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변 남쪽에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계 토성인 육계토성이다. 초기 고구려와 백제의 경계지역으로 보이는 임진강 남쪽 파주의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삼국시대 유적이지만 농경지로 사용되었고 정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구분을 하기 쉽지 않은 곳이지만 전체적으로 서울 올림픽 공원내에 있는 몽촌토성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이 육계토성의 북쪽편에는 고구려 성인 연천 호로고루와 당포성, 남쪽편에는 파주 칠중성이 자리잡고 있어 생생한 격전의 현장임을 느낄 수 있다.
이 곳은 임진강에서 수심이 가장 낮은 걸어서 도하할 수 있는 가여울이 있어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지점이었으며,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임진강이 북쪽으로 돌출해 있는 지점으로 가여울과 서쪽편 두지나루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지점에 성을 쌓고 있다. 성벽은 2~4단 높이의 석축 기단위에 흙으로 쌓은 토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발굴조사결과 고구려 토기를 비롯하여 항아리, 철모,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강안에 최근에 쌓은 대전차방벽으로 막혀 있지만, 원래는 육계토성이 있는 지점까지 임진강물이 연결된 수로가 있어 성앞까지 배가 드나들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진강 북쪽의 강안 절벽 위에 쌓은 고구려군 요새인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 등과는 달리 임진강의 지형적 특성으로 평지에 성벽을 쌓은 평지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고구려 요새와는 달리 성벽이 요새화되어 있지 않아서 방어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고구려와 한강유역을 다투기 이전에 주거지와 교통로에 쌓은 읍성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는 산성의 형태를 하고 있는 파주 칠중성이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한 요새로서의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파주의 북쪽 끝 임진강변 평야에 자리잡고 있는 육계토성 유적지. 평야지대 밭과 밭 사이의 언덕처럼 보이는 것이 토성이다. 서울 올림픽공원 내에 위치한 몽촌토성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육계토성은 오랜세월 농경지로 사용되었던 이곳은 지금도 외형상으로는 농경지를 쌓은 자연스러운 축대처럼 보인다.
2009년 봄. 육계토성 북쪽 성벽
이 곳도 밭 사이의 언덕인데 토성 동쪽편 성벽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된다.(?)
육계토성 성벽이 일부가 잘려나간 모습. 자연지형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쌓은 성벽임을 잘 알 수 있게 해 준다.
성벽은 돌로 쌓은 2~3단의 석축위에 흙으로 성벽을 쌓은 토축성으로 높이 3~5m 정도의 성벽으로 전형적인 백제계 토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돌로 쌓은 석축의 일부가 외부로 드러난 곳을 볼 수 있다.
2009년 봄 육계토성
유계토성은 방향에 따라서 동문.남문.서문을 두고 있었으며, 이곳 서문지 부근으로 임진강 물을 연결하여 수로를 이용하여 배가 출입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벽 사이로 출입구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서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강과 수로로 연결되어 있던 육계토성 서쪽편.
이곳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원래 농경지로 사용하였던 육계토성 내부는 최근에 유적지로 관리해서 그런지 농사를 짓고 있지는 않으나 잡초가 무성하게 남아 있다.
2009년 봄. 성안은 지금도 꽤 넓은 편으로 군사들의 숙영지라기보다는 읍성처럼 거점도시에 쌓은 주거시설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손잡이 달린 시루, 원삼국시대, 파주 주월리 유적(육계토성). 부뚜막에 올려 음식을 찔 때 쓰는 조리용 토기로 바닥에 수증기가 올라가도록 하기 위한 구멍이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장동호, 고구려, 파주 주월리 유적(육계토성), 암갈색을 띄며 동체부는 완만한 원통형으로 고구려 토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닥은 평평하며 표면은 매끈하게 마연하였다. <출처:경기도박물관>
평평한 평지를 이루고 있는 육계토성 내부. 이 곳에서 도강이 가능한 임진강 여울목과 주변 나루터 등을 감시할 수 있다.
육계토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임진강 유역. 지금은 강안에 한국전쟁이후 대전차 방벽으로 높은 둑을 쌓아 임진강이 보이지는 않지만 원래는 임진강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원래 수로로 연결되었던 임진강으로 내려가는 길. 인공적으로 둑을 높게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유계토성과 임진강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높은 둑
임진강에서 가장 수심이 낮은 여울목으로 내려가는 길. 지금도 도하를 위해서 이곳을 이용하는지 큰 길이 연결되어 있다.
육계토성 앞을 흐르는 임진강.
임진강
육계토성이 있는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 마을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 육계토성이 견고한 성벽이 아니기때문에 이곳도 방어를 위한 산성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육계토성이 있는 지역/ 임진강 남쪽의 평야지대에서 약간 높은 지대를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육계토성 약간 남쪽에 위치한 삼국시대와 나.당전쟁시 격전장이었고, 한국전쟁당시 매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파주 감악산 아래 칠중성 정상에서 바라본 육계토성이 있는 지역의 모습입니다.
수레바퀴 연결축(한성백제, 파주 주월리 유적(육계토성)), 거여구의 일종으로 수레바퀴를 수레에 고정시키기 위해 사용된 부속이다. 이 유물이 발견되어 물건 운반시 수레가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굽다리접시와 가락바퀴, 원삼국시대, 파주 주월리 유적(육계토성), 굽다리접시는 나팔모양으로 벌어진 짧은 대각이 붙은 토기로 백제의 굽다리접시와는 형태상 차이가 있다. 뚜껑이 있는 유개식과 뚜껑이 없는 무개식으로 나뉜다. 가락바퀴는 실을 뽑을 때 사용하는 도구로 가락바퀴의 가운데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이 구멍에 긴 둥근 막대를 끼워 축을 만들고 섬유를 축에 이어 회전시켜 꼬여진 실을 만든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뚜껑과 접시.입 큰 토기항아리, 원삼국시대~한성백제, 파주 주월리유적
파주 육계토성,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
육계토성은 임진강에서 가장 수심이 낮아 주요 도하지점의 하나였던 가여울과 서쪽의 두지나루를 통제할 수 있는 요충지에 있으며 곡류하는 임진강의 남쪽 만곡부 충적대지 위에 축조된 토성이다. 성벽은 2~4단 높이의 석축기단 위에 성토하여 쌓았는데, 기단부는 화강암 또는 현무암을 장방형으로 치석한 석재르 사용하여 조성하였다. 성벽에서는 문지, 옹성, 고대지, 수구 등 관련 시설이 확인되었다. 경기도 박물관과 한양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성 내부에서 '凸'자형''凹'자형의 주거지를 비롯하여 많은 주거지와 다량의 백제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 '凸'자형의 한양대 2호 주거지 내부에서는 온돌시설, 판재로 만든 벽체 시설이 확인되었고, 이곳에서 사이광구호, 장통호와 같은 고구려 토기를 비롯하여 대형 항아리, 철모(鐵矛), 찰갑(札甲) 등이 출토되었다. 이 고구려토기들은 한강유역이나 양주지역 고구려토기에 비하여 시기가 빠르고 같은 시기 백제주거지와 함께 발견되어 군사적인 측면과 함께 고구려인의 이주 등 다양한 해석을 필요로 하고 있다. <출처:파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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