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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유교국가로 왕실과 국가에서 주관하는 많은 의례가 있었고, 이 것들이 국가경영에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국가를 다스리는 법인 경국대전과 같은 법전만큼의 이런 의례절차를 정리한 국조오례의 등도 중요하게 여겼으며, 기록의 나라답게 행사에 대한 많은 결보 보고서를 의궤와 같은 형태로 남겨 놓고 있다. 그 중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가져간 의궤도 이런 행사 결과를 정리한 내용 중의 하나라고 한다.


사직단친향병풍, 사직단에서 왕이 제사 지내는 절차 등을 기록한 병풍(복제품). 종묘 제사와 함께 국가에서 진행하는 가장 큰 행사라 할 수 있다.

사직에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

서울 사직단에 왕이 직접제사 지내는 절차 등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 병풍이다. 사직단은 서울과 전국의 큰 고을에 설치되었다. 서울에 있는 사직단은 종묘가 왕궁의 동쪽에 있고 사직단은 왕궁의 서쪽에 있어야 한다는 전통에 따라 경복궁의 서쪽인 지금의 종로구 사직동 자리에 설립되었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다. 사직단의 사는 토지의 신을, 직은 곡식의 신을, 단은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뜻한다. 사직단에는 단을 2개로 만들어 산은 동쪽에 직단은 서쪽에 배치하였다. 사단에는 국사지신을 북향으로 모시고, 후토지신을 동향으로 함께 모셨다. 직단에는 국직지신을 북향으로 모시고 후직지신을 동향으로 함께 모셨다. 사직단에서는 정례적으로 지내는 기곡제 등을 지냈다. 토지와 곡식은 나라을 유지하는 기틀임과 동시에 민생의 근본이었으므로, 먼 고대로부터 사직을 설치하고 제사 지내는 전총이 있었다. 사직단에서 지내는 제사는 민생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의례중의 하나로 여겼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국조속오례의. 조선영조 20년에 만든 왕실과 국가의 큰 의례를 적은 책으로 성종때 만든 국조오례의를 당시 상황에 맞게 보완한 것이다.

조선시대 왕실과 국가에서 치루는 가장 중요한 의례는 길례, 가례, 빈례, 군례, 흉례로 나뉘는 오례이며 이를 다룬 대표적인 책은 성종 5년에 간행된 국조 오례의이다. 국조속오례의는 영조 20년 국조오례의를 시대에 맞게 수정 보완한 책이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영조임금과 왕비 정순황후 혼례보고서

가례도감이란 조선시대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의 혼인 때 혼인을 진행시키려고 만든 임시관청이며, 의궤는 왕실의 행사를 마치고 난 뒤 작성하는 일종의 결과 보고서이다. 전시된 의궤는 66세였던 영조임금과 15세였던 정순왕후 김씨의 혼인 기록이며, 펼친 그림에는 영조임금과 정순왕후를 태운 가마가 그려져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왕자 금원군 태지. 태지는 왕자의 태를 묻는 태실에 같은 묻는다.

이 태지는 중종임금의 왕자 금원군의 태실에서 나왔다. 태지에 시긴 글을 통하여 금원군은 중종 8년에 태어났고, 중종 14년에 태실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원군은 왕자의 호칭이다. 조선시대 왕의 아들과 딸은 대개 7~10세 무렵에 수양대군, 광해국 등과 같이 대군,군,공주, 옹주라는 호칭을 받았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영조임금이 친히 지은 사도세자의 묘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융릉으로 옮기면서 땅에 묻었던 것이 1968년에 공사도중 휘경동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정조대왕같이 치밀한 사람이 이런 묘지를 빠트릴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정조대왕이 고의로 땅에 묻어버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원에 있는 사도세자 융릉

사도세자는 영조임금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영빈이씨이다. 사도세자는 본래 배다른 형 효장세자가 어린 나이로 죽자 그 뒤를 이어 세자로 책봉되었다. 사도세자는 영조 25년 왕을 대신하여 정치를 하는 소위 대리청정도 하였으나 왕실 및 당쟁의 소용돌이와 과실로 인하여 아버지 영조임금으로부터 미움을 사 영조 38년 뒤주 속에 갇혀 8일만에 죽었고 양주 중랑포(지금의 서울 휘경동)에 묻혔다. 정조임금은 사도 세자의 아들이다. 정조임금은 사도세자의 묘소이름을 영우원으로, 시호는 사도에서 장헌이라 고쳤다. 영우원은 정조임금이 경기도 수원에 제2의 서울격인 화성을 건설하면서 수원으로 옮겨졌으며 이름도 현륭원으로 고쳤다. 전시된 사도세자 묘지는 1968년 휘경동에서 공사 도중 땅에서 나와싸. 아마 묘소를 수원으로 옮기던 공사 때 땅에 묻어둔 것이라고 본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영조임금의 후궁 영빈이씨의 묘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억울하게 죽은 아들인 사도세자의 묘지와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이 묘지 또한 사도세자의 묘지가 발견된 1968년도와 같은 해에 연세대 교정에 있던 수경원을 고양시 서오릉으로 이장하면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연세대 교정에 있는 영빈이씨의 무덤터인 수경원터와 정자각

