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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홍릉.유릉 재실, 기존 왕릉 재실보다 크게 지어진 재실

younghwan 2013. 3. 1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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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 황제였던 고종과 순종의 능인 홍릉과 유릉은 기존의 조선왕릉과는 많은 면에 다른 점을 보인다. 가장 큰 변화는 제사시설이었던 정자각 대신 궁궐 정전과 비슷한 침전이 들어서 있고, 봉분 주분에 있던 문.무석인 등 석물 또한 침전 앞으로 옮겨졌다. 또한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의 참도는 2단에서 3단으로 바뀌었으며, 정자각 오른쪽으로 연결되던 것이 침전 가운데로 직접 연결된다. 석물은 석양과 석호가 빠지고 대신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이 참도 양쪽에 도열해 있다. 이는 기존 왕릉이 제후의 능이었다면, 대한제국 황제의 능으로 중국 명나라 황제릉을 참조하여 조성했기 때문이다.

 왕릉을 지키는 관리들이 머무는 공간이자 능을 참배하기 위해 왕이 머물던 공간이었던 재실도 기존에는 홍살문 바깥쪽 능역 입구에 세워져 있던 것을 능 아래로 옮겨졌다. 또한 홍릉과 유릉에 별도로 재실을 두었으며, 그 형태는 약간씩 다르다. 홍릉 재실은 국왕이 머무는 공간으로 보이는 재실 건물을 가운데 두고 뒷편에 관리나 수행원들이 머무는 건물이 있고, 출입문에 많은 행각을 두고 있다. 반면에 유릉 재실은 국왕이 머무는 큰 규모의 재실 건물이 2동있고, 출입문 양쪽으로 길게 행각이 들어서 있다.

남양주 홍릉과 유릉, 사적207호
이곳에는 조선 26대 고종과 황후인 명성황후 민씨를 합장한 홍릉과 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민씨 및 계후 순정효황후 윤씨를 합장한 유릉이 있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묘적산을 주산으로 하여 조성되었는데, 좌우의 지형이 청룡과 백호의 산세를 이루고 멀리 안산을 바라보도록 배치되어 있다. 홍릉과 유릉은 선대의 다른 왕릉과 달리 황제릉으로 조성되어 능역상설 제도의 변화가 뚜렷한데 능침 앞의 정자각 대신 침전을 조성하고 그 앞으로는 홍살문까지 신도.어도와 제사의 전반적인 준비를 담당하던 재실의 규모도 커졌다. 같은 구역 안에 영친왕과 왕비를 모신 영원, 황세손 이구를 모신 회인원, 의친왕묘, 덕혜옹주묘 등 대한제국 황실 가족의 묘가 함께 있다. <출처:문화재청>


조선왕조 26대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릉인 홍릉 침전 왼쪽편에 위치한 재실. 기존 왕릉의 재실에 비해서 그 규모가 커졌으며, 위치 또한 능역 입구에서 능 아래로 옮겨졌다. 홍릉은 출입문 행각, 재실과 관리들이 머무는 건물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재실건물은 7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큰 건물로 가운데 2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 2칸, 3칸씩 있다.


뒷편에는 홍릉을 관리하는 관리들이 머무는 숙소로 보이는 앞면 7칸짜리 건물이 있다.


재실 출입문과 좌.우 행각. 행각에는 방이 3칸있고, 대문 옆에는 가마 등을 두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홍릉 재실 출입문과 행각


조선 마지막 왕 순종의 유릉을 지키는 재실. 출입문이 2개 있으며, 규모는 호릉 재실보다 큰 것 같다.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유릉 재실


솟을대문에서 재실로 이어지는 길


내부에는 2동의 재실 건물이 나란히 있고, 가운데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각 대문에서 재실까지 어도가 연결되어 있다.


왼쪽 건물은 앞면 6칸으로 궁궐의 전각과 비슷한 규모이다.


왼쪽편 건물이 앞면 7칸으로 오른편보다 약간 크다.


왕릉 참배를 수행하는 수행원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행각이 마련되어 있다.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


재실에서 왕릉으로 이어지는 길


홍릉.유릉 입구 출입문


홍릉.유릉 역사문화관


홍릉으로 들어가는 길


홍릉.유릉 입구 주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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