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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영덕 영해면 괴시마을, 영양 남씨 집성촌

younghwan 2010. 9. 1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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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덕 영해면에서 대진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자리잡은 영양 남씨 집성촌인 괴시마을이다. 한 마을에 여러채의 고택들이 몰려있는 마을로 이 곳은 목은 이색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마을은 서쪽 영해평야와 낙동정맥의 높은 산을 바라보고 있고, 고래볼 해안과는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옛날 기준으로는 아주 살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고래불로 흐르는 아주 맑은 하천이 흘러가고 있고 뒷동산에 오르면 동해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영덕 괴시마을의 전경. 괴시마을은 영양남씨의 집성촌으로 낮은 뒷동산을 배경으로 제법 규모가 있는 기와집들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영덕 괴시마을 앞으로 논들이 펼쳐져 있는 평야지대로 동해안에서는 강릉을 제외하고는 흔치 않은 넓은 평야지대이다.

영덕 괴시마을 중앙입니다 중간 골목으로 올라가면 목은 이색 선생의 생가터가 자리잡고 있고 언덕을 넘어가면 동해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다.


영덕 괴시마을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고택으로 마당이 꽤 넓은 것 같고 내부에 건물들도 다른 집들에 비해 많아 보인다.


영덕 괴시마을 한옥집 내부의 모습. 이 저택의 사랑채로 보이는 건물에 현판이 달려 있고 구조는 다른 집들과 비슷한 것 같다.


영덕 괴시마을에 대표적으로 저택으로 영해 구계댁이라고 한다. 안동지역의 한옥처럼 'ㅁ'자형 주택구조를 하고 있다.


괴시마을은 대표적인 양반촌이지만 골목길 풍경은 전형적인 시골의 골목길과 비슷하면서 돌담이 잘 갖추어져 있다.




영덕(盈德)의 북쪽인 영해면 소재지에서 동북으로 1㎞를 가면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탄생지이자, 조선시대 전통가옥들로 고색창연한 영양 남씨 집성촌인 괴시전통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을은 동해로 흘러드는 송천(松川) 주위에 늪이 많고 마을 북쪽에 호지(濠池)가 있어 호지촌(濠池村)이라 부르다가, 목은 선생(1328~1396년)이 문장으로서 원(元)나라에서 이름을 떨치고, 고국으로 오는 길에 들른 중국 구양박사방(歐陽博士坊)의 괴시마을과 자신이 태어난 호지촌이 시야가 넓고 아름다운 풍경이 비슷해, 귀국 후 괴시(槐市)라고 고쳐지었다고 전한다. 고려 말에 함창 김씨(咸昌金氏, 목은 선생의 외가이며, 선생의 외조모는 영양 남씨)가 처음 입주(入住)한 이래, 조선 명종(明宗,1545-1567)년간에는 수안 김씨(遂安金氏), 영해 신씨(寧海申氏), 신안 주씨(新安 朱氏) 등이 거주하다가, 인조(仁祖) 8년(1630년)부터 영양 남씨(英陽南氏)가 처음 정착하였다. 그 후 타성(他姓)은 점차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영양 남씨가 집성촌(集姓村)을 이루고 문벌(門閥)을 형성하였다. 마을 앞은 동해안의 3대 평야인 기름진 영해평야가 펼쳐져 있고, 남동쪽의 망일봉(望日峰)에서 뻗어 내려오는 산세(山勢)가 마을을 입(入)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이러한 자연 지형(地形)에 맞추어 대부분의 고택들이 서남향(西南向)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마을을 가로지르는 기와 토담 골목길을 중심으로 2~3백여년 된 '口'字形 구조의 가옥들이 배치되어 있어, 영남(嶺南) 반촌(班村)에서도 보기 드문 공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괴시전통마을은 조선후기 영남지역 사대부들의 주택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문화와 예절이 훌륭하게 전승(傳承)되고 있다. 또한 영양 남씨 괴시파종택(槐市派宗宅:경북 민속자료 제75호)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재와 전통고가 30여 호가 남아 있어 조상들의 생활과 멋을 엿볼 수 있는 전통 민속마을이다. 해마다 학자들과 학생,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며, 격년제로 마을에서는 "목은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출처:영덕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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