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부가 있었던 광주부에는 행궁을 비롯하여 많은 관청들과 성벽을 관리하던 사찰과 큰 마을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없지고 관아건물로는 군사훈련을 지휘하던 연무당과 연못인 지수당, 무기제작소로 알려져 있지만 관아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침괘정 정도만이 남아 있다. 조선 영조대에 지어진 침괘정은 문헌상 기록으로 무기제작소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건물의 형태는 온돌방과 마루바, 회랑 역할을 하는 툇마루로 구성되어 있는 집무실로 사용했던 관아 건물로 보인다. 아마도 부근에 무기를 제작하는 공방과 창고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한산성 행궁 앞 광장에는 산성내에 시간을 알려주는 종각이 설치되어 있는데, 원래 이곳에는 국보 280호로 지정된 천흥사 종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수도 한양을 방어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 역할을 기대했던 남한산성에는 인근 지역을 관할하는 광주부 관아도 산성내 행궁으로 옮겨왔으며 조선후기 군사조직인 5군영 중 하나인 수어청이 설치되어 남한산성 방어를 책임졌다. 광주에는 원래 정3품의 목사를 고을 수령으로 두었으나 선조대에는 부윤으로, 정조대에는 정2품의 유수를 두어 수어사를 겸하게 했다.
남한산성내 광주부 관아 역항를 했던 남한산성 행궁 앞 언덕에 위치한 침괘정. 무기제작소로 알려져 있으나, 상당히 큰 규모의 관아 건물로 사무실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침괘정은 앞면 7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일반 주택과는 달리 앞과 뒤가 똑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오른쪽 5칸은 회랑형식으로 툇마루를 앞뒤로 둘렀다.
오른쪽 2칸은 옆면3칸까지 합쳐서 큰 방으로 되어 있다.
건물 옆쪽에서 본 모습
가운데 3칸은 앞.뒤로 툇마루를 둘러싸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툇마루
남한산성 침괘정
침괘정
침괘정은 무기제작소라 알려져 왔으나 온돌과 마루방, 회랑처럼 된 툇마루 등 건물 구조로 보아 집무실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건립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주변에 있던 무기창고를 명나라 사신 정룡이 '총융무고'라 이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영조 27년(1751) 광주유수 이기진이 고쳐 짓고 '枕戈亭'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침과정'을 '침괘정'이라 부르는 까닭은 명확하지 않다. 무기제작소와 무기창고는 쵬괘정 부근에 별도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광주시청>
침괘정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산성 광장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산성 마을
침괘정 올라가는 언덕길
남한산성 행궁과 함께 복원된 종각
종각에 걸려 있는 범종. 원래 이곳에는 국보 280호로 지정된 천흥사 종이 걸려있었는데 지금은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고, 복제품을 종각에 걸어 놓고 있다.
성거산 천흥사명청동범종 (1010년, 국보280호), 천흥사종이라고 불리는 이종은 천안 성거산 천흥사에 있던 범종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남한산성에서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된 종이다. 서울의 보신각 종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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