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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민속마을, 전형적인 마을서당인 강학당

younghwan 2012. 6. 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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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양동민속마을 입구에서 동쪽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이 마을 여주이씨 집안의 서당인 강학당이다. 마을입구를 오가는 사람들과 넓은 벌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ㄱ'자형으로 앞면 4칸으로 어린학생들이 공부하던 넓은 대청마루 2칸과 양쪽에 온돌방을 1칸씩 두고 있는 구조이며, 건물 왼쪽에 어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대청마루와 책과 경판을 보관하던 장판각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작은 방이 있다.

 서당은 삼국시대 이래로 지방의 호족들이 후세들을 교유시키기 위해서 세운 사립교육기관을 통칭하며, 당나라에서 유학과 문물 등을 많이 받아들였던 통일신라 이후 각처에서 성행하였다고 한다. 대체로 서당은 공립교육기관인 향교나 성균관에 들어가기 전 공부를 하던 마을단위의 사설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낙향한 유력인사가 서당을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서 개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퇴계의 도산서당을 비롯하여 유력인사가 개설한 서당은 점차 중등교육기관 성격을 갖은 서원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서당은 대부분 조선후기 학자들이 자신을 모시는 서원으로 바뀔 것을 고려하여 세운 것이 많다. 양동마을 강학당은 이런 서당의 형태는 아니고 순수하게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마을 서당으로 보이며, 전국에 남아 있는 많지 않은 순수 서당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양동마을의 경산서당은 실제로 서원을 세울 목적으로 건립한 서당이며 웬만한 서원보다도 큰 규모이다.



양동마을 동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서당인 강학당. 건물의 형태나 용도 등을 볼 때도 어른들을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순수하게 어린 학생들을 가르키기 위해 세운 서당 건물로 보이며, 서원이나 다른 서당 건물에 비해서 실용적이며 상당히 개방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는데, 어린 학생들이 공부를 배우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청마루 옆에 있는 큰 온돌방. 겨울 동안 공부하던 장소로 보이는데, 방이 큰 편이다.


왼쪽편 날개채에는 1칸짜리 대청마루와 책과 경판을 보관하던 작은 골방인 장판각. 주로 서당 훈장이 손님을 맞거나 책을 보던 공간이었던 것 같다.


뒷편에서 본 양동마을 서당인 강학당


강학당에 딸린 살림집


서당으로 올라오는 길


서당 아래에는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정자인 심수정이 있다. 원래 심수정이 양동마을 여주이씨의 서당이었으나, 철종대에 화재로 소실되어 그 안쪽에 구한말에 크게 늘어난 마을서당의 모습으로 강학당을 지은 것 같다.


마을 큰길에서 보이는 마을 서당인 강학당. 동쪽편 언덕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강학당
이 집은 여주 이씨 집안의 서당으로 지족당 이인상이 고종 7년(1870)경에 세웠다. 경주 손씨 집안의 서당인 안락정과 쌍벽을 이룬다. 공부하는 곳이니 만큼 대문과 담장 없이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었으며, 앞마당에서 마을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장판각'이라는 편액이 걸린 1/3칸짜리 방은 책과 경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이씨 집안은 이 서당 이외에도 규모가 좀더 큰 경산서당을 소유하고 있다. 동쪽에 서 있는 행랑채는 서당의 살림살이를 맡았던 곳이다. <출처:양동민속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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