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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박물관] 강원도 삼국시대 신라의 유물

younghwan 2012. 3. 3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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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한시대 동예를 거쳐서 삼국시대의 강원도는 삼국의 변방지역으로 그 세력의 성쇠에 따라서 백제, 고구려, 신라의 영향권에 있었다. 춘천과 원주를 중심으로 한 강원도 영서지역은 한강유역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삼국간의 중요한 쟁탈지역의 일부분으로 원래 한강유역에 자리잡고 있었던 백제의 영향권에 있다고, 한강으로 남하한 고구려, 진흥왕대 이후는 한강유역을 장악한 신라의 영역이었다. 영동지방은 삼한시대에는 부족국가 동예의 영역이었다가 삼국과는 독립된 지역에 가까웠는데 지증왕대 이후에는 대체로 신라의 영역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강원도 지역에서 삼국시대의 유적지로는 남한강 유역의 원주 법천리 고분군에서 백제의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북한강 유역인 춘천지역에서 고구려 고분들이 여러곳 확인되고 있다. 신라의 유적지로는 강원도 동해안 일대의 강릉 초당동, 병산동 일대에서 덧널무덤, 돌덧널무덤과 함께 전형적인 신라 유물인 금동관과 관식 등이 출토되고 있다.

강원의 고대문화
기원전 1세기 무렵, 한반도 전 지역으로 철기문화가 확산되면서 단단하고 예리한 철제 농기구와 무기의 발달을 가져와 사회분화가 촉진되고 지배질서가 확립되면서 각지에 새로운 정치집단이 등장하였다. 문헌 자료에 의하면 강원지역에는 예맥, 실직국, 동예 등의 부족국가로부터 영서 지역의 백제와 고구려, 영동지역의 신라의 영향을 받은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가 멸망하는 10세기 초까지의 흔적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춘천 중도, 원주 법천리, 강릉 초당동, 철원 궁예도성 등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과 자료를 통해 철기의 유입과 그로 인한 변화, 철기의 제작과정, 고대인의 생활과 미의식, 고대국가의 성장과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춘천박물관>

삼국문화
삼국시대는 우리나라의 북쪽가 만주 일대에 강성해진 고구려와 남쪽의 마한과 진.변한 소국들이 각각 성장한 백제, 신라, 가야가 발달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주변지역을 통합하면서 고대 왕권국가로 성장.발전한 시기이다. 이 시기의 강원지역은 삼국의 변방에 해당하였으나, 세나라를 잇는 주요한 길목에 위치하였다. 때문에 영서지역은 백제와 고구려의 영향권에 차례로 놓였고, 영동지역은 신라의 영향을 받는 등 치열한 각축장이 되기도 하였다. 원주 법천리 고분군에서는 중국산 양모양청자와 함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고구려 계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돌방무덤이 춘천의 방동리.신매리, 양양 포월리 등에서 확인되었으며, 강릉 초당동.병산동 등 동해안 일대에서는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에서 금동관과 관식 등 신라와 관련있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출처:춘천박물관>

신라와 강원
6세기 무렵 신라는 중앙 정부의 조직화된 군대가 지방에 주둔하게 되고, 그 군단을 중심으로 지방통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지증왕 6년(505)에는 처음으로 실직주(삼척)를 설치하고 군주를 파견하였다. 13년(512)에는 이사부를 하슬라주의 군주로 삼았다. 이무렵 신라의 동북경계는 계속 북으로 올라가 진흥왕 17년(556)에는 비열홀주(안변)를 설치하였으며, 마운령과 황초령에 순수비가 세워졌다. 이후 29년(568)에는 군사 중심지를 후퇴시켜 달홀(고성)에 주를 설치하였다. 신라는 진흥왕 12년(551)에 거칠부가 한강 상류 10개 군을 빼았았다. 100년 뒤인 선덕여왕 6년(637)에는 우수주(춘천)를 주었으며, 이후 강원의 전 지역은 신라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출처:춘천박물관>

고구려와 강원
신라는 고구려의 강력한 국력에 대비하여 사신을 파견하고, 나중에 왕이 될 실성을 인질로 보냈다. 장수왕 15년(427)에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자 신라는 눌지왕 17년(433)에 백제와 동맹을 맺는다. 이후 신라 또한 국력이 강해져 실직(삼척)과 하슬라(강릉) 지역을 놓고 고구려와 각축을 벌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에 신라 자비왕은 15세 이상의 하슬라 사람을 니하에 보내 성을 쌓기도 하였다. 강원지역에서 고구려의 영향을 보여주는 자료로는 춘천 방동리의 모중김 천정 고분이 있다. 무덤양식은 고구려 벽화고분에서 흔히 보이는 구조로 6세기 후반 신라가 북상하기 전 강원지역이 고구려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는 역사기록과 일치한다. <출처:춘천박물관>

