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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영덕 인량마을 갈암종택

younghwan 2010. 9. 1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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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덕 창수면 인량리는 영해면 괴시마을, 원구리와 함께 고래불 해안 백사장 뒷편 넓은 평야지대에서 많은 전답들을 소유하고 있었던 부유층 양반들이 모여사는 양반촌으로 뒷쪽으로는 칠보산 끝자락이 있고, 앞쪽으로는 제법 큰 하천에 속하는 송천이 흐르는 명당지역에 속하는 곳으로 보인다. 영양남씨 집성촌인 괴시마을과는 달리 이 곳 인량마을은 다양한 성씨를 가진 여러 양반집안들이 사는 전형적인 양반촌으로 물좋고 공기좋은 곳을 찾아서 낙향한 사람들이 주로 거주한 곳으로 보인다.

 인량마을 입구에 있는 큰 저택인 갈암 종택은 조선후기 성리학자인 갈암 이현일 선생의 종가로 원래는 청송군 진보면에 있었던 것을 임하댐 건설 지금의 자리로 옯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저택들은 마을 언덕 위에 넓은 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갈암종택은 길가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구조 또한 이 곳 인량마을의 주택구조와는 약간 다르며, 안동지역 특히 임하댐 아래 천변마을 의성김씨 집성촌의 저택구조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갈암종택은 건물 전체적으로는 'ㅁ'자형 형태를 하고 있지만, 바깥쪽을 구성하고 있는 앞면3칸의 사랑채는 독립된 가옥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옆쪽에서 본 갈암종택 사랑채. 옆면에 나무로 문을 만들어 여름에는 뚫린 정자처럼 사용하고 겨울에는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갈암종택 안채로 들어가는 출입문과 안채와 연결된 사랑채가 따로 있다.



이집은 종택으로 불천위 조상을 모신 사당을 두고 있다.


솟을대문을 한 출입문. 좌.우에 문간채를 두고 있다.


갈암종택 돌담


영덕 인량마을 앞으로 넓은 벌판이 있고, 동해바다로 흘러가는 큰 하천이 있다.


영덕 인량마을 갈암종택



조선 후기 문신이며 성리학자인 갈암 이현일(1627∼1704) 선생의 종가이다. 선생은 조선 숙종 때 이조판서를 지냈고 영남학파의 거두로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어 받아 ‘이기호발설’을 지지하였다. 서인의 탄핵을 받아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저서로 『갈암집』과 『홍범연의』가 있다. 가옥은 경북 북부지역의 전통적인 ㅁ자 형태이다. 선생은 원래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서 출생하고 자랐으나 선생이 40세 되던 해에 영양군 입암면 병옥리로 옮겼다. 선생의 10대손이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로 옮기면서 1910년 종가를 세웠으나 임하댐 건설로 지금 있는 자리인 창수면 인량리로 옮겼다. 또한 이곳은 영남 북부지역의 총의병 대장이었던 선생의 11대손인 이수악이 항일 구국운동의 거점으로 활용하기도 했던 곳이다. 많은 문집과 서적을 소장하고 있으며 영남 유학을 대표하는 명성높은 가문 중 하나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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