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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박물관

[춘천박물관] 강원지역의 구석기, 신석기 문화

younghwan 2012. 3. 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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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지역은 북쪽의 금강산 일대에서 남쪽의 태백산, 동쪽의 동해안 지역에서 서쪽의 북한강.남한강 일대까지의 넓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고서저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강원도에는 동해안을 따라서 형성된 해안평야와 석호, 백도대간 서쪽편으로는 남한강.북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충적평야와 분지가 발달되어 있다. 이 지역에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넓은 평야가 없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삼국시대 이래로 역사시대에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은 없지만 선사시대에는 동해안 석호와 주변평야지대, 남.북한강 유역의 충적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많은 선사시대 유적지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선사시대 유적지로는 고성 문암리, 속초 조양동, 양양 오상리, 강릉 초당동 유적지가 있는 동해안과 춘천, 영월, 양구, 홍천 등 한강 주변 지역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강원의 선사와 고대문화
강원지역은 높은 산과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산악지형이다. 서쪽은 하천에 의한 충적대지와 크고 작은 분지가 발달하였으며, 동쪽은 동해안을 따라 좁고 긴 해안 평야와 사구, 석호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얻어지는 다양하고 풍부한 자원들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되었기 때문에, 강원지역에는 많은 선사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강원 지역의 선사시대는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큰 차이 없이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다른 지역보다 이르게 나타난 신석기문화가 동해안의 사구지대와 내륙의 하천을 끼고 발달하였으며 지금부터 3000년 전부터 점차 청동기문화로 바뀌게 되었다. 남.북한강변과 동해안에 형성된 대규모의 고인돌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새로운 계급사회 구조가 형성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출처:춘천박물관>

구석기문화
구석기시대는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하여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사냥과 채집경제에 따른 이동생활을 한 시기이다. 도구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을 깨뜨리거나 떼어내어 만든 뗀석기가 사용되었으며, 나무나 뼈로 만든 도구도 사용되었다. 강원지역의 바닷가와 강가, 내륙의 깊은 골짜기에는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의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양구 상무룡리, 홍천 하화계리 유적을 비롯하여 강릉 심곡리, 동해 평릉동.월소, 홍천 백이, 춘천 거두리.금산리 갈둔 유적 등이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이들 유적에서는 전기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주먹도끼, 찍개, 주먹대패 등의 대형석기부터 후기 구석기시대의 좀돌날, 새기개 및 격지 등의 소형 석기까지 시기적인 변화와 특징을 보여 주는 다양한 석기가 출토되고 있다. <출처:춘천박물관>

뗀석기
뗀석기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을 깨뜨리거나 떼어 내어 만든 것으로 석기시대의 가장 주요한 도구이다. 구석기시대는 뗀석기의 종류나 만드는 기술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 전기는 강자갈돌로 가장자라만 날카롭게 가공한 주먹도끼와 가로날도끼, 찍개류 등의 대형 석기가 대표적이다. 강원지역에는 강릉 심곡리와 양양 도화리 유적이 있다. 중기(10만년 전 ~4만년전)는 일반적으로 대형 석기가 줄어들고, 석기의 기능에 따라 형태가 분화되어 새기개, 뚜르개 등이 새로이 나타난다. 특히 몸돌에서 떼어낸 격지에 2차 가공한 석기가 증가한다. 강원 지역에는 양구 상무룡리 유적 아래층 문화가 해당된다. 후기는 석기 가공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이다. 특히 이 시기의 특징적인 돌날기법은 흑요석이나 혼펠스 등에 사용되어, 석기 생산의 능률을 향상시켰다. 한편 몸돌에서 아주 작은 돌날을 떼어내 만들어진 좀돌날은 납작하게 만든 뼈나 나무의 옆면 가장자리에 끼워서 창이나 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출처:춘천박물관>



주먹도끼(Hand-axes), 중기구석기시대, 강원도 각지


뗀석기(Chipped Stone tools), 중기 구석기 시대, 강원도 각지


석기제작장(Stone tool wokrshop), 후기구석기, 이 모형은 홍천 하화계리 유적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석기제작장을 실물 크기로 이전, 복원해 놓은 것이다. 후기 구석기인들이 석기를 만들던 곳으로 많은 돌조각들이 직경 2m 정도의 범위에 밀집해 있다.


