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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찰

밀양 재약산 표충사, 사명대사를 모신 서원이 있는 사찰

younghwan 2010. 9. 1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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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표충사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호국불교와 연관이 많은 곳이다. 표충사란 이름 자체가 사명대사를 모신 유교 사당이었던 표충사에서 유래했고 상당한 기간 동안 불교의 중심전인 대광전과 지금은 팔상전으로 바뀐 유교 서원인 표충서원이 나란히 있어 왔다. 사찰 규모가 크거나 웅장한 편은 아니지만 불보 사찰인 양산 통도사의 말사였던 관계로 경내의 정원이 잘 꾸며져 있다.영남 알프스 중의 하나인 재약산 아래에 자리 잡은 표충사는 맑고 깊은 계곡속에 있고,  맑은 계곡물이 사찰 옆으로 흐르고 있다.




1. 표충사 중심불전인 대광전과 표충서원 사당이었던 팔상전

밀양 표충사는 규모가 크지 않고 통도사 말사였던 까닭에 대웅전 대신 대광전이 중심 불전이 되어었던 것 같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을 좌우로 모시고 있는 전형적인 대웅전 형태인데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전에 붙이는 대광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중심불전인 대광전 바로 옆에는 지금은 팔상전으로 사용중인 사명대사를 모신 표충서원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에서 공이 매우 컸던 사명대사로 인해 서원 사당과 부처님을 모신 불전이 나란히 있었던 아주 특히한 가람배치이다.


2. 표충사 명부전과 관음전

표충사에서 제일 안쪽에 자리잡은 관음전과 명부전. 언뜻 보기에도 내력이 깊지는 않아 보인다. 관음전은 전통 사찰에서 오래된 관음전에 비해서 건물을 크기가 상당히 큰편이다.


3. 표충사 만일루, 범종루, 누각

표충사 만일루. H자형 독특한 구조로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스님이 만년을 보낸 곳으로 오래된 건물은 아니지만 불교계에서는 의미가 깊은 건물로 여겨지는 것 같다.


표충사 범종각 옆에 있는 커다란 누각. 표충사 옆을 흐르고 있는 계곡을 바라보고 있으며, 표충사를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밀양 표중사의 범종루. 누각 아래에 범종이 누각에 법고와 목어가 있는 오래된 문화재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잘 만들어진 건물이다.


4. 표충사 삼층석탑(보물), 석등

표충사 삼층석탑과 석등. 현재 보물로 선정되어 있는 표충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보이며 아마도 표충사라는 사찰이 존속하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의 가람배치와는 달리 특히하게 삼층석탑이 본당 앞에 자리하고 있지 않다.


5. 표충서원

표충사 입구를 들어서면 좌측면에 자리 잡고 있는 건물이 서산, 사명, 기허당 대사를 모신 유교식 사당인 표충사(表忠祠)와 표충 서원을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을 극복한 후 조선왕실 및 사회에서 세분 대사의 위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6. 표충사 사천왕문

밀양 표충사의 실질적인 정문 역할을 하고 있는 사천왕문이다. 문화재적으로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 잘 꾸며 놓고 있다. 표충사는 조선시대 유교 서원과 같이 있었던 까닭에 뭔가 다른 사찰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7. 표충사 일주문, 들어가는 길

밀양 재약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표충사는 이름 그대로 호국과 관련 있는 사찰이다. 재약산 깊은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거너면 표충사 일주문을 만날 수 있고, 일주문에서 표충사까지 오솔길을 걸어가면 된다. 표충서원과 같은 길을 쓰기 때문인지 일주문이라는 현판이 없고, 정문격인 누각도 표충사라는 현판만 있을 뿐 불교 사찰에서 쓰는 금강문을 쓰지 않고 있다.


8. 표충사 계곡

 밀양 표충사 옆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밀양의 가지산과 주변은 영남 알프스라고 불리듯이 높은 산들이 여럿이 있고 깊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으며 밀양의 계곡에 끝없이 이어지고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발을 담그고 있다. 표충사 옆에도 당연히 계곡물이 흘러가고 있고, 계곡의 상류쪽이라 이곳 계곡물도 차갑고 깨끗하다.




표충사(表忠寺)은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에 있는 사찰이다. 654년(태종무열왕 1)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죽림사(竹林寺)라 하였다. 1286년(고려 충렬왕 12)에는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一然) 국사가 1,000여 명의 승려를 모아 불법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839년(조선 헌종 3) 사명대사의 법손(法孫)인 월파선사(月坡禪師)가 사명대사의 고향인 무안면에 그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져 있던 표충사(表忠祠)를 이곳으로 옮기고 절 이름도 표충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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