권력의 상징, 금동관
삼국시대에는 신분을 나타내거나 특별한 의식을 집행할 때 그 권위를 상징하는 관과 관장식을 착용하였다. 삼국시대의 관은 대체로 금으로 제작된 것이 많으나 금동제, 은제, 동제도 발견되고 있다. 강원지역에서 출토된 관으로는 강릉 초당동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동해 추암동에서 출토된 동관이 있다. 금동관이 출토된 강릉 초당동 유적은 신라의 수장급 무덤인 돌덧널무덤이다. 경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출자형 금동관이 은제 새날개 모양의 관장식, 금귀걸이와 함께 출토되었다. 또한 6~7세기 대 중소형 무덤군인 추암동에서 출토된 동관은 신라식 출자형 입식의 퇴화과정을 보여주는 유물로, 성인 여성 피장자의 머리에 씌어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이외에 강릉 병산동 돌덧널무덤에서는 은제 관장식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관과 관장식들은 신라의 강원도 진출 양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출처:춘천박물관>



금동관(Gilt-bronze Crown), 강릉 초당동, 신라


금동관 꾸미개


강릉 초당동에서 출토된 금동관을 복원한 모습이다. 전형적인 출(出)자형을 하고 있는 신라의 금동관이다. 이 지역을 신라가 장악했던 시기에 이지역 유력자에게 하사한 것으로 보인다.

꾸미개
삼국시대의 꾸미개는 이전의 시기에 비해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전 시기에는 수정, 마노, 비취, 유리 등으로 만든 구슬이 유행하였으나, 차츰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을 선호하면서 다양한 꾸미개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 종류로는 금이나 은, 유리, 수정 등으로 만든 관, 관식, 귀걸이, 팔찌, 반지, 목걸이 등 다양하다. 강원지역에서 출토된 이 시기의 꾸미개로는 원주 법천리의 금귀걸이가 있는데, 이는 백제의 소박하지만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강릉 초당동과 병산동 등 영동지역의 신라 고분에서는 그 예가 많지는 않으나, 금동관.동관.금동허리띠장식, 은제 새모양날개 관장식 등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은 지방의 수장들에게 하사한 것으로, 경주지역 최고 지배층의 것보다 질은 떨어지지만, 경주와 같은 모양의 꾸미개들이다. 신라가 고대국가로서의 왕권과 국력이 커짐에 따라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출처:춘천박물관>


구슬옥(Jades), 신라, 강릉 방내리, 강릉 초당동


관모장식(Crown Ornaments) 강릉 병산동, 강릉 초당동, 신라. 고구려의 조우관을 장식하던 깃털과 마찬가지로 새의 날개를 상직하는 관모 장식이다.


팔찌(Bracelet)와 귀걸이,  강릉 병산동.


귀걸이(Earings), 신라, 강원도 각지


허리띠 장식(Buckle Accessories, 홍천 역내리)과  운모로 만든 달개(Spangles, 강릉 초당동)


뿔잔(Horn-shaped Cup, 동해 구호동), 신라


말갖춤
말갖춤은 말을 부리기 위한 도구로서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 말기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기능에 따라 말을 다스리기 위한 제어용, 기수의 안정을 위한 안정용, 말을 장식하기 위한 장식용 등이 있다. 제어용에는 재갈과 재갈멈치, 고삐 이음쇠가 있고 안정용에는 안장, 앞.뒤가리개, 발걸이가 있다. 장식용에는 말띠꾸미개, 말띠드리개, 말방울, 뒤꽂이 등이 있다. 강원지역에서는 원주 법천리와 강릉 병산동 고분군에서 재갈과 발걸이, 강릉 초당동 고분군에서 말띠드리개, 삼척 갈야산 고분군에서 재갈과 말띠드리개 등이 출토되었다. <출처:춘천박물관>


재갈(Bit)과 말발걸이(등자, Stirrup), 강릉 초당동, 재갈은 말을 제어하기 위하여 입에 물리는 쇠토막이다. 굴레에 달렸으며, 양끝에 고삐를 매게 되어 있다.


