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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박물관 373

[청주박물관] 충북의 불교문화와 흥덕사지 출토유물

충북지역은 백두대간 속리산에 있는 법주사를 제외하고는 대형사찰이 많지 않지만, 조선시대 이전에는 남한강 수운과 백두대간을 넘는 고갯길과 연결된 육상교통로가 발달되어 이를 기반으로 한 호족세력이 강한 지역이었다. 불교 또한 호족세력의 비호아래 크게 발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청주지역에는 화려한 금속공예문화와 금속활자를 꽃피운 흥덕사, 용두사, 사뇌사 등 큰 사찰이 있었고, 충주지역에는 광종이 세운 숭선사, 미륵리사지 등이 있었으나 호족세력의 지원을 받던 사찰이었던 까닭에 조선시대에 폐사되고 절터만 남아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은 '직지'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이 직지는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직지'를 인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흥덕사는..

지역박물관 2013.02.06

[청주박물관] 청주 사뇌사 절터 출토 고려시대 금속공예품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은 1377년(고려우왕3)에 청주 흥덕사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63년이 앞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기록에 따르면 흥덕사는 청주목 관아가 있던 청주 구도심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러 건물터와 유물들이 발굴조사되었다. 금속을 주조하여 활자를 만드는 기술은 상당한 숙련도와 금속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가능한 것으로 기술과 과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금속활자를 주조했던 청주지역에서 1993년 청주도심을 남북으로 흐르는 무심천변에서 고려시대 금속공예품이 다량 출토되었고, 유물에는 '청주 사뇌사'라는 사찰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른 지역 절터에 비해서 금속공예품이 많이 출토된 것으로 보이며, 흥덕사와 함께 이 지역 사..

지역박물관 2013.02.05

[청주박물관] 고려시대 금속공예품

우리나라의 금속공예는 청동기시대에 거푸집을 만들고 녹인 쇳물을 부어서 형태를 만드는 주조기법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귀금속을 두드려 만드는데서 출발한 단조기법 또한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만들어진 금속공예품으로는 청동솥, 청동방울 등 제사의식에 사용하는 의기, 칼이나 마구류 같은 금속무기, 귀금속 등으로 장식하는 장신구 등이 있다. 금속공예품은 일생활에도 많이 사용되어 왔지만, 문화재로서 남아 있는 금속품 중 상당수는 불교가 전래된 이후 만들어진 다양한 불교용품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한국종으로도 잘 알려진 범종을 비롯한 범음구, 향을 피우는 향완과 향로, 물을 담는 정병, 사리를 보관하는 사리엄장구 등을 들 수 있다. 소리로 전하는 깨달음 사찰에..

지역박물관 2013.02.03

[청주박물관] 비상, 비석에 새긴불상

비상은 비석에 불상을 조각한 비석형 불상이다. 중국에서는 6세기 북위 석굴사원에 그 형태가 처음 나타났으며, 서위시대에는 석상 4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사면불 셩식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비상은 수.당시대까지 크게 유행하였지만 8세기 이후 불교조각이 쇠퇴함에 따라 그 이후에는 많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존하는 것은 연기지방에서 발견 7점뿐으로 '계유'가 새겨진 아마타불(국보106호), '계유'가 새겨진 삼존불(국보108호) 등이 있으며, 연기군 비암사, 연화사, 공주시 정안면과 조치원 서광암에서 발견되었다. 현존하는 7점이 비상이 발견된 현 세종시(연기, 조치원) 지역은 백제의 2번째 수도였던 공주,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와 가까운 지역으로 백제가 멸망한 ..

지역박물관 2013.01.30

[청주박물관] 신라, 삼국통일의 발판 중원

충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남한강 유역은 5세기에 고구려가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면서 고구려가 지역 패권을 차지하고, 백제는 수도를 웅진(공주)로 옮기게 된다. 고구려는 충주에 국원을 설치하고 충북지역 주요 거점에 산성을 쌓으면서, 서쪽으로는 청주일대로 진출하여 백제를, 남쪽으로는 소백산맥 너머 신라를 압박하게 된다. 이에 위협을 느낀 신라와 백제는 협력하여 대항하기 시작하여 551년에는 한강유역에서 고구려세력을 축출하게 된다. 이후 한강유역은 백제와 신라간 경쟁의 결과 신라가 장악한다. 삼국시대 신라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진흥대에 신라는 한강유역에서 북상하여 함경도 남부지역까지 장악하면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때까지 이 지역 패권을 유지하였다. 죽령 너머에 위치한 단양 적성산성에서 발견된 신라적성비는..

지역박물관 2013.01.28

[청주박물관] 중원, 고구려 땅이 되다.

