문하는 공식적인 절차였으며 사신행렬에 상인들이 참여하여 많은 무역이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중국과의 조공관계는 양국간에 상하관계를 의미한다고 하여 폄하가 되는 경향이 있으나, 당시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관례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은 총 500여회에 걸쳐 중국에 사신단을 파견하였으며, 조선에서 그 횟수를 늘려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북경을 방문하는 사신단에 참여함으로서 새로운 세상과 학문을 접할 수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사신단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중앙박물관에서는 2011년 가을에 '중국 사행을 다녀온 화가들'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을 하고 있으며, 당시 사행단에 포함되어서 북경을 방문하여 보고 느낀 것을 그렸던 그림들을 중심으로 전시회를 개최하여 당시 사람들이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느낀점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사행과 화가들
중국에 사행가는 것을 명나라 때는 천자에게 조공간다는 의미를 담아 '조천'이라 하였다. 청나라 때는 연경에 가는 일이라 하여 '연행'이라 바뀌게 된다. 조천과 연행 모두 '중국 사행'을 뜻하는 것이지만, 연행이라는 말에는 조공관계를 생략하고 좀 더 객관적인 사실만을 담고자 했던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고민과 생각이 담겨 있다. 사행길은 육로로 가는 길과 바닷길이 있었는데 특히 명나라와 후금이 패권을 다투던 시기에는 육지에서 벌어지는 각축전을 피해 멀고 험한 바닷길을 이용해야만 했다. 화가가 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기회는 크게 세가지였다. 먼저 도화서 소속 화원들이 선발과정을 통해 사행단에 공식적으로 포함된 경우이다. 그들은 주로 사행의 여정을 그리거나 입수가 어려운 그림과 지도를 베껴 그리는 일을 맡았다. 다음은 강세황과 같은 문인 화가들이 정사나 부사의 자격으로 사행은 다녀오는 경우이다. 세번째 경우는도화서 화가, 문인화가, 김정희 같은 문인들이 자제군관 같은 일반 수행원 자격으로 참여하는 경우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조선사신들을 보내는 전별도, 조선 또는 명, 작가미상. 명나라가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기 전 수도였던 남경을 방문했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명나라 관리들이 조선 사신을 떠나 보내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명대에는 각국의 사절단이 돌아갈 때 남경 근처 강나루 용강역에서 잔치를 베풀어 전송하였다. 상단에는 명나라 관리가 감찰어사 김유심이라는 사람에게 써준 시가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명나라 수도 남경성을 그렸다. 남경의 T자 모양의 황성과 내성의 각종 성문을 자세하게 그렸다. 남경성의 왼쪽 바깥에는 장강이 흐르고 있다. 송별의 순간을 영원히 기념하고 제작된 것으로, 명의 수도가 남경이었던 시기(1421년 이전)의 사행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라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양자강에서 배를 타고 귀국하는 조선 사신을 배웅하는 중국 관리들의 모습을 그린 장면이다.


중국 남경의 성곽을 그린 장면


당시 명나라 남경에 있던 궁궐


명나라 관리가 감찰어사 김유심이라는 사람에게 써준 시가 있다.


선사포에서 사행을 떠나다.(항해조천도), 바닷길로떠나는 사행, 조선후기, 작자미상. 선사포는 평안북도 의주 남쪽에 있는 포구로 임진왜란 전후로 여진이 만주일대를 장악하면 뱃길을 이용할 때 사신이 출발하던 곳이라고 한다.

1624년 정사 이덕형(1566~1645) 사행단이 인조의 책봉 승인을 위해 떠난 바닷길 사행 여정을 25폭에 그린 것이다. 이들은 인조의 책봉 승인을 명 조정에 주청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이 때는 후금의 등장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워 기존의 육로를 통한 이동이 어려워져 해로를 통해 사행을 가야 했다. 험난한 여정을 기록으로 남겨 후에 사행을 가는 이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음을 적은 이덕형의 발문이 함께 실려 있다. 이 장면은 먼 길 선사포에서 출발하려는 장면을 보여준다. 오른쪽에 배를 타러 이동중인 조선 사행단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연경 자금성 (조천도), 바닷길로 떠나는 사행, 작자미상, 조선후기. 오늘날 자금성의 모습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은데 공식적으로 방문했던 자금성 태화전까지만 묘사되어 있고, 건청궁을 비롯하여 황실 가족이 살던 영역은 생략되어 있다.