말띠드리개(Horse Strap Pendants), 삼국시대, 강릉 초당동과 원주 법천리, 강릉 병산동


무구
무구에는 공격용 무기와 방어용 무기가 있다. 방어용 무기로 갑옷과 투구, 목가리개, 정강이가리개, 팔뚝가리개 등이 있고, 공격용 무기는 화살촉, 칼, 창, 투겁창, 갈고리 등이 있다. 삼국시대의 무기로 손잡이와 마구리에 둥근 고리가 장식된 고리자루칼이 특징이다. 고리 안에는 용이나 봉황 모양이 장식된 고리자루칼과 세고리자루칼, 세잎고리자루칼 등이 있다. 특히 고리 안에 용이나 봉황을 장식하거나 용무늬를 새기는 수법은 중국 육조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권력자의 권위의 상징물로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강원지역에서는 투겁창과 화살촉 등의 공격용 무기들이 소량 출토되고 있다. 강릉 초당동 무덤에서는 세입고리자루칼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종류의 칼은 신라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점차 세력을 확장하면서 그 지배 아래에 들어온 현지으 수장들에게 하사한 위세품 또는 하사품으로 당시의 사회 구조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출처:춘천박물관>


고리자루칼(Sword with Ring Pommels), 양양 원포리, 강릉 초당리, 원주 법천리


고리자루칼(Sword with Ring Pommels), 강릉 병산동


투겁창(Socketed Spearhead, 동해 송정동. 강릉 병산동)과 칼(Knife), 신라


쇠화살촉(Iron Arrowheads)


관고리 장식(Coffin handles, 양양 포월리)와 미늘쇠(Saw Knifes, 강릉 초당동.병산동)

통일신라 문화
삼국을 통합한 신라는 영토가 확장되자 신문왕 5년(685)에 원래 신라 지역과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을 합한 전국을 9주로 나누고, 그 아래에 군과 현을 두는 주군현 체제를 완성했다. 또한 5개의 소경을 설치하여 지방 지배를 강화하였으며, 말단 행정구역으로 촌을 설치하였다. 촌에 대한 국가으 지배는 촌주의 협력하에 이루어졌으며, 촌주 가운데 일부가 호족으로 성장해 후삼국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신라의 동북쪽 변방에 해당되는 강원지역은 9주5소경 가운데 고구려의 옛 땅인 수약주와 하서주, 그리고 북원경에 편입되었다. 강원지역에는 예맥, 실직국, 동예 등의 부족국가로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가 망하는 10세기 초까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강원 지역의 곳곳에서 통일신라 토기와 기와 등의 출토되고 있으며, 양양 진전사지와 선림원지 등의 대표적인 통일신라 절터도 남아 있다. <출처:춘천박물관>


통일신라토기
통일신라 토기는 6세기 이후 신라 토기의 전통에 고구려와 백제의 돌방무덤과 함께 외래요소가 결합되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짧은 다리에 네모 또는 마름모꼴의 작은 굽구멍이 뚫린 굽다리접시와 뚜껑사발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는 중국 수.당 도자기의 토화무늬나 인화무늬에서 개발된 도장무늬토기가 유행하였다. 그리고 중국 당나라와의 본격적인 교류와 불교의 영향으로 뼈항아리와 병 등과 함께 연유를 사용한 토기가 만들어졌다. 통일신라 말이 되면 도장무늬토기는 민무늬토기로 바뀌고, 입큰병 등 청자와 비슷한 고려토기로 바뀌게 된다. 강원지역에서는 춘천 봉의산, 정선 신원리, 홍천 내역리 등의 유적에서 통일 신라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출처:춘천박물관>


통일신라시대 토기

통일신라 기와
통일신라의 기와는 삼국시대의 전통을 바탕으로 당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무늬가 새겨진다. 연꽃무늬는 종래의 홑판 양식에서 연판 안에 자엽이 새겨지고, 테두리에 구슬무늬가 배치된다. 연꽃 외에도 보상화, 인동, 풀꽃 등 식물을 소재로 하는 서화므니와 봉황, 기린, 사자 등 벽사와 길상을 상징하는 다양한 동물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외에도 벽사의 상징으로 지붕의 마루끝에 장식되었던 도깨비기와를 비롯하여 서까래막새, 마루기와 등 지붕의 부위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강원지역에는 양양 선림원,태백 본적사, 원주 법천사, 홍천 물걸리사 등의 절터에서 도깨비 무늬기와, 다양한 무늬의 수막새와 암막새, 전돌 등이 출토되었다. <출처:춘천박물관>


도깨비기와(Roof tile with monster eye design), 양양 선림원지


사자무늬 수막새기와(Roof-end tiles with lion design), 태백 본적사지


연꽃무늬 수막새(Roof-end tiles with lotus design), 마루 수막새(Roof coner tile), 양양 선림원지


당초무늬 암막새(Roof-end tiles with arabesque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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