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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둔황은 서역의 출발점이 되는 도시로 한나라 때 세워진 만리장성이 남아 있으며, 당나라까지는 서역으로 출발하는 출발점으로 당나라 현장법사나 신라의 혜초스님깥이 인도로 순례를 떠났던 많은 승려들이 출발지로 삼았던 곳으로 불교전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도시이다.

 둔황 시내에서 자동차로 사막길을 약 1시간쯤 달려오면 사막 한 가운데에 메마른 강이 흘러가고 강 너머로 높지않은 바위산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 곳이 그 유명환 둔황 석굴(막고룰)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천불동이라는 말의 유래가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바위를 뚫어 만든 수많은 석굴들을 이 곳에서 볼 수 있게 된다.

 둔황 석굴(막고굴) 입구에 들어서면, 관광객들은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서 석굴을 감상할 수 있는데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중국 여자 가이드가 서툰 한국어로 설명을 해 주었다. 입구에서 막고굴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길가를 비롯하여 멀리 사막 한가운데까지 많은 탑들을 볼 수 있는데 주로 북송시대에서 이 곳을 다스렸던 서하의 승려들의 승탑(사리탑)이라고 있다.


둔황 막고굴 매표서에서 조금 걸어서 들어가면, 마당에 많은 탑들을 볼 수 있다. 이 곳은 사막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지만, 물을 끌여들여서 방풍림을 심어 놓고 있다. 방풍림 너머로는 거친 사막이 끝없이 펼쳐 있다.



이 곳의 승탑은 주로 북송(서하) 시대 유명한 승려들의 사리를 모신 탑이라고 하면, 옛날 기준으로는 사막 한 가운데 막고굴 입구에 세워진 탑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목조 건축물을 본 떠서 받침돌, 탑신, 지붕돌로 구성된 한국의 승탑(부도탑)과는 달리 인도 불교 사원의 모습을 닯은 것으로 보인다. 태국의 사원이나 앙코르와트 등 남방계 건축물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이 곳이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유입되는 곳이라서 초기 불교의 모습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한국의 사리탑인 국보로 지정된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정혜원융탑.


둔황 막고굴 매표소 부근에 모여 있는 많은 사리탑들


이 사리탑은 다른 사리탑과는 약간 다른 양식을 하고 있다.



둔황 막고굴 입구에는 지금은 물이 없지는 강이 있고, 이 강을 건너면 바위산 언덕 절벽을 뚫어서 만든 막고굴 천불동이 있고, 반대편에는 강을 따라서 승려들의 사리탑인 승탑이 산재해 있다.


둔황 막고굴 앞 강가 언덕에 있는 다향한 양식을 승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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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高僧)의 사리(舍利)나 유골을 안치하는 묘탑(妙塔). 부도(浮圖), 부두(浮頭), 불도(佛圖), 포도(蒲圖)라고도 한다. 원래 불타(佛陀) 또는 솔도파(率堵婆 Stupa)라는 음이 잘못 전해진 것으로 처음에는 불상·불교사원·불탑을 의미했지만 뒤에는 고승들의 사리를 담는 석조 소탑을 지칭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후한시대부터 이러한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 당나라로부터 선종이 들어온 9세기 이후 각 구산선문(九山禪門)에서 사자상승(師資相承)으로 법맥이 이어지면서 불상 숭배보다는 조사(祖師)들의 사리와 유골을 담은 묘탑이 중요한 예배대상이 되어 많은 부도가 세워졌다. <출처: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