신석기 문화
신석기시대는 빙하기 이후 달라진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로이 토기와 간석기를 만들고 정착생활을 시작한 시기이다. 신석기인들은 물과 식량이 풍부한 바닷가나 강가에 움집을 짓고 고기잡이와 사냥, 야생식물을 채집하면서 살았으며 늦은 시기에는 조, 기장 등을 재배하는 밭농사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실로 짠 옷감이나 동물가죽으로 간단한 형태의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옥.동물뼈와 뿔.조가비 등으로 몸을 꾸몄다. 강원지역의 집터와 무덤유적에서 출토되는 빗살무늬토기, 덧무늬토기, 그물추, 작살, 결합식 낚시 등의 다양한 유물들은 우리나라 이른 시기의 신석기문화를 이해하거나 신석기시대의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양양 오산리.지경리, 고성 문암리, 춘천 교동 등을 비롯한 50여곳의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출처:춘천박물관>


양양 오산리 유적,
양양군 오산리의 호숫가 모래언덕에 우치하는 집터 유적으로, 이른 시기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의 문화층이 남아 있다. 최하층에서는 소량이기는 하지만 좀돌날 몸돌과 좀돌날이 출토되어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이행과정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신석기시대의 문화층은 아래층에서 덧무늬토기와 아가리가 넓은 납작바닥의 눌러찍은 무늬토기, 가운데층에서 납작바닥의 무늬없는 토기, 위층에서 우리나라 중서부지방의 전형적인 뾰족바닥의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어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토기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출처:춘천박물관>


납작밑 토기 (Bowl with flat bottom), 양양 오산리


나뭇잎이 찍힌 토기바닥(Pottery with leaf imprint)와 점줄무늬 토기(Comb-pattern pottery), 양양 오산리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인들이 살았던 양양오산리 선사유적지.오대산 자락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드는 대표적인 하천인 남대천 끝자락에 자리한 늪지대처럼 생긴 지형에 있는 선사유적지이다. 이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유적지 중의 하나로 기원전 6,00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산리 선사유적지는 낙산사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4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재는 당시의 집터와 복원한 움집, 유물전시관 등이 있다. 다른 선사유적지와 마찬가지로 볼거리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주변 지형과 자연환경 등을 살펴보면서 신석기인들이 살았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데 의의가 있는 유적지라 할 수 있다.


춘천 교동 동굴유적,
춘처시 후평동 봉의산 기슭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동굴유적이다. 발견 당시 동굴 안에서 세 구의 사람 뼈와 함께 생활용구인 석기와 토기, 꾸미개인 대롱옥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모두 납작바닥으로 무늬가 없는 한 점을 제외하고 모두 아가리 부분에 점이나 선으로 이어진 무늬가 베풀어져 있다. 이런 형식은 우리나라 동북지방과 양양 오산리 유적의 토기에 많이 보인다. 석기는 오산리 출토품과 같은 이음식 낚시바늘과 후포리 출토품과 같은 대형 돌도끼 등이 있다.


납작밑토기(Bowl with flat bottom), 춘천교동동굴


신앙과 예술
신석기시대의 유적에서 출토되는 개.새.곰.멧돼지의 동물모양 토제품은 토테미즘, 흙을 만든 여성의 전신상은 당시 모계씨족사회에서 생산의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 사람얼굴모양의 토제품과 조가비는사람모양의 토우.생식기형 석물과 함께 원시종교 또는 당시의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들이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짐승이나 물고기의 뼈.뿔.이빨.돌.옥.흙 등으로 만든 치레걸이, 팔찌, 발찌, 귀걸이 등은 신석기인들이 자신의 몸치장뿐만 아니라 신앙과 의례,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귀걸이(Earings,복제품, 고성문암리)와 꾸미개(Personal Ornaments, 영월 공기리), 신석기시대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지 ,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지는 지금까지 러시아 아무르강과 동북3성,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서 형성된 동북아시아 신석기 유적 중 최남단에 위치한 유적이라고 한다.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으로 알려져 있는 양양 오산리 유적이 형성된 시기인 B.C.60,00~3,000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초기 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동안 사람이 정착했던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간석기의 출현
석기시대의 도구를 만드는 기술의 혁기적인 변화는 숫돌로 재료의 일부 또는 전체를 갈아서 만드는 간석기의 출현이다. 신석기인들은 구석기인들과는 달리 돌이나 뼈를 원하는 형태에 맞춰 잘라내고, 갈고, 구멍을 뚫어 날카롭고 정형화된 도구를 만들었다. 간석기의 출현은 신석기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서, 초기에 이미 가는 기술이 등장하였지만, 간석기와 함께 뗀석기도 많이 사용하였다. 이밖에 날만 간 부분 간석기를 사용하는 등 그 쓰임새에 따라 만드는 방법을 달리하였다. 석기의 용도에 따라 사냥용, 고기잡이용, 농경옹, 일상생활용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사냥용에는 화살촉과 창끝, 고기잡이용에는 이음낚시 축. 그물추.작살, 농경용에는 괭이.보습.낫 등이 있다. 일상생활용으로는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공구용의 도끼.끌.대팻날.자귀 등이 있고 곡물이나 도토리 등 열매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만드는데 쓰이는 조리용의 갈돌과 갈판.공이 등이 있다. 이밖에 의식주 생활에 기본적으로 쓰이는 칼.송곳.가락바퀴.바늘.발화석 등과 석기를 만들 때 쓰이는 망칫돌과 숫돌이 있다. <출처:춘천박물관>



