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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상주시 옛 상주목 관아가 있던 도심에는 관아건물로서 유일하게 상주향청이 남아 있다. 1950년대에 처음 세워졌다고 하며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양쪽에 온돌방 1칸씩을 두고 있다. 이 건물은 향청의 지위가 향리로 격하된 조선중기 이후에 운용된 것으로 건물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향청은 조선초 지방관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유향소를 일컫는 말로 지방의 자치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유향소는 지방관아에 소속된 아전을 비롯한 하급관리를 감찰하고 지역을 교화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그 유래는 고려의 사심관제도에 있다. 오늘날 지방자치조직인 지방의회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실제로는 지방토호세력이 모여 지역여론을 형성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양상을 보여왔다고 할 수 있다. 조선초기에 향청은 지방유력세력과 퇴임한 관료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기때문에 그 위상이 높았다.  임기가 짧고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인 지방관의 권한과 충돌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면서 그 폐해가 심하여 조선초기에는 설치와 폐지를 거듭하였다고 한다. 향청의 주구성원이 훈구파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었기때문에 조선중기에는 이에 대항한 자치조직으로 지역에서 과거에 급제한 진사들을 중심으로 사마소가 설치되었다. 조선중기 이후에는 훈구세력이 퇴조하면서 향청은 지방관이 임명한 좌수를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실제 행정업무를 보좌하는 조직으로 바뀌었으며, 그 이전에 훈구파를 대변하는 기능은 지역에 설치되기 시작한 서원으로 옮겨졌으며 실질적으로 폐해는 줄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지방토호세력들은 지방관을 보좌하면서 많은 이권에 개입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각종 송사에 개입하고, 환곡, 대동법 시행이전 곡물로 대신 세금을 납부해주던 방납 등을 통해 많은 지역 이권을 챙겼다고 볼 수 있으며, 그 형태는 오늘날 지방자치조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상주향청, 경북 상주시 인봉동
향청의 명칭은 향사당, 이아, 풍헌당 등으로 불려왔으며 그 기능으로 향촌의 양반들이 지방행의 보조역할을 하고 향촌의 미풍순화를 하며 자신들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였던 곳이다. 상산지에는 1500년대 말에 보은현감 한순이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광해군 2년(1610)에 손자인 한정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그 뒤 여러 차례 중수가 거듭되면서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주둔한 이래 상주 관아로써 사용되다가 이후 1995년까지는 상주시의 관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곳은 지방 양반들이 향촌사회의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과 향청 자체가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출처:상주시청>


상주시 도심에 남아 있는 상주향청. 원래는 행각을 비롯한 부속건물이 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앞면 5칸짜리 본청 건물만 남아 있다.


향청과 관련된 지방토호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다. 실제로 조선중기 이후 사림세력이 지역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떠오르면서 향청은 실무를 담당하는 인사들이 실제 지역 이권에 개입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퇴임관리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주도세력들은 사설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서원을 중심으로 지역여론을 형성하면서 간접적으로 이권에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


대청마루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상주향청


경주에 남아 있는 또 다른 지역 자치조직인 사마소. 사마소는 진사시에 급제한 젋은 사림들을 중심으로 지역 여론 형성을 주도하던 곳이다.


공원으로 바뀐 상주향청


향청 입구의 작은 정자


옛 상주목 관아가 있었던 상주 왕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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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 동문동 | 상주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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