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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에 위치한 이성산성은 삼국시대 신라가 쌓은 산성이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해발 209m의 이상산 정상을 중심으로 남쪽편 계곡을 막은 형태의 포곡식 산성이다. 이성산성은 한성백제의 수도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몽촌토성, 풍납토성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한성백제시기에도 산성이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남아 있는 석축과 출토유물들은 대부분 신라의 것으로 보아 신라가 쌓은 산성으로 보고 있다. 이성산은 남한산성을 이루고 있는 주요 봉우리 중 청량산과 연결되어 있으며, 서울 강동지역에서 하남지역의 한강유역을 통제하기 위한 주요 군사적 거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성산성 북쪽 한강 너머로는 고구려 산성인 아차산성이 있고, 남쪽으로는 남한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이성산성은 배후의 평야지역을 방어하고 한강이북으로 침입하는 적을 제압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시 여겨지던 산성으로 통일신라 이후에도 이 지역을 관할하는 군사.행정의 중심지로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을 관장하는 행정기구인 광주부(광주목) 관아가 이성산성 남쪽 춘궁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춘궁동은 춘장리의 춘자와 궁말의 궁자를 붙여 춘궁동이 되었다고 하며, 춘장은 엣 백제시대에 궁궐이 있던 마을을 뜻하며, 궁말도 백제 때의 궁궐이 있었던 것을 뜻한다고 한다.

 이성산성은 총 길이 1,925m의 석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내부면적은 160,361㎡에 이른다. 현재는 남쪽편 저수지 아래와 동문지에 돌로 쌓은 석축의 일부가 남아 있고, 이성산성 둘레길이 성벽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안에는 장방형의 건물지와 제사유적으로 보이는 8각형, 9각형의 건물지와 2곳의 저수지가 남아 있으며,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이 산성의 축성연대(608년으로 추정)를 알려주는 목간을 비롯하여, 철제농구와 무기, 벼루를 비롯한 토제품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삼국시대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했던 진흥왕 이후에 쌓은 산성으로 당시에 쌓은 석축의 일부가 남쪽편 저수지 아래와 동문지 부근에 남아 있다.


이성산성의 구조


이성산성 입구


성벽은 외형상 토성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안쪽으로는 흙이나 돌로 다져쌓고, 바깥쪽에 석축을 쌓은 전형적인 석축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 아래부분에 석축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이 성벽은 이성산 계곡을 막아서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를 만들고, 성벽을 겸하고 있다.


성벽 아래쪽에 남아 있는 석축. 중간정도 크기의 돌을 다듬어 석축을 쌓고 있는 신라 산성 성벽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성벽 중간에 성을 출입하는 계단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석축의 일부가 남아 있다.


성안쪽에 남아 있는 석축


배수구로 보이는 시설


이 곳에는 계곡의 물을 모아서 보관하던 장방형의 저수지가 있었고, 큰 건물터 또한 발견되었다고 한다.


저수지는 석축으로 쌓은 장방형의 형태로 발굴조사 결과 저수지를 쌓았던 석축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저수지는 2차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산성 내 자연게곡 아래쪽을 막아 저수를 하여 사용하였고, 2차 저수지는 1차 저수지를 준설한 후 4면에 석축을 하여 만들었다. 석축은 매단 50x20x30cm의 돌로 5cm 가량 들여 쌓기를 한 것이 특징이다. 성벽은 외벽을 옥수수알 모양으로 아름답게 돌로 다듬어 축성하였고 그 속에는 이보다 이른 시기에 축조된 또 다른 성벽이 조사되었으며 성벽 내에는 배수로도 잘 남아 있다. 이 산성은 백제가 처음 축조한 것으로 보이며, 그 후 고구려, 신라가 보축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하남시청>


이성산성 저수지 뒷편의 건물터


이성산성 남쪽편으로는 한강유역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인 남한산성이 있고, 그 사이에 위치한 하남시 춘궁동 일대는 병자호란 이후 광주부 관아를 남한산성으로 옮기기 전까지 한강지역을 통제하는 군사.행정의 중심지였다. 하남산성의 군사적인 위치 또한 남한산성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하남 이성산성 입구에서 건물터와 동문지로 올라가는 길.


이성산성 동문지로 올라가는 길. 현재는 돌로 쌓은 석축이 없지만, 이 길을 따라서 산성 석축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성산성 동문지이 있는 산성 동쪽편 언덕. 하남시 일대 한강유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좋은 곳으로 망루의 역할을 겸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성산성 동문지. 이성산성 동문의 형태는 사다리 등을 이용해서 출입이 가능한 凹 모양의 현문식 성문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성산성은 한강주변에 접해있는 여러 성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리적 가치를 지닌 유적이다. 동문의 형태는 凹 모양의 현문식(출입구가 성벽 중간에 있어 드나들 때 사다리 등의 특수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문)이며, 'ㄱ'자형을 꺾여있어 적으로부터 공격시 효율적인 방어가 가능하도록 축조되었다. 외벽 안쪽으로는 2차 개축 때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문지공석(기둥을 무너지지 않게 고정시키는 돌), 문비고정석(문을 닫을 때 문이 뒤로 밀려나지 않게 고장시키는 돌)과 집수시설, 배수로 및 두 차례 이상 개축한 것으로 보이는 측벽이 있다. 문비고정석 중앙 하부는 암반층을 굴토하여 집수시설과 배수로를 만들었으며, 출수구로 물을 배출시킬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경사로를 만들어 조성하였다. 이는 동-서 방향의 경사로 인해 성 내부로 흘러 들어온 물을 모아 성 외부로 배출시키기 위한 것이다. <출처:하남시청>


이성산성 동문 부근의 석축


이성산성 동문지에서 내려다 보이는 넓은 평야지대인 하남시와 미사리 일대의 한강 유역. 원래 이성산성에서는 대부분에 지역에서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구조를 하고 있으나, 지금은 나무가 크게 자라서 시야를 가려서 이곳에서만 한강유역을 조망할 수 있다.


