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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담양 독수정원림, 가사문학 산실 담양 증암천 상류에 세워진 정자

younghwan 2013. 3. 1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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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등산 서쪽 자락에서 발원하여 영산강과 합류하는 증암천 주변에는  호남지방 가사문학의 산실로 소쇄원, 식영정을 비롯하여 이 지역 선비들이 세운 크고 작은 정자들 들어서 있다. 광주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무등산 계곡 역할을 했던 이 곳은 조선시대 창평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근처의 창평천 주변과 함께 조선시대 양반들이 선호했던 세거지의 특징들을 잘 갖추고 있다. 가사문학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이 지역은 다른 지역 양반들이 경치가 좋은 곳에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을 많이 설립한 것과는 달리 자연을 벗삼아 시를 읊고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한 정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담양군 남면 연천리에 소재한 독수정은 가사문학의 산실인 증암천 주변에 세워진 정자 중에서도 제일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그 내력 또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독수정은 고려때 큰 벼슬을 지낸 전신민이 고려가 멸망한 후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면서 세운 정자라고 한다. 독수정이란 이름은 이백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백이.숙제의 절개를 표현한 것이다.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가운데 1칸 온돌방을 두고 3면이 마루로 둘러싸여 있는 형태로 소쇄원을 비롯한 주변 지역의 정자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 중건된 것이라고 한다.

 독수정 정자 자체는 최근에 중근 된 것으로 문화재로서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자주변에 심어진 나무들은 고려시대 성행했던 산수원림의 기법을 이 지역에 도입한 것으로 보이며 소쇄원을 비롯한 후대에 세워진 정자들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독수정 앞에는 자미나무, 매화나무, 살구나무 등이 심어져 있고, 주위에 느티나무, 회화나무, 왕버들, 소나무 등 오래된 고목들이 많이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전신민은 주변에 대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고려에 대한 수절을 다짐했다고 한다.

독수정원림, 담양군 남면 연천리
이 정자는 고려 공민왕 때 북도안무사 겸 병마원수를 거쳐 병부상서를 지낸 전신민이 세운 것이다. 전신민은 고려가 망한 후 두문동 72현과 함께 두 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여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은거하면서 독수정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독수정이란 명칭은 이백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높은 절개를 나타낸 것이다. 독수정은 북쪽을 향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아침마다 송도를 향해 절을 하기 위함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중앙에 방이 있는 팔작지붕 건물이다. <출처:담양군청>


광주 무등산 북동쪽에서 발원하여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가사문학의 산실 증암천에서도 상류지역에 있는 독수정. 정자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를 하고 있다. 정자는 가운데 온돌방이 있고, 3면이 마루로 둘러져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소쇄원을 비롯하여 이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정자의 형태이다.


이 정자는 고려말~조선초 큰 벼슬을 지낸 전신민이 고려왕조가 멸망한 이후 벼슬을 버리고 은둔하면서 처음 세웠는데,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쳤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2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정자는 개경 방향인 북쪽을 향하고 있는데, 전신민은 아침마다 송도방향을 절을 했다고 한다.


정자 내부에 걸려 있는 글자가 적혀 있는 현판.


뒷쪽에서 본 독수정


독수정 앞쪽에서 심어진 소나무를 비롯한 크고 작은 수목들


마을과 소쇄원이 있는 광주호 방면 들판


독수정 뒷편 대나무숲


독수정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세워졌는데, 주변에 많은 수목이 심어져 숲을 이루고 있다. 정자 주변 숲이 고려시대 산수원림 기법이 반영된 정원으로서 가치가 있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독수정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오는 길


독수정 입구


독수정 앞을 흐르는 증암천


독수정이 있는 담양군 남면 면소재지 연천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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