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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을 방문했을때 이 집 주인인 종손께서 아주 설명을 잘 해 주어서 저택 내부를 세심히 구경할 수 있었다. 이 고택은 건축학적 측면에서 고려시대 양식부터 조선후기 양식까지 다양한 형태의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고택 내부는 넓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섬세하게 설계되어 있고 이 저택의 가장 큰 특징인 개방적인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건물 내부 구조도 화려함이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소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예안이씨 충효당 홈페이지.

별당인 쌍수당으로 통하는 출입문으로 보이는 예안이씨 충효당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문

예안이씨 충효당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방문. 보통 한옥의 경우에는 방문 중간을 분리하는 문틀이 없으나, 이집에만 있는 양식이라 한다. 고려시대 건축양식이 반영된 것이라 한다.

기둥과 마루를 연결하는 부분도 일반적인 한옥과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여러 차례의 중수과정을 거쳐서 조선 후기의 양식을 마루에 있는 문은 가운데를 분리하는 문틀이 없다. 마루 뒷편에 문을 달아서 아주 쉬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


주인 할머니께서 마루에 아주 편하게 쉬고 계신다.

예안이씨 충효당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중수가 이루어졋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흔적들이 기둥에 남아 있다.

예안이씨 충효당 건물은 오른쪽편에도 별도의 출입문이 있다. 이 집 주인인 종손께서 열심히 이 고택의 내력과 특징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예안이씨 충효당의 정문. 정문 바로옆에는 외양간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고택의 오른쪽편 외부 모습. 창문이 상당히 많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예안이씨충효당(禮安李氏忠孝堂)
이 집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이홍인 부자의 충과 효가 얽혀있는 유서 깊은 집이다. 이홍인 공의 후손들이 사는 집으로서 명종 6년(1551)에 지은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 건축으로 추정되며 ‘충효당’이라 부른다. 안채와 사랑채가 맞붙어 있고 안동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내부의 중앙은 뜰로 꾸민 소박한 집으로 남쪽과 서쪽에 바깥으로 통하는 대문이 있다. 남문이 본래의 대문이지만 지금은 서문을 대문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서문 바깥에 평행하게 있던 바깥채를 철거한 뒤에 드나드는 문도 옮긴 것으로 보인다. 공간에 비하여 넓고 튼튼한 문틀을 하고 있으며 드나드는 문이 많아 흥미롭다. 서쪽에는 一자형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가진 ‘쌍수당’이라는 별당이 있다. ‘쌍수당’이란 충과 효를 한 집안에서 다 갖추었다는 의미로, 이홍인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나서 왜적과 싸우다 장렬하게 순국한 충의를 기리고 그 후손 한오의 지극한 효를 기리는 것이다. 이 집은 부분적으로 수리를 하고 변형도 되었으나 나직한 야산을 배경으로 하고 풍산평야를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상류주택과는 달리 소박하고 서민적인 민가 성격이 강하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