한반도 중앙에 해당하는 충북지역은 한강과 금강의 중류지역에 해당되며, 백두대간의 주요 고갯길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들이 지나가는 지역이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중심세력이 목지국의 영향권에 있었다가 3세기 이후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한반도 서남부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한 백제의 세력권에 속했으며, 백대대간을 경계로 신라와 국경을 맞대는 주요 거점이 되었다. 삼한시대에는 연안항로와 가까운 서남해안지방에 비해서 한강유역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았으나, 5세기 이후 고구려는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면서, 남한강 유역에서는 백제를 몰아내고 백두대간 이남의 신라와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이후 충주지역을 중심으로 남한강 유역은 삼국이 세력을 다투는 제1의 격전장이 되었다. 고구려는 남한강 교통로를 따라서..

지역박물관 2013.01.24

[청주박물관] 백제, 중원을 선점하다.

금강 중류의 청주지역과 남한강 중류지역의 충주지역을 포함한 충북지역은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큰강과 내륙교통로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서 고대 이래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한.중.일 해상교역로가 중요시 되었던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변방지역으로 천안부근에 있었던 목지국의 영향하에 있었은 작은 성읍국가들로 주요 교통로로 들판에 자리잡고 있다. 마한의 주도국이라 할 수 있었던 목지국이 낙랑과의 투쟁으로 그 세력이 약해지면서 한강하류에 자리잡았던 백제가 마한의 주도 세력이 되면서 마한 전체에 그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백제가 한강유역에 확고한 세력을 갖추었던 4세기 충북지역은 백제의 세력권에 있었지만, 5세기 고구려가 남하하면서 남한강 유역은 당대 최대의 격전장이 되었고, 백제는 점차 이지역에서 고구려, 신라..

지역박물관 2013.01.21

[청주박물관] 충북의 고대문화, 삼한시대 유물

마한은 1~3세기 한강유역에서 호남지역에 있던 정치연맹체로서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졌다고 에 기록되었다. 삼한 중 가장 큰 규모였던 마한은 토착세력, 백제와 같은 이주세력 등 다양한 집단으로 이루어졌다. 마한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집단으로 보이며, 동물문양의 혁띠, 청동방울, 청동거울 등 대체로 청동기 유물이 풍부하게 출토되고 있으며, 서남해안을 따라서 형성된 한.중.일 해상교역로에 가까운 평야지역이 크게 융성했던 집단으로 보인다. 천안, 직산 부근에 있었던 목지국을 중심으로 54개의 성읍국가 형태의 소국이 느슨한 연맹을 이루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마한의 주요 주요 유적지들은 한.중.일 해상무역로 부근과 금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대표적인 마한의 유적지로는 공주 수촌리, 서산 부장리, 금산 수당리,..

지역박물관 2013.01.17

[청주박물관] 충북지역의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

충북지역은 남한강 중류지역에 위치한 충주, 단양, 제천지역과 금강 중류지역에 해당되는 청주 지역을 중심으로 인류가 한반도에 정착했던 구석기시대 이래로 많은 주거 유적들이 남아 있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 유적들은 문화와 경제가 발전했던 한.중.일 해상무역로에 위치한 서해안과 남해안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인 고인돌이 분포하는 지역이 주로 청동기시대 유적지라고 할 수 있다. 충북지역은 큰 강이 있고, 농업에 적합한 지역이 많기는 하지만 청동기시대 유적이라 할 수 있는 고인돌은 서남해안지역에 비해서 많이 발견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 주거유적인 고인돌이 충북지역에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청주지역을 비롯하여 여러지역에서 농경생활을 영위했던 청동기시대 ..

지역박물관 2013.01.16

[청주박물관] 충북지역 선사문화 (구석기, 신석기시대)

한반도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충북지역은 남한의 4대강 중 남한강과 금강이 흐르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남한강과 금강 주변에서 채집생활을 했던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동굴유적들이 여럿 발견되었다. 제천 점말동굴, 단양 금굴, 청원 두루봉 동굴 등이 구석기인이 살았던 대표적인 동굴유적이다. 동굴유적은 구석기인들이 추위를 막기위해 석회암이나 화산암지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동굴에 머물렀던 곳이다. 동굴유적에는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도구들이나 음식물 찌꺼기 등을 통해서 생활모습을 유추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특히 동굴에 사슴 등 동물의 형상을 채색벽화로 남겨 놓고 있는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이 유명하다. 충북의 선사문화 남한강과 금강이 흐르는 충북에서는 동굴유적 등 많은 구석기유적이 확..