건물터 등이 남아 있는 이성산 정상부로 올라가는 길


이성산 정상 아래에 남아 있는 건물터. 장방형의 큰 건물터는 창고로 쓰였던 건물로 보이며, 9각형 모양의 건물터는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방형 건물지는 이성산성 정상부에 위치하며 크기는 32.02 x 7.88m, 내부 면적은 76.5평이다. 건물의 장축방향은 북서-남동방향으로 정북에서 약 60˚ 정도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초석의 면을 다듬지 않고 기둥이 놓이는 윗면만 약간 다듬어 투박한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했다. 내부에 온돌이나 난방과 관련된 유구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일상생활용 건물이 아니라 창고의 역할을 하는 누각형 건물인 것으로 판단된다. 9각 건물지는 9라는 숫자가 완결무결함을 의히마는 하늘의 숫자이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천단으로 볼 수 있고, 9각 건물과 대칭되는 지점에 있는 8각 건물지는 8이 땅을 상지하는 숫자이므로 지신에게 제사지내는 사직단으로 추정된다. <출처:하남시청>


8각모양의 건물터는 땅을 상징하는 토지신을 모시는 제사시설로 사직단이라 할 수 있는 건물이다.

8각 건물지는 건물 중심부에 위치한 하나의 초석을 중심으로 1m 거리에 4개의 초석이 위치하며, 2.70m와 4.40m 거리에 각각 8개의 초석이 놓여 있는 8각형의 건물지이다. 안쪽 초석들 사이에 높이 50cm 내외의 계란형 돌들이 세워져 있는데, 이 돌들은 너무 힘이 약하고 윗면이 둥글어 초석으로 보기는 어렵과 건물의 구조와 관계없는 의례적 의미의 구조물로 생각된다. <출처:하남시청>


하남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연적모양 병과 작은 물건에 매단 꼬리표 목간들, 목간이 들어있던 항아리. 목간은 전국적으로 실무적인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터 북쪽편으로는 경사진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산책길 자체가 옛 성벽의 흔적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성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이성산 정상. 이성산은 해발 209m의 낮은 구릉으로 남한산성 청량산에서 금암산을 따라 이어진 줄기에 속한다. 산정상에 있는 시설은 산불을 감시하기 위한 초소라고 한다.

이성산
춘궁동 산36번지 일대에 위치한 산으로서 해발 209m이며 춘궁동과 초이동을 끼고 있다. 남한산성에서 금암산을 따라 이어진 줄기에 속한 이 산은 이성산성이라 불리우는 석축산성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의 왕자 두 사람이 이 산에 거주하였다하여 이성산이라 칭하였다는 설이 있다. 발국조사 결과 삼국시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백제 도읍지와 관련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아 오고 있는 산이다. <출처:하남시청>


이성산성 정상에서 서쪽편으로 내려오는 길. 옛 성벽을 따라서 길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성산성 서쪽편 길가에 남아 있는 거북바위(별자리바위)이다. 거북이 영상을 하고 있는 바위로 등위에 삼태성의 별자리가 새겨져 있으며 신양유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성산성 서남쪽편 길


이성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남쪽편 계곡의 성벽과 연결된다.


하남시 춘궁동 광주향교 부근에서 본 이성산. 그리 높지 않은 구릉이지만 북쪽편으로는 높은 봉우리가 없어서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거점이었다.


이성산성 입구는 서울 송파구와 하남시를 연결해주는 국도와 외곽순환도로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이성산성이 있는 이성산 등산로 입구.


이성산성 들어가는 길


이성산성 아래 춘궁동 마을. 근처에 고려시대 절터인 춘궁도사지가 있다.

이성산성은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이성산에 있는 높이 209m의 포곡형 석축 산성이다. (면적 160,361㎡). 이 산성은 한강에 접한 여러 성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인 중요성과 성내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유물 등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중요시 되어 왔다.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1986년부터 2003년까지 10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장방형, 9각, 8각, 12각 등의 건물지와 2개소의 저수지, 신앙유적 등의 유구가 노출되었고, "무진년정월십이일 붕남한성도사(608년으로 추정)"가 기록된 목간, 자, 목제인물상, 철제농구와 무기, 벼루를 비롯한 토제품, 토기, 기와 등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성산성은 두 차례 이상 대규모의 수축을 거친 것으로 생각된다. 성을 처음 쌓은 세력이 백제 또는 고구려라는 학설이 있으나, 현재 드러낸 고고학적인 유물과 성의 구조는 신라에 의해 축성되고 사용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출처:하남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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