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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鎭南門)이다. 60년대 해미읍성이 복원될때 남아있던 유일한 성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미읍성은 뒤로는 수덕사, 개심사 등이 있는 가야산 산자락이 있고, 앞으로는 서산지역의 넓은 평야가 펼쳐진 곳으로, 조선시대까지 연안 해상 교통의 중심인 태안반도를 관장하던 군사적 중심지였다. 해미읍성은 평지에 쌓은 전형적인 읍성으로 만주지역으로 부터 들어오는 북방기마부대를 중심으로한 대규모 군사의 침입에 대비한 방어시설은 아니고, 고려시대에서 조선중기까지 우리나라를 괴롭혔던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쌓은 읍성이다. 그래서인지 성문에는 옹성이 없는 단순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서산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 단순히 왜구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서 지은 읍성이기 때문에 옹성이 없고, 성문이 높지도 크지도 않다.

진남문은 마차 1대정도가 지나갈 정도로 우리나라 성문의 평균적인 도로폭으로 만들었다.

진남문 성루. 우리나라 성루는 중국과 달리 크게 중요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목조건물로 성루를 지었으며 성루에서 성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는 용도로 보인다.

해미읍성 내부에서 본 진남문.

해미읍성 건축 연대를 적어 놓은듯

해이읍성 성벽 위에서 본 진남문 성루

여러 방향에서 본 해미읍성 정문인 진남문




사적 제116호. 해미는 1414년(태종 14)에 충청도 덕산(德山)으로부터 충청도병마절도사영(忠淸道兵馬節度使營)이 옮겨온 곳으로,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전한 1651년(효종 2)까지 군사적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해미읍성은 1491년(성종 22)에 축조되어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성의 둘레가 3,172척, 높이가 15척, 성 안에는 3개의 유물과 군창이 설치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의하면 성의 둘레가 6,630척으로 보(步)로 계산하면 2,219보가 되고 높이는 13척, 치성(雉城)은 382첩으로 되어 있으며, 사방에 문이 있다고 했다. 이 기록을 통하여 볼 때 해미읍성의 규모가 훨씬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에 이 성을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읍성의 표본으로 삼아 사적으로 지정하고 보수공사를 하는 한편, 성 안팎에 무질서하게 자리잡은 민가를 철거·이전시키고 종합적인 보존계획을 세웠다.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으며 1981년에는 성 안의 일부를 발굴한 결과 관아 터가 확인되었다. <출처: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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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 해미읍성 진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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