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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관리들 사무실인 정록청, 향축을 준비.보관하는 향관청

younghwan 2013. 3. 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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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고려시대 국자감을 계승하였다. 조선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직후부터 도성을 구성하는 중요 기관 중 하나로 성균관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1398년(태조7)에 대성전을 비롯한 문묘와 명륜당 등의 강학공간 건물들을 완공하였다. <경국대전>의 성균관 직제는 지사(정2품, 겸임) 1인, 동지사(종2품, 겸임) 1인, 대사성 제주(정3품) 1인을 비롯하여 하급관리인 종9품인 학록, 실무자인 서리 등 많은 관헌들을 두었다. 오늘날 서울대학교 총장과 마찬가지로 성균관장은 왕이 국정을 펼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학식과 문벌이 있는 사람이 맡는 사헌부.사간원 등과 함께 청직에 속하는 관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록청, 성균관 관헌들이 근무하던 사무실

 성균관 유생들의 생활공간이었던 동재 주변에는 유생들이 식사하는 식당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성균관 관헌들은 주로 동재 안쪽 공간에서 근무하였다. 성균관 동재와 관헌들의 사무소인 정록청 사이에는 문간채로 분리되어 있는데, 정록청 대청마루에서 문을 통해 동재 마당을 감시하고 있는 형태이다. 정록청 오른편에는 살림집처럼 생긴 폐쇄된 구조의 서사청과 그 앞으로 실무자들의 사무실로 보이는 행각들이 들어서 있다. 성균관 기숙사인 동재와 식당, 관리들의 사무실인 정록청을 보면 옛날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의 바쁜 일과를 보는 듯 하다.

 명륜당 동쪽에 남향, 8간(間)으로 이루어진 건물로서, 태조 7년(1398)에 명륜당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이후 선조 25년(1592)에 소실되었다가 인조 4년(1626)에 중건되었다. 정록청이란, 성균관 관리의 관직인 학정(學正)과 학록(學錄)의 끝 글자(字)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서 성균관 관원의 사무실이었다. 정록청 설립 초기에는 각종 과거 응시자들의 예비 심사를 하기도 하고, 시정(時政)을 뽑아 적어서 보관하는 등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이러한 기능은 폐지되고 관내의 서무만을 전담하는 기구로 축소되었다. <출처:성균관>


성균관에 소속된 관리들이 근무하던 사무실인 정록청은 명륜당 동쪽편에 기숙사인 동재와 식당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의 생활을 감독하기에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정록청은 앞면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관아 동헌처럼 전형적인 관아 건물이다.


정록청 대청마루에서는 중문을 통해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재 출입문을 통해 오가는 사람들과 유생들의 출입을 감독하기 쉬운 위치이다.


정록청 마당


뒷편에서 본 정록청


2009년 봄, 정록청


성균관 관헌들이 근무하던 정록청 앞에 있는 작방과 중문. 기숙사인 동.서재 운영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관하던 창고였던 것 같다.


성균관 정록청을 출입하는 문이자, 기숙사인 동재를 출입하는 중문.. 정록청 마루에서 이 문을 통해 동재에 기숙하던 유생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정록청에서 서사청으로 들어가는 통로


성균관 정록청 뒷편에 있는 서사청(書史廳)이다. 정록청 부속 건물로 실무관헌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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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청 앞쪽으로는 작은 쪽문이 있는 행각건물들이 있다. 실무관헌들이나 성균관 유생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보인다.


뒷편에서 본 서사청


정록청에서 향관청으로 들어가는 협문

향관청, 대성전 제사 향축을 준비하고 보관하는 공간

 정록청 뒷편으로는 성균관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에 올린 제사를 준비하던 향관청과 실무자들이 머물던 공관인 동.서월랑이 있다. 향관청은 향축을 보관하고 준비하던 곳이라고 하는데, 앞면 4칸 건물로 가운데는 대청마루, 양쪽1칸씩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실제로 이 건물은 향축을 보관한다기보다는 제사업무에 관련된 관리들의 사무실 기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향관청 앞마당에는 동.월랑 건물이 양쪽에 들어서 있다. 동.서월랑은 감찰집사들이 근무하던 공간으로 향관청 마당을 등지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문묘 제사 때에 제관(祭官)들이 재계(齋戒)하고 향축(香祝)을 보관하던 곳으로서 성현(成俔)의 건의로 성종 4년(1473)에 명륜당 북동쪽에 남향, 10간(間) 규모로 건립되었다. 이후 왜란(倭亂)으로 소실되었다가 효종 4년(1653)에 중건되었다. 중앙에는 제사에 쓰이는 향축(香祝)을 보관하고 좌우에는 헌관방(獻官房)이 있다. 한편, 향관청의 좌우에는 감찰(監察) 집사(執事)들이 사용하던 동·서향 6간(間)으로 건조된 동월랑(東月廊)과 서월랑(西月廊)이 있다. <출처:성균관>


성균관 제일 안쪽에 위치한 향관청. 제사에 쓰일 향축을 준비하고 보관하는 건물로 재실과 비슷한 형태의 건물이다. 향축을 보관하는 건물이지만 관련 업무를 하는 관리들의 사무실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앞면4칸에 팔작지부을 하고 있으며,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온돌방 1칸씩을 두고 있다.


향관청 대청마루


향관청 툇마루


향관청 앞 마당. 마당 양쪽에는 마당을 등지고 있는 형태의 건물인 좌.우월랑이 있다.


향관청 좌.우월랑


향관청 좌.우월랑은 앞면 4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행각같은 건물로 이곳은 향관청 업무와는 상관없이 성균관내 감찰을 담당하는 집사들이 머무는 공간이라고 한다.


향관청 월랑 굴뚝


2009년 봄 향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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