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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전 정전은 조선 왕조를 개국시킨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건물입니다. 1410년에 창건된 경기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광해군때인 1614년에 중건했다고 합니다. 정전은 다포계 양식으로 조선 중기의 형식이 반영된 건물로 유교의 법도를 잘 표현하고 있는 건물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경기전 내부에는 임진왜란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전주사고를 비롯하여, 전주이씨의 시조를 모신 조경묘, 예종대왕태실등이 있습니다. 경기전의 중요성을 말해주듯이 입구에는 제일 먼저 하마비가 방문객을 맞이해 주고 있으며, 옆으로는 경기전의 권위를 말해주듯 종묘와 비슷한 규모로 많은 부속건물(복원한 건물이지만...)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전이 자리한 내삼문을 들어서면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좌측편 회랑에는 영조, 철종, 순종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우측편에는 세종, 정조, 고종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경기전 정전 앞에는 거북이 두마리가 붙어 있는데, 경기전을 완성한 목공이 그 영원함을 위해 지붕에 암수 두 마리의 거북이를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경기전이 목조건축인 점에서 화재를 다스리고자 하는 의도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경기전 정전으로 들어가는 신로(神道)와 좌우측편에 있는 향로입니다. 우측편에는 제물을 놓던 자리가 있습니다.

 전주의 경기전이 존재하는 이유인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인 조선태조어진(朝鮮太祖御眞)입니다.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크기때문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경기전 정전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져 있고, 좌우의 회랑에는 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의 영정이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역사적 의미가 높지 않은 철종의 영정이 모셔진 것으로 보아 아마도 조선후기에 경기전을 정비할때 모셔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곳 경기전에는 영정이외에 제례에 필요한 가교, 향정, 신연 등의 가마가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 어진이 모셔진 정전의 천정 장식입니다.

경기전 우측편 회랑에는 세종, 정조, 고종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좌측편 회랑에는 영조, 철종, 순종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어진을 옮기거나 몽안할때 쓰이는 가마인 신연입니다. 정전 건물내부에 보관/전시되고 있습니다.

제사에 쓰이는 향로, 향합을 받쳐드는 가마인 향정입니다. 회랑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경기전의 실질적인 첫번째문인 홍살문입니다. 경기전 자체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외부보다 낮은 지대에 출입문이 있습니다. 길을 따라서 홍살문을 지나면 외삼문이 보입니다.

홍살문에서 외삼문까지으로 출입로입니다. 신로(神道)를 별도로 구분하지는 않습니다.


 경기전 정전에서 본 출입문인 외삼문/내삼눈입니다.

신도가 시작되는 경기전의 외삼문입니다.

외삼문에서 내삼문까지의 신로와 향로입니다.

경기전 정전을 출입하는 내삼문입니다. 정면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 보입니다.

 경기전 정전에서 본 출입문인 외삼문/내삼눈입니다.

전주 한옥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사적지인 경기전 출입문입니다. 종묘나 왕릉처럼 삼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출입문 앞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경기전을 지나는 사람들은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도록 하마비(下馬碑)가 놓여져 있습니다.

경기전 입구에 버티고 서 있는 하마비입니다. 조선후기에 경기전을 정비할때 새로 세운 하마비라고 합니다.

경기전 정전이 입구인 내삼문 동쪽편으로는 작은 문이 있고 이 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문화재로서 가치는 별로 없지만 역사적 의미가 아주 큰 전주사고 실록각을 볼 수 있습니다. 전주사고는 임진왜란 당시 유일하게 화를 면한 사고로서 건물은 당시에 불타 없어져 버렸지만 실록은 보존되어 지금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었고 조선의 역사를 온전하게 전할 수 있게 한 장소입니다. 아마 경기전에 사고를 운영함으로써 철저한 보관에 힘쓸 수 있도록 한 의도로 보입니다. 전주사고를 보지못했을때는 사고(史庫) 건물이 꽤 큰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의외로 건물크기가 작고 아담한 규모입니다.