Polished stone tools), 강원도 각지


갈돌.갈판(Saddle Quern. Milling stone), 신석기시대, 강릉 하시동. 곡물.열매 등 주로 견과류의 껍질까기와 파쇄 등에 사용되거나 이들의 제분에 사용된 가공도구이다. 모양은 긴 타원형, 직사각형, 활꼴 등을 하고 있다.


가락바퀴(Spindle Whorls)와 뼈바늘, 신석기시대, 영월 공기리. 가락바퀴는 실을 뽑을 때 사용하는 가장 오래된 방적구의 일정이다. 실을 잣는데 회전을 돕는 바퀴로 방추차라고도 한다. 중앙의 둥근 구멍에 축이 될 막대를 넣어 고정시켜 사용한다. 선사시대의 가락바퀴는 원반모양, 팽이모양, 주판알 모양, 공모양 등이 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뼈나 흙, 돌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었다. <출처:춘천박물관>


신석기인의 생활, 고기잡이.사냥.채집
신석기인들은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하며 이동하던 구석기시대와 달리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른 식량확보를 위해 물고기와 조개 등 먹을 거리가 풍부한 강이나 바다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바닷가나 강가에 자리잡고 정착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움집을 짓고 살면서 새로이 토기를 만들고,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를 사용하였다. 신석기시대의 여러 유적에서 출토된 이음낚시, 그물추, 돌살촉, 탄화된 도토리, 갈돌과 갈판 등과 조개더미에서 발견된 각종 짐승과 물고기의 뼈 등은 신석기인들의 주요 생계수단이 고기잡이와 사냥, 채집 생활이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정착생활을 가능하게 한 주요 요인이었다. 또한 낫, 괭이, 뒤지개 등의 농경에 관계되는 석기를 비롯하여 조, 피, 기장 등 탄화된 곡물과 개뼈 등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은 중기 이후가 되면 본격적인 농경은 아니지만, 점차 밭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면서 직접 식량자원을 생산하고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출처:춘천박물관>



집 먹을거리(Gathering foods), 신석기시대, 강원도 각지


고기잡이 도구(Fishing tools), 신석기시대, 강원도 각지

신석기시대 토기
신석기시대의 토기는 무늬 구성의 방법에 따라 덧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로 크게 나뉜다. 덧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의 토기로, 토기 표면에 진흙띠를 붙이거나 겉면이 도드라지게 무늬를 만든 것이다. 주로 우리나라 동남해안 지역에서 출토되며, 강원도에서는 양양 오산리, 고성 문암리 등의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그릇의 겉면에 각종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토기로,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를 대표한다.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형태와 무늬구성에 차이를 보인다. 강원지역에는 납작바닥의 깊은 바리가 대표적이며, 이른 시기에는 짧은 선이나 점으로 구성된 무늬가 몸통 윗부분 또는 아가리 둘레에 새겨진 것이 많고, 중기 이후에는 타래무늬가 등장한다. 후기에는 번개무늬나 붉은칠토기와 함께 민무늬토기의 비율이 증가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양양 지경리.가평리.송전리, 강릉 교동.안인리, 고성 철통리 등을 들 수 있다. <출처:춘천박물관>



석기시대 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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