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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신라의 불교문화

younghwan 2010. 1. 1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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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는 화엄종과 법상종 등의 종파를 중심으로 초기에 발전했다가 후기에 들어서는 선종계통 중심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 불교는 호국불교의 개념이 많았다고 볼 수 있드며, 불교조각은 당나라 불교 조각과 삼국시대 조각특징이 결합하여 얼굴이 셈세하고 세밀해졌다. 초기에는 아미타불, 석가여래 조각상이 많았으나 후대에는 약사불, 비로자나불이 유행했다고 한다.


팔부중상 부조, 경주 당엄사터 출토

팔부중은 석가모니 설법장소에 모여 감화를 받은 여러 무리 가운데 하늘천(天)·용(龍)·야차(夜叉)·건달바(乾闥婆)·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伽)를 가리키는 용어로 팔부신장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본래 인간이 아니라 인도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적 존재 또는 강력한 힘을 지진 존재였는데 불교가 성행하면서 점차 불법을 지키는 신장으로 발전 변모해 나갔다. <출처:중앙박물관>


불교문화와 불국토
통일신라의 불교는 초기에 화엄종과 법상종 등의 종파, 후기에 선종계통이 발전하였으며, 국가와 왕실을 보호한다는 호국불교와 온국토가 부처님의 나라라는 불국토설이 있었다. 통일신라시대는 불교조각의 전성기로서 삼국시대 조각에다가 당나라 불교 조각을 결합시켜 얼굴과 몸에 살이 붙고 훨씬 섬세한 모습을 보인다. 이 시기의 세련되고 사실적인 조각은 8세기 중엽 무렵 석굴암 조각에서 절정을 이룬다. 후기에는 당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독특한 경향이 부각되었는데, 약사불, 비로자나불이 유행하고 철불도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또한 팔부중상은 8세기 중반 이후 세워진 석탑의 위층기단에 새겨진 것으로 이 시기의 특징적인 조각상의 하나이다.

사천왕상 녹유로 만들어진 전돌, 경주 사천왕사 터에서 발굴된 유물로 사천왕사 목탑의 기단에 붙인 것으로 신라 최고의 조각가 양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사천왕은 수미산 사방에 머물면서 불법을 지킨다고 한다.

무구정광 다라니경(복제본)

아미타불 좌상 (경주구황리금제여래좌상)과 여래입상. 국보 79호, 80호 지정된 문화재로 경주 구황리 삼층석탑을 해체.복원시 나온 사리함에 있던 불상이다. 아미타불좌상은 문화재청에는 금제여래좌상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중앙박물관에는 아미타물 좌상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후자의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아미타불 좌상(경주구황리금제여래좌상)
1934년 경주구황리 삼층석탑(국보 제37호)을 해체·복원할 때 나온 사리함에서 경주구황리 금제여래입상(국보 제80호)과 함께 발견되었다. 사리함에 새겨진 글에 의하면 통일신라 성덕왕 5년(706)에 사리함 속에 순금으로 된 아미타상을 넣었다고 하는데 이 불상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러나 크기가 6치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불상은 12.2㎝로 4치도 되지 않아 의문이 간다. 광배(光背)와 불신(佛身), 연꽃무늬 대좌(臺座)의 3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각 부분은 분리되도록 만들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으며, 둥근 얼굴은 풍만한 느낌을 준다. 눈·코·입은 뚜렷하고 균형이 잡혀 있어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이상적인 모습에 접근하고 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며,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앞가슴을 많이 드러내고 있는데, 그 안에 대각선으로 걸쳐 입은 속옷이 보인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에 흘러내린 옷자락은 좌우대칭으로 정돈되어 길게 늘어져 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있고, 무릎 위의 왼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도록 하여 손등을 보이고 있다. 머리광배에는 연꽃무늬를 중심으로 인동초·당초무늬·덩쿨무늬와 그 가장자리에 불꽃 무늬가 뚫을새김되어 있고, 몸광배에는 인동초·당초무늬와 덩쿨무늬를 이중으로 뚫을새김하였다. 대좌는 원형이며 엎어 놓은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미소 띤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와 균형잡힌 몸매를 지녀 더욱 위엄있게 보이는 이 불상은 손모양이나 옷주름, 양감이 강조된 표현 등에서 8세기 초 불상의 양식과 성격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부처입상
경주구황리금제여래좌상(국보 제79호)과 함께 경주구황리삼층석탑(국보 제37호)에 안치된 사리함 속에서 발견된 불상이다. 전체 높이 14㎝의 순금으로 만든 불상이며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모두 갖추고 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고, 얼굴은 갸름한 편이나 두 볼에는 살이 올라 있다.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콧날은 날카롭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다. 약간 좁은 어깨에는 두껍게 표현된 옷을 걸치고 있는데, 앞면에는 U자형의 옷주름을 새기고 있다. 치마는 발목 부분에서 양쪽으로 약간 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삼국시대의 불상 양식이 아직 남아 있는 모습이다. 오른손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옷자락을 잡고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는 머리 뒤에 원형으로 표현하였는데, 불꽃무늬에 둘러싸여 전체적으로 보주형(寶珠形)을 띤다. 원 안의 연꽃무늬를 중심으로 빛이 뻗어나가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가장자리의 불꽃무늬는 섬세하게 뚫을새김하였다. 대좌는 따로 만들어 끼운 것으로 12각의 받침 위에 엎어 놓은 연꽃무늬를 큼직하게 새겼다. 머리와 신체의 적당한 비례, 옷주름의 형태 등을 볼 때, 삼국시대 후기의 불상에서 좀 더 발전한 통일신라 초기 새로운 양식의 불상으로 보인다. 사리함에 새겨진 글을 통해 692년에 탑을 건립할 때 넣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만든 연대가 거의 확실하여 통일신라시대 불상 연구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사리외함. 경주 황복사 터 삼층석탑에 출토된 사리외함으로 많은 글씨가 적혀 있다.

사리외함에 적혀 있는 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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