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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름 천안문 광장

중국여행/북경일반 2010.07.06 14:13 Posted by younghwan


 명나라가 북경에 도읍을 정한 이래로 중국의 수도 북경의 중심이 되는 천안문 광장이다. 서울 경복궁 앞 광화문 대로와 비슷한 기능을 하던 곳으로 그 면적과 규모에 있어서 중국이라는 국가의 규모를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현재는 광장으로 조성하여 최대 50만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다.

 광장 북쪽에는 자금성 출입문인 천안문이 있고, 서쪽에는 인민대회당, 동쪽에는 역사박물관, 남쪽에는 모택동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광장에는 북쪽에 국기 게양대와 남쪽에 인민영웅기념비과  서 있는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고 있는 광장이다. 지난번 여름에 이 곳 천안문 광장을 찾았을 때는 여름방학기간이라서 그런지 한여름 땡볕에도 수많은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으나, 방학이 시작하기 전인 요즘에는 인파가 많지는 않아 보였다. 천안문 광장의 인파를 보면 역동하는 중국의 현재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오후 6시 국기하강식을 보려고 몰려든 북경시민들.


중국과 북경의 상징인 천안문. 모택동 사진이 걸려 있다.



광장 서쪽에 위치한 중국 정치의 중심인 인민대회당


천안문광장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인민영웅기념비


모택동기념관



천안문 동쪽편의 역사박물관



천안문 광장 풍경



톈안먼 광장(천안문 광장, 중국어 간체: 天安门广场, 정체: 天安門廣場, 병음: Tiān'ānmén Guǎngchǎng)는 베이징의 쯔진청 톈안먼 앞의 광장이다. 1989년의 톈안먼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다. 명나라 초기에 창건되어 1651년 개축되었다. 남북으로 880m, 동서로 500m, 넓이 44만m²로, 도시에 있는 광장 중 세계에서 가장 넓다. 명나라 영락제가 북경으로 천도했던 시기에는 천안문에서 남하해 〈대명문〉(大明門)(청조에서는 〈대청문〉(大淸門), 신해혁명 후에 〈중화문〉(中華門)으로 개명)에 이르는 〈천보랑〉(千歩廊)이라고 하는 큰 길과 현재의 장안로에 존재하는 〈장안좌문〉(長安左門)과 〈장안우문〉(長安右門) 사이를 묶는 정(丁)자형의 공간이 존재하여, 천안문 광장의 원형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1954년에 〈천보랑〉의 좌우 관청과 창고를 철거하고, 중화문과 장안 좌우문을 철거해 현재의 〈천안문 광장〉이 형성되어 천안문 광장 건축에 더해 〈인민영웅기념비〉도 건설되었다. 또 1976년에 모택동이 사망하면서, 다음 해에 걸쳐 광장의 남쪽 중화문 유적지 부근에 〈모주석 기념당〉이 건설되었다. 천안문 광장은 최대 50만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국가 행사나 역사상 큰 사건의 무대가 되어 왔다. 그 때문에 몇 번이나 혁명 운동의 무대로도 이용되어 항쟁이 일어났다.
 남북 880m, 동서 500m의 세계 최대의 광장이다. 포석은 화강암이다. 북쪽은 북경 제일의 큰 길인 장안로가 위치하며, 그 반대 쪽인 자금성(고궁)의 입구에 천안문이 위치한다. 광장 안은 북쪽에서 인민영웅기념비, 모주석 기념당, 정양문(正陽門)(전문, 前門)이 설치되었고, 광장의 서쪽에는 인민대회당(전국인민대표대회 의사당), 동쪽에는 중국국가박물관(구 〈중국역사박물관〉 및 〈중국혁명박물관〉)이 있다. 이것은 태양이 뜨는 방향을 과거, 지는 방향을 미래에 비유한 것이다.
 주위 보도의 포석에 섞여 장방형 철판이 깔려 있는 부분이 있어, 아래에 물을 흘릴 수 있도록 배수로 구조로 되어 있다. 대규모 집회에는 철판을 떼어 내고 주위를 천막으로 가려, 임시 화장실로 사용할 수 있다.
 광장 북부에는 국기게양대가 있어, 일출과 일몰에 맞추어 매일 경비병에 의한 국기의 게양식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된다. 또 야간은 특정일을 제외하고는 출입금지 지역이 된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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