1624년 정사 이덕형(1566~1645) 사행단의 바닷길 사행 여정을 담은 25폭의 그림이다. 이덕형의 말문이 있는 <항해조천도>와 달리 <조천도>에는 발문이 실려 있지 않다. 화면 크기가 약간씩 차이가 나고, 화풍도 달라 같은 시기에 여러 벌이 제작된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화가가 다른 시기에 모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장면은 도착지인 연경의 자금성 모습을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1760년 사행을 그린 기록화. 자금성 외조와 태화전까지만 묘사되어 있다.


강변에에서 열린 잔치(행행도), 작가미상, 16세기

강변의 언덕과 배 위에서 벌어진 연회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한강은 조선의 많은 문인들이 유람을 하고 풍류를 즐긴 곳이었는데, 중국에서 사신이 올 때에도 한강변 경치 좋은 누정에서 모임을 열어 접대를 하였다. 제3폭에는 정자선을 타고 한강 일대를 유람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붉은 색 관복을 입은 관원들과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의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중국 사신의 한강유람과 관련된 병풍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중국 사신의 접대를 기록한 그림(황화사후록), 작가미상, 1600년. 명나라 사신의 방문시 많은 인사들이 사신들과 교류한 것으로 보이며, 이때의 친분관계가 사신단의 연행시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명나라에서 조선에 천사를 파견하면, 조선에서는 대대적으로 관리 일행을 의주에 파견하여 정주, 평양, 개성 등을 거쳐 한양까지 이들을 수행하고 귀국할 때까지 접대를 맡겼다. <황화사후록>은 중국 사신들을 도성 밖 모화관 근처에서 맞이하는 일을 맡았던 관리들이 함께 했음을 기념하고, 후일 그것을 회상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황화는 '중국사신'을 의미하며, '사후'는 문안한다는 뜻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천고최성첩, 작자미상, 조선후기

1606년 중국 사신 주지번이 조선에 전해준 <천고최성첩>의 후대 이모본이다. 명나라 신종의 원손이 태어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왔던 주지번은 평소에 서화 취미가 남달랐고 시문과 글씨에 뛰어난 조선의 문인들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20폭의 중국 화가의 글미과 중국 문사들의 글로 구성된 <천고최성첩>은 조선에 명대 오파화품의 서화합벽첨(그림과 글씨가 함께 구성된 화첩>이 제작되어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사행길의 변천.

사행은 육로와 해로 두 가지 길로 다녀왔다. 여러 차례 사행길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명나라 수도가 남경이었던 시기에는 바닷길로 다녀왔다. 1409년이 되면 영락제의 명으로 남경까지 육로로 이동하게 되었다. 1421년, 명이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 후 북경으로의 육로 사행으로 200년간 진행되었다. 1621년, 심양의 동북쪽에 근거지를 둔 만주족의 등장으로 각축전이 벌어지자 기존 육로 사행길은 막히게 되고, 잠시 바닷길을 이용하게 된다. 선사포에서 출발하는 길과 석다산에서 출발하는 길이 있었다. 청이 들어선 1637년부터 정국이 안정되면서 다시 육로 사행이 재개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조선의 지식인들은 사행을 통해서 중국의 첨단 문물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18세기 조선의 사대부들 가운데에는 평생 사행을 꿈꿔왔던 이도 있었습니다. 더 넓은 세상과 만나 자신의 견문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는 길이 바로 사행이었던 것입니다. 조선 사행단의 규모는 정사, 부사, 서장관, 역관, 의관, 화원 등 정관 30여 명을 기본으로 하여 3백명 내외에 이르렀으며 조선시대를 통털어 총 500여 회에 걸쳐 중국에 파견되었습니다. 대규모 사행단에 속한 화가들은 중국의 예술과 문화를 직접 접하고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사행의 여정과 문화교류의 결실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중국 사행을 다녀온 조선시대 화가들을 특별히 조명하였습니다. 그들이 남긴 회화 작품을 통해, 생생한 사행길의 현장과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수용하는 양상을 느껴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출처: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