영빈이씨는 영조임금의 후궁이다. 후궁이란 왕의 정실부인인 왕비를 제외한 왕의 여인 즉 왕의 첩을 말한다. 영빈에선 빈이란 후궁 가운데 가장 높은 품계인 정1품을 말한다. 영빈 이씨의 묘는 연세대학교 부근에 있었으며 그 이름을 수경원이라 하였다. 1968년 수경원을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 경내로 이장할 때 이 묘지가 발견되었다. 이 묘지는 영빈이씨가 죽자 남편 영조임금이 글을 지었고, 글씨는 사위 박영원이 써서 만들었다. 여기에 보듯이 영빈이씨는 6살에 궁녀가 되었고 이후 영조임금의 후궁이 되어 사도세자를 비롯한 1남 6녀를 낳았으며 영조 임금으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았다. 영빈이씨가 1764년에 죽자 영조임금은 매우 애통해 하면서 후궁 제일의 예로서 장례를 치르게 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묘지, 시책, 간책
묘지는 묘의 널 안 또는 묘 언저리에 묻는 묻힌 자에 관한 기록이다. 묘지는 묻힌 사람의 약력 및 행적, 가족 관계 등을 기록하였다. 시책에는 시호 및 그와 관련되는 내용이 있다.왕의 시책은 임시 관청인 시호도감에서 만들며 완성된 시책은 종묘에 보관되하였다. 간책이란 동아시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종이 대신 대나무, 나무, 돌, 금속 등을 길쭉한 직육면체로 만들어 그 위에 글씨를 써 만든 책 형식이다. (대나무를 가장 많이 사용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며, 대나무로 만든 책을 간책이라고도 하였다) 간책 형식은 종이 발명 이후에도 왕실 등에서 의례를 요구하는 책 또는 문서의 형식으로 계속 만들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대한제국 황실잔치 보고서.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한 잔치를 정리한 보고서.

서울 광화문 앞 사거리 교보문고 바로 옆에 있는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와 비전

고종황제는 1902년에 51세가 되었고 동시에 즉위 40년을 맞았다. 이 뜻 깊은 해를 맞자 황태자와 신하들은 고종황제에게 국립 최고급 경노당격인 기로소에 모셨으며 잔치를 성대하게 베풀어 드렸다. 전시된 진안의례는 당시 덕수궁에서 베푼 잔치를 기록하고 그림으로 그린 일종의 보고서이다. <출처:문화재청>

명성황후의 장례 결과 보고서.

국상도감은 국상 즉 , 황실의 최고위 어른인 왕,왕비,대비의 장례를 진행하려 설치한 임시관청이다. 전시된 의궤에는 경복궁에서 무참히 시해된 이후 미루다 거행된 1907년 명성황의의 장례에 관한 글과 그림이 실려 있다. 고종황제는 명성황후의 장례를 가장 크고 성대하게 치루게 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도감과 의궤
조선시대에 국상, 왕실의 경사, 궁궐.능묘.태실으 조성 등 대규모의 의식이나 토목공사 때는 임시 관청인 도감을 두어 일을 진행하였다. 일을 마치고 나면 후세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일의 진행 과정을 기록하고 중요한 부분은 그림으로 나타낸 소위 의궤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이 작업은 임시 관청인 의궤청에서 진행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조선의 국가의례
조선시대 왕실과 국가에서 주관하는 오례 중 가중 비중이 큰 길례는 상례와 장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제사 의식이다. 길례의 대표적인 예는 국가의 큰 산.바다.강.연못 등의 제사, 종묘.사직단.성균관.향교의 제사, 역대 왕조의 시조 또는 치적이 뛰어난 왕의 제사, 충의가 뛰어난 학자 및 위인의 제사 등이 있다. 특히 지방에서의 길례는 국왕을 대신하여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관원이나 지방의 관원이 집행하였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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