지역박물관 2013.01.15

안동 하회마을 영모각, 임진왜란 극복 과정을 기록한 징비록(국보132호)과 류성룡 종가문적(보물160호)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인물인 서애 류성룡 종가인 충효당에는 영모각이라는 별도의 전시관을 두고서 국보 132호로 지정된 을 비롯하여, 보물 160호로 지정된 과 보물 460호로 지정된 을 전시하고 있다. 류성룡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김성일과 동문수학을 했으며, 선조대에 중앙의 여러 요직을 거칠 정도로 학식도 높았지만, 관리로서 업무능력도 뛰어났던 인물이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에는 영의정으로서 선조의 피난길을 수행하였고, 외교적 성과로 명나라 원병을 끌여 들일 수 있었다. 또한 임진왜란 이전에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하여 임진왜란 중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동안 일어난 일들을 세세하게 기록하였는데, 이는 국보 132호 지정된 을 비롯하여, 보물 160호로 지정된 에 남아 ..

지역박물관 2012.12.01

안동 하회마을 영모각, 서애 류성룡 종가 유물 (보물460호)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은 보물 414호로 지정된 고택으로 서애 류성룡이 살았던 집으로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곳이다. 하회마을 종택으로 그의 형 류운룡이 살았던 양진당(보물306호)과 이웃하고 있다. 원래 류성룡은 낙향하여 이곳에서 작은 초가를 짓고 살면서, 번잡한 마을에서 벗어나 낙동강 건너편 부용대 아래에 작은 정자인 옥연정사를 짓고 그곳에서 징비록을 비롯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다. 현재의 충효당은 그의 증손자인 류의하가 17세기에 크게 중건하여 지은 것으로 조선후기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충효당 뒷편에는 불천위 조상에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 있고, 사당 앞쪽에는 류성룡 종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영모각이 있다. 류성룡 종가에는 많은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극복과정을 손수 ..

지역박물관 2012.11.29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게임보드를 비롯한 생활용품과 가구들

이집트 룩소르의 나일강 서안 바위계곡에 위치한 투탕카멘의 무덤은 전실의 일부 부장품들이 도난당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20세기초 이 무덤을 발견했을때 무덤의 각 방에는 수많은 보물들이 남아 있었다. 이집트인 왕이 죽은후 사후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사용할 다양한 생활도구들을 무덤에 같이 묻었는데, 여행에 필요한 전차를 비롯하여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그릇, 생활에 사용할 가구와 각종 일상용품도 같이 묻혀 있었다. 이런 유물들을 통해서 각종 벽화에서 표현된 다양한 생활용품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에는 오늘날 사람들의 관점에서 흥미를 끄는 많은 유물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죽은왕이 사후세계에서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보드게임이다. 여러 벽화등에 묘사되어 있는 이..

지역박물관 2012.11.27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화장품과 연고 보관용 돌그릇

고대 이집트에서는 화장이 보편화되어 있었으며, 지금의 기준으로도 화장 기술은 상당히 세려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인이 화장한 모습은 현재 남아 있는 다양한 고분 벽화, 파피루스 그림 등에서 묘사한 인물들에서 알 수 있으며, 화장품을 담았던 그릇들과 화장품, 화장도구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 편이다. 이집트에서 화장은 신의 대리인이라는 왕의 권위를 강종하기 위한 화장들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눈 주위를 짙게 칠해주는 눈화장과 몸에 향유를 바르는 것이 많이 알려져 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도 화장품을 보관하던 화병들이 여러점 남아 있는데 귀금속인 은으로 만든 화병은 도굴꾼들이 훔쳐가고 몇개만 남아 있다. 또한 용기에 담아 함께 묻었던 오일과 같은 화장품 또한 매장 직후에 대부분 도굴당한것으로 보..

지역박물관 2012.11.26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파라오의 전차와 휘장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황금마스크와 황금관 등 많은 보물이 묻혀 있었다. 무덤에 묻힌 보물 중 이집트를 대표하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신왕국시대에 사용한 마차가 실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무덤에서는 모두 여섯대의 전차가 해체된 상태로 전실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 중 3대는 행진용, 3대는 사냥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집트에서 전차는 힉소스시대 이후에 근동지방에서 들어온 새로운 기술이다. 전차를 타면서 쏘는 강력한 복합궁과 함께 전쟁의 혁신을 가져왔던 기술적인 진보라 할 수 있다. 힉소스로부터 전래된 전차와 복합궁은 강력한 왕의 무력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집트 벽화의 다양한 전투장면에서 전차를 탄 왕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 무덤에는 전차를 비롯하여 인상적인 유물로는 왕..

