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진은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10월 70세가 넘은 노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 김의한과 함께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기 위해 상해로 떠나 임시정부에 합류하게 된다. 상해 교민사회와 임시정부에 있어서 김가진은 구한말 고위관료를 지내고 대한제국 대신을 지낸 인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인물이었으며 임시정부 고문으로 추대되어 독립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다. 김가진은 국내에서부터 대동단 총재로서 활동하였으며, 대동단은 김가진의 망명에 이어 의친왕을 망명시키려다 실패하고 국내조직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으며 대동단 또한 상해로 본부를 옮겨 활동하게 된다. 이후에도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했던 대동단 총재 김가진의 존재는 국내 대동단이 와해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 동력이 되었다. 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