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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 서양과의 투쟁의 현장인 광성보입니다.   이 광성보는  당시에 사용한 대포와 포대, 성이 잘 남아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답사 오기에 좋으며,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과 돈대의 곡선 모양이 인상적입니다. 광성보는 언뜻 보기에도 강화도를 둘러싸고 있는 돈대중 규모가 가장 크고, 많은 사람이 주둔할 수 있어 보이기 때문에, 강화도를 지키는 지휘본부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광성보는 손돌목 돈대와 용두돈와는 숲길로 연결되어 있기때문에 여름에 방문하여 쉬원한 숲길을 걸으면서 감상을 하면 좋습니다.

광성보 입구 성문입니다. 돈대중에서도규모도 아주 큰 편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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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에 전시된 신미양요 당시의 대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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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의 성벽입니다. 아주 튼튼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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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 성벽에서 총으로 사격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활을 쏘는 조선전기의 성벽이 아니라 총을 쏘는 조선후기의 성벽 형태를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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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마찬가지로 총을 쏠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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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광성보를 지휘하던 장군이 머물던 자리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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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에도 성벽밑으로 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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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비 비슷한 것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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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에 고려시대의 외성을 보수하고, 1656년 광성보를 설치했는데, 이 보의 돈대는 1679년에 축조된 것이며 오두, 화도, 광성의 돈대와 오두정 포대가 이 보에 소속되었다. 1745년 완전한 석성으로 개축되어 당시 성문도 설치되었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당시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서, 1871년 4월 24일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요구하면서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였을 때, 상륙부대가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후  광성보에 이르러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당시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 이하 전 용사가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웠는데, 포탄이 떨어지면 칼과 창으로 싸우고 칼과 창이 부러지면 돌과 맨주먹으로 싸워 한 사람도 물러서지 않고 장렬히 순국하였다고 한다. 이 전투 후  성책과 문루가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7년 안해루, 광성돈, 손돌목돈, 용두돈과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묘, 그리고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각 등이 모두 보수 정화되었으며,  이 때 세운 "강화 전적지 정화기념비"가 용두 돈대 위에 서있다.  <출처: 강화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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