지역박물관 2012.11.22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왕의 부활을 돕는 장례용 조각상

투탕카멘의 무덤 보물의 방과 전실에는 많은 조각상들이 남아 있었다. 당시 투탕카멘의 무덤은 전실을 비롯하여 일부 도굴이 있었지만 도굴꾼들은 나무에 금박을 칠한 이런 조각상들은 귀금속이 아니라서 가치가 낮아서 가져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각상들은 왕의 미이라와 장기를 수호하고 왕이 죽은 후 내세로 들어가는 것을 돕는 신들인 창조신 프타를 비롯하여 타타, 슈, 네프티스, 아로에리스 등 다양한 신들을 비롯하아여 신이 된 왕의 형상을 표현한 여러 조각상들, 내세에서 왕을 돕고 생활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우샤티브 등이 있다. 무덤에 다양한 조각상들을 같이 묻는 것은 왕의 무덤뿐만 아니라 고위관리를 비롯하여 일반인들에 무덤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이는 이집트뿐만 아니라 세계각처의 무덤에서도 볼 ..

지역박물관 2012.11.21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고대 이집트 장례절차와 사후세계를 묘사한 '사자의 서(Book of dead)'

'사자의 서(Book of dead)'는 이집트 신왕국 초기에 장례절차와 사후세계를 묘사한 고문서로 원래는 왕족이 아닌 사람들이 장례식 사후 안내서 역할을 했던 문서이다. 파피루스나 피혁에 상형문자로 기록하여 미라와 함께 관속에 묻는 문서이다. 고왕국시절에는 주로 피라미드 현실 벽면에 벽화 또는 상형문자로 적었던 것으로 피라미드 텍스트라고 부른다. 이런 형태의 내용이 중왕국시대 이후 귀족이나 부자의 관속에 텍스트로 적었으며, 신왕국시대에 들어서는 정형화된 형태의 '사자의 서'를 파피루스에 적어 관속에 묻었다. '사자의 서'는 이집트인들의 내세관을 잘 보여주는 문서로 장례식 절차부터, 부장품, 죽은자가 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내용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생전에 쌓은 선행을 심판하..

지역박물관 2012.11.18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장기를 보관했던 카노포스 단지와 사후세계를 운항하는 배

원래 이집트에서는 죽은 사체를 매트에 싸서 모래에 두었기때문에 자연적으로 탈수.건조되었지만, 파라오시대부터는 관에 넣어 무덤에 묻기 시작하면서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 보존처리과정을 거쳐서 미이라로 만드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미이라를 만들때 시체는 방부처리하여 천으로 싸서 여러겹의 관에 보관하였고, 장기는 별도로 분리 후 방부처리하여 카노포스 단지라는 별도의 보관장소에 보관하였다. 이집트에서는 사제들이 미이라를 만들었으며, 신화에서는 자칼의 얼굴을 하고 있는 아누비스신이 미이라를 처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미이라를 만들고 무덤에 묻는 절차에서부터 이집트인이 생각했던 사후세계는 '사자의 서'라는 파피루스 문서에 잘 나타나 있다. 투탕카멘의 무덤은 도굴되지 않은 신왕국시대 거의 유일한 왕의 무덤으로 미이라와 ..

지역박물관 2012.11.17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미이라의 장신구와 호신부적

투탕카멘 미이라의 붕대를 풀었을 때 미이라를 싸고 있던 150여개에 이르는 장신구들과 부적들이 발견되었다. 금과 다양한 보석들로 만들어진 부적과 장신구들은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되었던 신들이나 동물 등이 상징들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들 부적이나 장신구들은 고대 이집트에서 장례절차와 그들이 생각한 사후세계을 표현한 문서인 '사자의 서'에 언급되어 있는 것들로 사자의 미이라를 수호하고 내세에서도 삶을 계속 영위할 수 있게하는 주술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집트에서 '사자의 서'는 신왕국 초기에 사후세계를 묘사한 내용으로 귀족계층의 장례식에 사용되었던 것을 투탕카멘의 무덤은 최초로 '사자의 서' 내용이 반영된 왕의 무덤이라고 한다. 지금도 이집트에서는 당시에 만들어진 다양한 부적을 본떠서 만든 기념품들을..

지역박물관 2012.11.15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불별의 황금마스크

투탕카멘의 미이라는 4개의 사당, 석실, 그리고 3개의 관이 겹겹히 보호하고 있었다. 20세기 최고의 고고학 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는 110kg의 순금으로 만든 마지막관속에 안치되어 있던 미이라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만화같은 느낌을 주는 이집트 아마르나 양식으로 만들어진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는 생전의 모습을 이상적인 파라오의 얼굴로 형상화한 것으로 미이라로 보존된 왕의 얼굴을 대리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미이라의 마스크는 기원전 2100년경부터 일반인들이 사용하기 시작되었으며 그리스-로마시대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110kg에 이르는 순금으로 만든 관과 함께 고고학 발굴사상 최고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황금마스크는 11kg의 순금으로 만들어졌다. 살아있는 듯한 눈은 석영과 흑요석..

지역박물관 201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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