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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해안에 오두돈대 아래에 있는 벽돌로 쌓은 전축성인 강화전성입니다. 강화산성을 구성하고 있는 강화외성 중의 일부분으로 대몽항쟁 기간부터 존재해 왔던 성벽입니다. 원래는 토성이었으나 조선후기에 벽돌로 쌓았다고 합니다. 이 강화외성의 전축성은 수원화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전축성이며 수원 화성보다 쌓은 연대가 약간 빠르다고 하며, 건축사적으로 의미있는 유적이라 합니다.

고려시대 몽고와의 항쟁에서 강화 강화도 외곽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인 강화외성 중의 하나인 오도돈대 아래 갯벌위에 쌓은 성벽이 강화전성입니다. 원래는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후기에 벽돌로 쌓았다고  합니다.

강화전성은 일반적으로 성을 쌓는데 쓰이는 다듬은 돌로 기초를 쌓고, 그 위에 벽돌을 쌓아 올리 전축성입니다. 석축과 다양한 형태의 벽돌이 남아 있습니다.

강화전성 성벽위입니다. 일반적인 언덕에 오래된 나무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뒷쪽으로는 오두돈대가 있습니다.

성벽안에 심었던 나무가 자라서 그 뿌리가 성벽을 부수고 있습니다. 뿌리 아래로 옛날에 쌓은 벽돌들이 있습니다.

강화외성 바깥에는 최근에 복원해 놓은 강화전성이 있습니다만 벽돌로 쌓은 폼이 일반 담장같다는 느낌입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오두리에 있는 강화전성은 다듬은 돌을 쌓아 기초를 마련한 위에 벽돌로 쌓아 올려 만든 전축성(塼築城)이다. 성을 쌓은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고종(재위 1213∼1259) 때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강화의 외성에 속했던 것으로 알려 있다. 비가 오면 성의 흙이 흘러내리자, 조선 영조 19년(1743) 당시의 강화유수였던 김시혁이 나라에 건의하여 벽돌로 다시 쌓아 이듬해에 완성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성의 길이는 약 270m 정도이다.

강화외성은 고려 23대 고종이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뒤 고종 20년(1233) 해안 방어를 위해 적북돈대로부터 초지진까지 23km에 걸쳐 쌓은 성이다. 강화성은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읍성이다. 외성은 동쪽 해안을 따라 쌓았는데 몽고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고종 24년(1237)에 강화외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도 비상시에 국왕의 피난처인 도성(都城)의 외성(外城)으로 광해군 10년(1618)에 보수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숙종때 병자호란기(1636)에 허물어진 외성을 돌을 이용하여 다시 쌓았고 돈대(墩臺)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영조때 강화유수 김시혁(金始爀)이 비가 오면 성의 흙이 흘러내려 나라에 건의하여 영조 19년(1743)에서 이듬해에 걸쳐 벽돌을 이용하여 다시 쌓았다고 한다. 2001년 동양고고학연구소에서 실시한 오두돈 주변의 전축성 구간에 대한 지표조사 결과에 의하면, 뻘층을 기초로 머리돌을 올리고 그 위에 대형석재로 석벽의 중심을 삼고 그 위에 머리돌을 올리고 다시 전돌을 여러 단 쌓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성은 높이 20척, 폭 5척이며, 6개의 문루(조해루·복파루·진해루·참경루·공조루·안해루)와 암문 6개소, 수문 17개소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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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미예 2009.05.22 0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화산성 이군요. 외적을 막으려 무던히도 애썼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