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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월성(반월성)은 신라의 궁궐이 내부에 있었던 도성입니다. 삼국시대는 고려.조선과는 달리 전쟁이 많았던 시절답게 궁궐이 요새화된 성벽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수도 경주에는 반월성이라는 천연의 언덕위에 궁궐을 짓고 사방을 토성으로 쌓았으며 토성 아래에는 적의 침입에 대비한 해자 시설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도 동쪽편 일부에는 물을 채워서 해자 시설을 하고 있으며 여러곳에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남쪽 해자에는 월성교라는 아름다운 부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동쪽편 임해전지와 연결되는 성문 주위 경주 박물관 방향으로는 해자시설을 복원해 놓고 있습니다. 아마도 월성 전체를 이런 형태의 해자로 둘러쌓여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동쪽편 임해전지 방향 출입문 북쪽에 있는 발굴작업이 진행죽인 해자시설입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내 석빙고 아래쪽 해자 발굴작업 현장입니다.

일부 발굴/복원작업이 최근에 완료된 지역의 월성(반월성) 해자시설입니다.

경주 월성(반월성)에서 계림과 첨성대가 있는 곳으로 통하는 월성(반월성) 정문 서쪽편의 해자입니다. 아직 발굴/복원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곳입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서남쪽 해자에 설치되었던 월정교 복원을 위해 제작한 모형입니다. 상당히 아름다운 시설입니다.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임해전으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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