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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꾸미개, 금관.금허리띠와 금제관식.관모

younghwan 2010. 1. 5.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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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는 천년 가까이 국가를 유지해왔던 나라로 경주에 수많은 고분을 남겨놓고 있다. 신라는 금을 이용한 많은 유물들을 남겨 놓고 있는데 주로 꾸미개의 형태로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다. 가장 유명한 형태는 금관으로 천마총을 비롯하여 여러 고분에서 화려한 금관이 출토되었으며, 그 외에 관모, 관꾸미개(관식),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 다향한 형태의 유물들을 남겨놓고 있다.

 이런 꾸미개들은 천마총, 금관총, 황남대총에서 많이 출토되었으며 그외의 고분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황남대총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신라를 대표하는 유물인 금관. 유명한 금관총이나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은 아니고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것이다.

금관과 하나의 세트를 이루는 금허리띠. 상당히 화려해 보이는 유물이다.

금관.금허리띠 (경주 황남대총)


금관과 허리띠는 신라의 황금문화와 최고의 금속 공예기술을 보여준다. 금관에는 나무, 사습뿔 그리고 새 등의 요소가 담겨져 있는데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것으로 왕을 상징한다. 사슴뿔은 시베리아지역 샤먼이 사용하는 모자에 등장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나무와 사슴뿔 모양의 세움장식에는 비취와 열매와 황금잎이 달린 듯 곱은 옥과 날개가 달려 있어 신라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 준다. 금관은 얇은 금판을 오려서 만들었기 때문에 머리에 쓰고 활동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허리띠는 가중허리띠를 장식하였던 금속의 띠꾸미개만 남아 있다. 드리개에는 물고기모양,주머니모양,족집게,곱은 옥 등이 달려 있는데 고대 북방 유목민족들이 생활에 필요한 작은 도들을 허리에 찼던 풍습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금제관식(황남대총). 금제관식(관꾸미개)도 금관과 마찬가지로 여러곳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이 것은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제관식이다.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되었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 있다. 이 관식은 황남대총 남쪽 무덤에서 발견되었으며, 높이 45㎝, 날개 끝 너비 59㎝의 크기이다. 3매의 금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운데 금판은 위에 3개의 돌출된 부분이 있어서 전체가 山자 모양을 하고 있다. 아랫부분은 차츰 좁아져서 V자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이 가운데 금판 좌우에 새 날개 모양의 금판을 작은 못으로 연결하였다. 전면에 작은 원형 장식을 달았으나 가운데 금판 밑의 관(冠)에 꽂게 된 부분에는 장식이 없다. 관 장식의 가장자리에는 작은 점을 찍어 처리하였다. 가운데 금판은 세로 중심선에서 안으로 약간 접은 상태여서, 밑의 뾰족한 부분을 무엇인가에 꽂았으리라 생각되지만, 평소에 썼던 관의 일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출처:문화재청>

금관, 관꾸미개와 함께 출토되고 있는 금으로 만든 관모.

금으로 만든 신.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금으로 만든 꾸미개들

옥이나 보석류로 만든 목걸이.

고분에서 출토된 가슴꾸미개


신라의 꾸미개는 금관과 허리띠를 비롯하여 관모, 관꾸미개,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신발들이 있는데 재질이나 형태가 화려하고 다양하다. 고대 일본인들이 신라를 '눈부신 금.은의 나라'라고 하였듯이 신라의 꾸미개는 대부분 금과 은으로 만들어졌다. 이 외에도 수천개의 유리나 수정으로 만든 목걸이와 손잡이를 용무늬나 봉황무늬로 꾸민 고리자루칼이 있다. 이러한 꾸미개는 몸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기능 외에도 정치적.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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