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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는 경북 내륙의 교통.행정의 중심지이자 섬유산업이 발달한 도시이다. 지금은 우리나라 경제에서 섬유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지만,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던 70년대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종사했으며 수출 주력상품으로 국가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산업이다. 대구박물관에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섬유산업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고대 이래로 우리나라 섬유와 복식 등을 보여주는 전시실을 마련해 놓고 있다. 전시유물들은 실을 짓고 직물을 제조하는 가락바퀴 등 고대의 도구들과 주로 조선시대 사용했던 다양한 복식과 직물, 장신구 등들 전시하고 있다.
 
 인류가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옷을 만들어입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터 실과 직물을 만들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신석기시대 고대문명 발생지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황허 등 다양한 지역에서 여러 형태의 직물이나 도구들이 발견되고 있다. 직물은 의.식.주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으로 고대 이래로 생활필수품이자 주요 교역품이었다. 동.서간 교역로를 뜻하는 실크로드, 중세 유럽의 모직, 모피를 얻기위해 확장되었던 러시아,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영국의 방적기 발명 등 섬유산업은 인류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역할은 크게 줄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실의 여정
제사의 역사와 도구. 언제부터 실을 만들고, 그것을 엮어 옷감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은 없다. 다만, 실을 만드는 방법과 직조에 대한 생각은 직기의 발명보다 더 앞서 있었을 것이다. 씨실과 날실로 이루어진 기본적인 직물을 짜기 위해서는 직조에 적합한 실을 찾을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석기시대의 사람들은 자연에서 채집한 넝쿨식물이나 동물의 힘줄을 실로 만들어 옷을 지었다. 그것은 천의 형태이기 보다는 가죽이나 식물의 껍지을 엮어서 두른 정도였을 것이다. 식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신석기인들은 가늘고 긴 실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더 견고하고 안정적으로 실을 만들기 위해서 특별한 도구, 가락바퀴를 만들었다. 막대에 끼워 지속적으로 강한 회전력을 얻게 하는 가락바퀴는 가늘고 튼튼하며 가지런한 굵기의 꼰실을 만들 수 있었다. 즉, 선사시대 섬유가공법의 신기술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 제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한서'와 '삼국지'에는 이미 삼과 뽕나무를 재배하고 누에를 길러 삼베실과 명주실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서 다량의 가락바퀴가 발견되고 있어 기원전 3000~1000년 경에 가락바퀴를 이용한 실의 제작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대구박물관>

가락바퀴의 등장
가락바퀴는 자체 무게와 회전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으로 실을 뽑으면서 동시에 꼬임을 주는 도구이다. 회정방향에 따라 오른쪽꼬임과 왼쪽꼬임이 만들어진다. 먼저 가락바퀴에 막대를 움직이지 않게 끼우고 다른 한 손으로 실 끝을 잡아당기면서 가락바퀴를 늘어뜨린다. 실이 일정한 길이로 뽑히면, 그 상태에서 가락바퀴를 돌린다. 그러면 실이 가락바퀴와 함께 돌면서 꼬이게 된다. 손바닥으로 직접 꼬아서 만들었던 실에 비해서 훨씬 견고하고 좋은 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가락바퀴에 사용된 재료에는 흙, 돌, 동물뼈 등이 있는데, 흙으로 만든 것이 가장 많다. 실이 만들어지면 짐승의 뼈를 깎거나 갈아서 만든 뼈바늘에 꿰어 바느질을 한다. <출처:대구박물관>


가락바퀴, 대구 서변동, 청동기시대


가락바퀴와 실타래, 투르판, 6~7세기


뼈로 만든 바늘.도구, 경산 임당동, 삼국시대


구멍이 있는 도구, 해남 군곡리패총, 원삼국시대


여러가지 형태의 축, 경북 경산, 청동기시대

씨실과 날실이 만나다
고대의 원시직기. 최초의 직조는 자연에서 채취한 넝쿨이나 갈대를 엮어 바구니를 짜는 방법으로 시작하여, 점차 도구를 이용하여 기술적으로 진보한 것으로 생각된다. 바구니를 엮는 방법에 있어서 두 세 가닥의 실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씨실이 엮이거나 날실과 씨실이 한올씩 겹치는 방법 등은 초기 직물의 조직형태와 비슷하다. 고대 직기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출토된 직물과 단편적인 부품으로 추정되는 것을 통해 당시 직기의 형태를 추정할 수 있다. 고대의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많이 사용된 직기는 추가 달린 수직식 직기이다. 이 직기의 양쪽 두 개의 나무기둥 사이에 완성된 직물을 감는 나무를 고정시키고, 날실에 추를 달아 앞쪽으로 늘어뜨린다. 기원전 4~5세기로 추정되는 그리스의 도자기에는 이러한 수직식 직기의 모습이 자세히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수직식 직기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앞선 신석기시대에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기원전 7000년의 서아시아 아나콜리아 고원, 차탈휘위크에서는 수직식 직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추가 발견되었다. 이는 신석기 시대 초기에 이미 간단한 구조의 직기로 직물을 짜는 일이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요직기, 재현품, 요직기는 페루와 멕시코를 비롯하여 한국,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직물을 감는 축을 요대와 연결하여 직조자의 허리에 감고 앞, 뒤로 당기며 직조를 하는 직기이다. 처음에는 특별한 틀 없이 사용되었으나 점차 직기의 틀을 갖추어 발전하였다.

