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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월성(반월성)은 지금은 나무가 울창한 평범한 야산처럼 보이는 곳이지만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수도 경주의 궁궐이 있는 성으로 성벽은 자연 지형을 이용한 곳도 있고, 흙과 돌을 쌓아 놓은 부분도 있는 국왕이 살고 있던 도성입니다. 고려이후 통일된 국가에서는 평지에 궁궐을 쌓지만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전쟁이 많았기때문 안전한 요새처럼 성벽을 쌓고 그 내부에 궁궐을 짓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성벽은 석축형태로 쌓은 조선시대와는 달리 흙과 돌을 섞어서 쌓았으며, 자연지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경주 월성의 성벽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았기때문에 자연 지형 그대로인 것처럼 보입니다. 백제의 토성은 흙으로만 쌓은데 비해 월성은 돌을 섞어서 쌓아서 월성에는 큰 돌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경주 월성(반월성)의 성벽은 자연석을 흙과 섞어서 촘촘히 쌓았습니다.

경주 월성(반월성)에서 임해전지로 연결되는 출입문입니다. 출입문 양쪽으로 자연스럽게 언덕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내부에서 본 성벽입니다. 평지보다 약간 높은 언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외부로는 언덕이 경사지고 상당한 높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중간에 있는 작은 출입문입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내부의 궁궐터입니다. 당시 궁궐터는 많이 발굴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부만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경주 월성의 정문격으로 계림과 첨성대, 많은 왕릉들이 있는 공간으로 출입하는 통로입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북쪽편 성벽입니다. 지금은 나무가 울창해서 자연스러운 야산처럼 보입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성벽아래에는 방어시설인 해자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모형입니다. <경주박물관 전시>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임해전으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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