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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463호)

younghwan 2011. 5. 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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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섬강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흥법사 옛절터에는 고려시대에 세운 삼층석탑과 진공대사를 기리는 탑비의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고, 절터 대부분은 경작지로 바뀌어 옛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다. 흥법사가 있었던 절터는 원주와 여주, 양평을 연결해주는 주요 교통로이며 섬강과 문막읍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진공대사는 통일신라말 고승으로 당나라에서 유학을 했으며,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고려 태조의 왕사를 지냈다고 한다. 

 절터에는 진공대사 탑비의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고, 비석은 파손되어서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탑비의 귀부는 짧은목에 비늘을 새긴 용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거북 등에는 卍자와 연꽃무늬가 장식으로 새겨져 있다. 머릿돌인 이수는 구름무늬속에 얽혀있는 두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으며, 중앙에는 전서체로 '진공대사'라고 적혀 있다. 조각수법이 세밀하면서 빼어난 작품으로 고려초기 쇠퇴한 석탑에 비해서 통일신라시대에 비해서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흥법사 옛절터 한쪽에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는 진공대사 탑비 귀부 및 이수. 글이 적혀 있는 몸체는 현재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진공대사탑비. 당태종이 쓴 왕희지체 글씨를 집자해서 새겨넣은 것으로 우리나라 서예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대표적인 집자비석이다.


비석 글씨 탑본


귀부는 거북몸통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얼굴을 하고 있다.


짧은 목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귀부의 얼굴.


거북 등짝에는 육각형 무늬속에 卍자와 연꽃무늬를 새겨 놓고 있다. 부근에 있는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비와 비슷한 문양이다.


머릿돌인 이수는 간략하게 조각한 후대의 탑비들과는 달리 구름속에서 두마리의 용이 얽혀 있는 모습을 세밀하고 힘차게 조각해 놓고 있다.


이수 가운데에는 전서체로 '진공대사'라고 새겨 놓은 글씨를 볼 수 있다.


옆면에 새겨놓은 두마리의 용


뒷면에서 본 이수


옆면에서 본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


뒷쪽에서 본 모습


진공대사 탑비 귀부 및 이수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 보물 463호
이 유물은 신라말 고승인 진공대사의 탑비이다. 진공대사는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고려태조의 왕사가 되었고, 940년(태조23)에 돌아가시자 태조가 직접 글을 지었다고 한다. 글씨는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가려뽑아 새긴 것으로 왕희지체이다. 비의 본체는 파손되어 국립박물관에 있다. 스님의 사리를 모신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보물 365호)과 석관은 신라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신라 말기의 퇴화된 작품에 비하여 고려초기의 패기가 넘치는 우수한 작품으로 지금은 경복궁에 있다. 비의 받침 부분인 귀부는 짧은 목에 비늘을 새긴 용의 모습으로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머리 위에 네모난 구멍에는 뿔을 따로 조각하여 꽂은 것으로 보인다. 거북의 등에는 인근에 있는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비와 같이 이중의 6각형 속에 만(卍)자와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으며, 네발은 받침돌을 힘차게 딛고 있다. 비의 덮개부분인 이수의 앞면 중앙에는 전서체로 '진공대사'라 새겨 놓았으며, 이 글을 중심으로 사방의 구름무늬속에 상하좌우로 얽힌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노려보고 있다. 옆면의 용도 하늘을 향해 움직일 듯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당시 조각 예술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다. <출처:원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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