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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박물관] 조선시대 남자 복식, 조복과 의관정제

younghwan 2013. 5. 1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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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남자들이 입었던 옷은 일반평민에서 국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그중 조선사회를 대표하는 양반계층이 입었던 의복이 그 종류가 많고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며, TV사극 등을 통해 일상적으로 많이 접해보는 조선시대 복식문화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입었던 옷으로는 평상시 집에 머물거나 여행을 할 때 입는 평상복, 관직에 진출하여 일상적인 업무를 볼 때 입는 관복인 공복일 비롯한 관복과 국가적인 행사에 입는 예복이라 할 수 있는 조복 등이 있다. 대구박물관에서는 많은 복식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중 남자의 의복으로는 조복과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의관정제를 대표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복식에서 모자라 할 수 있는 의관은 그 종류가 다양하며 공식행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관모는 그 명칭과 종류가 다양하지만 형태로 분류하면 관(冠),모(帽),갓(笠), 건(巾) 등이 있다. 관모는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관모가 중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문헌상 관모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후한서에 고구려가 고깔모양의 절풍건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형태는 중국의 것과 다르고 많은 자료나 유물 등을 통해서 볼 때 실크로드를 통해 페르시아나 중동지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국시대 고분 등에서는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관모들이 출토되고 있어며, 고구려벽화에서도 관모를 쓴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서도 관모는 양반계층에서 크게 중요시 여겼으며, 관직에 진출하여 입는 관복, 국가적인 행사에 사용하는 조복을 비롯하여 일상생활에서도 관모를 쓰는 의관정제가 크게 중시되었다.

입신양명
조선시대의 남자들이 과거에 급제하면 '경국대전'에 정해진 품계에 따라 관복을 입었다. 관복은 제복,조복,공복,상복 등으로 나눠지는데 의례의 종류에 따라 달리하여 있었다. 단령은 조선시대 문무백관의 기본적인 관복의 하나이며 남자들의 혼례복으로도 사용되었다. 고려말 우왕 12년(1386)에 정몽주가 명나라에 가서 관복을 청한 후 명의 영향을 받은 사모와 단령, 품대, 흑화를 착용하는 단령제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제도는 조선으로 이어졌으나 임진왜란 이후 그 제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며, 개화기까지 많은 논의와 변화를 거치게 된다. 조복은 금관조복이라고도 한다. 왕실에서 큰 경축일이나 조칙을 발표할 때, 혹은 중요한 자리에서 문무백관들이 입고 참가하는 옷이다. 양관에 적초의, 청초상, 적초상에 검은색 선을 두르고 대대에는 후수를 붙여서 입고 양옆에 패옥을 단다. 그리고 각대를 매고 홀을 든다. 품계에 따라 후수의 자수 형태와 홀의 재료, 패옥의 색 등을 엄격하게 구분하였다. 제복은 종묘사직에 제사할 때 착용하는 것이다. 조복과 구성이 같으나 색상이 다르며, 특별히 방심곡령을 함께 착용한다. <출처:대구박물관>


조복, 20세기 전반


홀, 조선 19세기


양관, 조선 19세기 후반 ~ 20세기 전반

의관정제
머리를 치장하고 거울을 보는 것이 여성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을까. 전통사회의 남성들에게 있어서 의관을 갖추어 입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덕무가 선비들이 수양을 위해 지은 책인 '사소절'에서는 군자가 거울을 보는 것은 치장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의관을 바르게 하고 태도를 존엄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기록한 구절에서도 그 중요성이 확인된다. 또, 17세기 조선시대를 살았던 곽주가 그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거처를 옮길 때 머리정돈을 위한 도구들을 챙겨달라고 하는 내용이 여러 차례 확인된다. 외모는 단순한 치장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과 연결된다고 보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남성들은 외출시에는 물론 집안에서도 예의를 갖추기 위해 다양한 포와 동곳, 풍잠 등 머리정돈을 겸한 장신구들이 발달했다. 포는 오늘날 겉옷에 해당하는 것으로 고대부터 곧은 깃과 앞에서 여미는 형식을 기본으로 한다. 일상복과 예복에 두루 착용되었는데, 일상복에 해당하는 것으로 철릭, 직령, 도포, 창의, 두루마기 등이 있고 소매가 없는 옷으로 답호와 전복이 있다. 이러한 남성들의 포는 갑오개혁 이후 두루마기로 간소화되었다. <출처:대구박물관>


철릭, 조선, 17세기 후반. 철릭은 고려시대 말 원나라를 통해 전해진 옷으로 주름잡힌 치마형의 하의와 상의가 연결된 원피스 형태가 특징이다. 또 양쪽 소매의 중간이 분리되도록 만든 것도 있는 이는 유사시 소매를 떼어 불편함이 없게 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시대 남자들이 일상적으로 착용했던 옷이면서 문무백관이 원행을 떠날 때 융복으로 사용하였다. 융복용 철릭은 좋은 직물을 사용하여 일상복으로 입는 철릭과 차별화하였다. <출처:대구박물관>


답호, 조선 16세기, 사대부의 평상복으로 철릭, 창의 등의 포 위에 입었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17세기 중반의 답호는 짧은 소매가 있고 깃은 직령과 같은 형태이다.


모시철릭, 조선 16세기


흑립, 조선


갓끈, 조선 19세기


세조대, 조선


갓솔, 조선


유건, 조선


망건.대모풍잠과 망건통, 조선 19세기


동곳, 조선


관자, 조선


경대, 조선


흑피혜와 흑혜, 조선

* 참조: 1. 관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조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관복,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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