하늘과 땅의 색을 품다.
염색의 역사. 염색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화학염료를 사용하기 전까지 어느 민족이든 자연으로부터 색을 얻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천연염색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하여 각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른 정서와 사상을 가지고 이어져왔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염색의 기원은 신석기문명의 발생지인 인도 모헨조다로 유적에서 발견되 꼭두서니 염색을 그 시초로 보고 있다. 이러한 염색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하류, 홍화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로부터 시작하여 동.서양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1856년 영국의 월리엄 피킨이 합성염료인 아닐린을 발명하게 되면서 인공염색의 시대가 열렸다. 한국의 전통색. 우리나라의 전통색채개념의 국가의 체계가 갖추어지면서부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복색제도가 형성되면서 시작되었다. 고대시대에는 자산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착용한 색채가 지배계급의 복색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여겨졌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음양오행사상을 바탕으로 좀 더 체계적인 색채개념이 세워졌다. 음양설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음과 양의 조화로 보는 것이며, 오행사사은 목.화.토.금.수를 지구상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보는 것이다. 이것을 기본으로 하여 방향, 색, 계절 등에 상징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오방색은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방위에 따른 청백.적.흑.황의 다섯가지 색을 말한다. 특별이 이 오방색에서 파생된 색상을 오간색이라하는데 두가지이의 정색을 배합하여 만들어낸다. 오방색을 활용한 오간색도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전 시대에 비해 훨씬 자연스럽고 풍부한 색채를 사용할 수 있었다. <출처:대구박물관>



고귀하고 아름다운 색, 붉은 색
전통적인 음양오행사상에 의하면 붉은색은 남쪽의 색이자 양기와 생명력이 충만한 색, 불의 색을 뜻한다. 고구려 무덤벽화의 사신에는 동쪽의 청룡, 서쪽의 백호, 북쪽의 현무와 더불어 남쪽을 지키는 수호신은 주작이다. 불멸과 불사의 새인 주작의 '주'는 다름 아닌 붉을 주朱자이다. 따라서 붉은색은 우리 생활 속에서 악귀를 막고 복을 불러오는 상징적인 색으로 자리잡았다. 붉은 색을 뜻하는 명칭은 그 색감의 미묘한 차이와 쓰임에 따라 적색, 주색, 홍색계 등 다양하게 나뉜다. 그중에서 대홍색은 임금님의 곤룡포에만 사용되고 서민에게는 금지된 특별한 색이었다. 왕비와 세자의 옷 그리고 고위관료가 궁궐에 들 때 입는 옷 또한 붉은색이었으니, 지위가 높은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고귀한 색이었다. 또한 붉은 색은 화합과 혼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음양의 조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붉은색은 신부를, 푸른색은 남자를 상징하는 혼례의 색이기도 하다. <출처:대구박물관>


원삼, 재현품, 조선, 원삼은 여성예복의 하나로 신분에 따라 색과 문양이 달랐다. 황후는 황원삼, 왕비는 홍원삼, 비빈은 자적원삼, 공주와 옹주를 비롯하여 사대부가의 부인은 초록원삼을 착용하였다. 특히 황후, 왕비가 대례복으로 착용할때에는 오조룡보는 가슴.등.양 어깨에 달았다. <출처:대구박물관>


대삼작노리개, 조선


밀화비녀(조선 19세기), 용장식비녀(조선 19세기), 도투락 댕기(조선)


진주선, 조선, 진주선은 조선시대 혼례 때 신부가 얼굴가리개로 사용한 둥근 부채이다. 궁중에서는 고급스럽게 수를 놓고, 진주나 갖가지 보석을 박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반가에서는 진주를 장식하지 않고 모란꽃 무늬만을 수놓았다.

청색미감
우리나라의 푸른색은 음양오행의 사상에서 동쪽의 색이요, 봄의 색이며, 생명력이 충만한 색이다. 지리적으로 동쪽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옛부터 청구국이라 부르기도 했다. 푸른색은 혼례시에 여성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함께 쓰여 남녀 음양의 조화를 의미한다. 또한 '푸르다'는 표현에 있어서는 청송녹죽, 독야청청 등 절개와 신의, 이상향을 상징한다. 따라서 푸른색은 옛부터 숭고하고 고귀한 색상으로 여겨졌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푸른색이라 하면 쪽빛을 들 수 있다. 쪽은 청색을 염색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식물염료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서 다양한 방법과 명칭으로 발전해왔다. 우리나라의 쪽빛은 염색을 얼마나 여러 번 했느냐에 따라 옥색에 가까운 옅은 청색부터 검은 기가 감도는 짙는 남색까지 다양한 색감을 지닌다. <출처:대구박물관>


단령, 조선 19세기 후반 ~20세기 전반


목화, 조선 19세기 후반 ~20세기 전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