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고택_정원

강릉 선교장 사랑채 열화당, 중사랑

younghwan 2010. 9. 11. 21:05
반응형


 강릉 선교장에서 외부 손님이 묵을 수 있는 공간인 사랑채 영역이다. 선교장 안채 동쪽편에 위치한 이 곳은 선교장 주인의 거처인 열화당을 중심으로 지체가 높은 인사가 묵을 수 있는 중사랑과 마치 콘도를 연상시키듯이 늘어서 있는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열화당은 구한말에 건립된 건물로 이 곳에 러시아 공사관 인사도 많이 묵었던지 공사관에서 러시아식으로 테라스를 선물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강릉지역을 포함하여 관동지역이 많은 선비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피서지 또는 여행지였던 까닭에 선교장은 개인 저택이지만,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상당히 많은 손님들이 묵을 수 있도록 작은 방들을 많이 배치해 놓고 있다.



선교장 사랑채인 열화당. 1815년에 건립된 건물로서 선교장 주인 남자의 거처로 앞면 4칸에 누마루와 테라스를 두고 있는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다. 구한말에 지어진 이 건물은 건물에 붉은 벽돌을 사용하는 등 구한말에 지어진 궁궐건물의 형태를 많이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열화당은 '일가 친척이 이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열화당 건물 앞의 테라스는 조선말기 러시아식의 건물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로 지어준 것이라 한다. 아마도 러시아 공사관 인사를 비롯하여 많은 외국인들도 구한말 피서지를 찾아서 이 곳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에 지어진 한옥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누마루.


열화당에도 손님접대를 위해 방을 여러개 둔 것으로 보인다.


여러 방향에서 본 열화당

강릉 선교장의 사랑채로 조선 순조 15년(1815)에 오은 처사 이후(李厚)가 지었다. 높은 댓돌 위에 자리하고 있어 층층다리를 올라서야 들어설 수 있다. 건물 앞쪽에는 동판을 너와처럼 이은 차양시설을 두어 햇빛을 막을 수 있도록 하였다. <출처:문화재청>


선교장 중사랑. 선교장 손님 맞이에 주로 사용된 건물이며 전국의 학자, 풍류객들과 교분을 나누던 곳이다. 앞면 5칸의 건물로 5개의 방을 두고 있는데 외지에서 온 고위 인사들이 묵었던 방으로 보인다.


중사랑 내부.


열화당 뒷편에 초가로 지은 작은 정자를 두고 있다.


강릉 선교장 사랑채 전경. 솟을대문으로 출입하게 되어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