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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상주 태평루, 상주목 관아 출입문인 문루

younghwan 2013. 10. 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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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시 임란북천전적지 언덕으로 옮겨져 있는 옛 상주목 관아 출입문 문루인 태평루이다. 조선후기에 건립된 관아 출입문 문루로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정형화된 문루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큰 편이다. 원래는 상주목 관아가 있었던 상주도심 왕산역사공원 부근에 있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도심이 정비되면서 상주향교로 옮겨졌다가 최근에 이곳에 임란전적지가 조성되면서 객사인 상산관 등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1층은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2층 누마루는 읍치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용도로 지어졌다.

 상주는 경주와 함께 경상도의 어원이 되는 고장으로 고려시대 전국 지방조직인 12목이 설치될때 상주목이 설치되었으며, 조선초에는 경상감영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낙동강 중류에 위치하고 있어 내륙수운의 중심이 되고, 문경새재와 보은과 연결되는 교통로를 이용한 육상교통이 발달한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태평루
이 누각은 조선시대 1808년(순조8)에 상주목사 정동교가 건립했다. 건축형식은 조선시대 성행한 다포식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당시는 왕산을 중심으로 쌓은 상주읍성 관아문의 내삼문 밖에 있었고 동헌의 문루로 사용하였다. 그 후  1920년 상주향교 동편에 있는 동관으로 옮겼고, 1960년 향교 서재 부근으로 옮겨 남산중학교 교사로 사용하다가 임란북천전적지를 조성하면서 1992년 현재 위치에 옮겨 왔다. <출처:상주시청>


상주목 관아 출입문 문루로 사용된 상주 태평관. 앞면 3칸, 옆면 2칸의 정형화된 관아 문루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조선후기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태평루'라고 적힌 현판. 관아건물이지만 겹처마에 단청을 사용하고 있다.


관아를 출입하는 통로로 사용된 문루 1층.


문루 2층 마루. 공간은 비교적 넓지만 관아문루이기때문에 고을수령이나 관리 또는 관아를 방문한 인사들이 읍치 마을을 살펴보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문루 천정.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정을 하고 있다.


임란북천전적지에서 태평루를 오르는 길


상주목 관아 문루인 태평루


태평루 문루 옆에 남아 있는 공덕비


원래 상주목 관아가 있었던 상주도심 왕산역사공원. 이곳에는 삼국시대부터 읍성과 관아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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