경기전 정전의 내삼문에서 전주사고로 들어가는 출입문입니다.

경기전 앞을 통하지 않고 전주사고를 출입하는 문입니다. 그 옆으로는 대나무숲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조경묘는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공 부부의 위패를 모신 장소로 전주 경기전 정전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씨왕조의 시조를 모신 장소답게 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외삼문, 내삼문이 있고 내부에는 신로(神道)와 향로가 놓여 있는 등 왕실의 법도를 많이 따르고 있으며, 우측편에는 제법 큰 규모의 재실(齋室)이 있습니다. 전주이씨 시조를 모신 곳이라서 그런지 일반인들에게는 내부가 공개되지 않고 외부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조경묘 외삼문을 들어서면 경기전 정전과 마찬가지로 신(神)이 다니는 신로(神道)와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향을 들고 다니는 길인 향로가 놓여 있습니다. 동쪽편으로는 제사를 준비하는 제실이 있는 건물과 연결된 길이 있습니다.

조경묘 제사를 준비하는 제실이 있는 공간입니다. 재실(齋室)과 창고 등을 포함하여 여래채의 건물이 있습니다.

조경묘 재실(齋室)을 출입하는 문입니다. 조경묘의 권위를 말해주는 듯이 솟을 대문으로 지어졌습니다.

경기전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 예종의 태실입니다. 특이하게 전주의 경기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팔각형의 돌 난간안에 기단돌을 세워 놓고 둥근돌을 얹은 다음 지붕돌로 덮고 있는 모습이 불교의 부도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비석에는 예종의 태실임을 알리는 글과 건립연대가 새겨있습니다. 이 비석에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과 뿔 없는 용의 모습을 새긴 머릿돌이 있습니다.

경기전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경기전 부속건물들입니다. 예전에 없어진 건물들을 최근에 복원한 것 같습니다. 이 곳에는 종묘 등과 같이 중앙에서 고위 관리가 와서 머무러면서 제사를 준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입니다. 부속 건물의 구성은 수복청, 경덕헌, 마청, 서재, 동재, 어정, 누상고, 전사청, 조병청, 용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울 종묘 부속 건물의 구성 요소와 비슷합니다.



사적 제339호의 경기전 정전은 조선 왕조를 개국시킨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곳이다. 태조 어진을 모신 곳을 어용전, 태조진전 등으로 명명하던 것을 1442년(세종24년)에 경기전이라고 명명하였다. 1410년에 창건된 경기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1614년에 중건했다. 1872년 태조 어진을 새롭게 모사하여 봉안하면서(태조영정 보물 931호) 경기전의 전반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정전은 다포계 양식으로 외3출목, 내3출목이고, 5량 구조의 맞배, 겹처마 지붕이다. 살미의 쇠서가 발달되어 있고 내부에서는 초각 처리되어 안정된 조선 중기의 형식이 반영되어있다. 배례청은 이익공을 가진 익공계 양식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배례청의 박공면은 정전의 정면 모습이 된다. 정전과 배례청은 화강암 원형 초석 위에 민흘림의 원기둥을 세웠다. 내부의 5.8m나 되는 2개의 고주는 종보를 직접 받고 있으며, 양측면의 기둥도 대들보를 받는 고주로 되어 측부재 구조가 간결하고 견고하게 짜여있다. 포작의 내부 살미 조각과 보아지 및 종도리를 받는 파련 대공의 섬세한 조각과 우물천정 단청 등의 의장이 화려한 편으로 다른 유교 건축과 차별화된 권위성을 볼 수 있다. 구조 부재들의 이음과 맞춤이 정확하며 견고하고 조선 중기의 전통 건축 기법이 잘 전수된 안정된 구조와 부재의 조형 비례는 건축적 품위를 돋보여준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어진이 봉안된 정전 기능과 품위에 기준한 내신문 내의 신로 및 향로의 엄격한 격식, 그리고 정전과 배례청 평면 조합 및 어방구조 등이 보물로서의 문화재 가치가 인정된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