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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유적_왕릉

[고궁박물관] 조선시대 해시계인 앙부일구, 간평일구와 혼개일구, 신법지평일구

younghwan 2010. 11. 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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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에는 천문학은 제왕의 학문으로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하였다. 그 중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로는 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세종때 만들어진 정밀한 시간측정 도구인 물시계는 그 원형이 남아 있지 않고, 그 일부인 자격루가 덕수궁 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왕권의 상징으로 시간의 동기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시계는 시간의 근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만든 것인데 반해 해시계는 태양의 그림자를 가지고 시간과 절기를 측정할 수 있는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시계이다.

 고궁박물관에는 세종때 만들어진 오목해시계인 앙부일구(보물845호)를 비롯하여,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간평해시계와 혼개해시계 (간평일구와 혼개일구, 보물 841호), 평면해시계(신법지평일구, 보물 840호)를 비롯하여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조선시대에 사용된 다양한 종류의 해시계들이 전시되어 있다. 천문과 역법, 시간과 관련된 사항은 국왕의 권위와 연결되는 중요한 사항으로 궁궐과 중앙관청인 관상감에서 간여한 사항으로 중앙박물관보다는 고궁박물관에 제일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목해시계 (앙부일구, 보물 845호). 청동으로 만든 반구 안에 은선을 박아 동지에서 하지에 이르는 24절기를 13개의 계절선으로 나타내고 수직으로 시각선을 그었다. 세종때 만들어진 대표적인 조선시대 해시계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것은 대궐과 종로 등에 설치해서 사용했던 것으로 공동시계의 성격을 갖는다.


경복궁 편전인 사정전 앞에는 복제품이지만 해시계인 앙부일구가 설치되어 있다. 조선시대 해시계가 설치되어 사용되는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에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로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이 솥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둥근 지구 모양을 표현한 것이고 작은 크기로도 시각선, 계절선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이다. 큰 것은 시계의 지름이 35.2㎝, 높이가 14㎝이고,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이며, 작은 것은 시계의 지름이 24.3㎝이며 18세기 전반에 제작되었다. 오목한 시계판에 세로선 7줄과 가로선 13줄을 그었는데 세로선은 시각선이고 가로선은 계절선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추어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절기마다 태양에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가 다른 것을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특히 세종실록에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12지신 그림으로 그려서 시간을 알게 했다는 기록이 있어 주목할 만 하다. 또한 이것은 대궐에 두었을 뿐만 아니라 종로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동시계였다는 점에도 의의가 크다. 2개의 해시계는 작고 오목한 가마솥 모양에 네발이 있는 우아한 모습을 가진 것으로 작풍과 제작기법이 같다. 청동으로 몸통을 만든 뒤, 검은 칠을 하고 글자와 선을 은상감으로 새겨 예술품으로도 손색이 없으며 정확한 수평을 잡기 위한 십자형의 다리가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이며, 과학 문화재로서도 가치가 큰 유물이다. <출처:문화재청>


평면해시계 (숭정9년명신법지평일구, 보물 839호). 중국 명나라때 선교사에 의해 중국 명나라의 북경을 기준으로 제작한 해시계이다. 1645년경 소현세자에 의해 도입되어 관상감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장구 모양으로 선을 새겨 세로선은 시각, 가로선은 24절기를 나타내고 있다.


이 해시계 중앙에 삼각형의 시표를 꽂았을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있다.

대부분의 해시계가 반원모양인데 비해 이 해시계는 시간이 표시되어 있는 면인 시반(時盤)이 수평을 이루고 있어 지평일구(地平日晷)란 이름이 붙었다. 전체가 흰 대리석으로 가로 120.3㎝, 세로 57.5㎝, 두께 16.5㎝이고 무게가 310㎏이나 된다. 시반면은 잘 연마된 평면으로 그 위에 시각선과 절기선이 매우 조밀하고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시각선은 한시간을 4각(角)으로 나누고 1각마다 시각선을 하나씩 그어 오전 5시45분부터 오후 6시15분까지 알 수 있게 하였다. 절기선은 하지에서 동지까지 13개선으로 이루어 졌는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가운데 삼각형의 시표(時表)가 있었다. 『증보문헌비고』에 보면 인조 14년(1636) 시헌력법에 의해 이천경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해시계가 만들어진 표준 위도를 계산했는데 30°54′N으로 중국 북경의 위도와 같아, 이 지평일구는 북경을 관측지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1645년 우리나라에 돌아오면서 그 일행이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평면해시계 (신법지평일구, 보물 840호)이 해시계는 조선 숙종때 만들어진 것으로 기존의 소현세자가 중국에서 들여온 것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해시계의 일종으로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크기는 가로 58.9㎝, 세로 38.2㎝, 두께 16.3㎝이다. 원리는 그래프 용지에 1㎝ 간격으로 동심원과 10°간격의 방사선을 그어놓고, 그 중심에 막대를 세워 시각에 따른 그림자의 변화를 보는 형태로, 이것은 반구형을 한 해시계 앙부일구를 전개하여 평면에 옮겨 놓은 것과 똑같은 모양이다. 측면에 새겨져 있는 글을 통해 18세기 초에 제작된 것이고 구조와 평면에 그려진 시각선, 절기를 나타낸 선이 중국의 것과 같아 그것을 본 떠 관상감(觀象監)에서 새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에는 이들 신법지평일구와 같은 휴대용 해시계가 있다. 가로 16.8㎝, 세로 12.4㎝ 크기의 놋쇠로 만든 이 해시계는 자석으로 된 침이 들어 있어서, 휴대할 때 남북을 정하여 시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했다. 현재 덕수궁 궁중 유물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출처:문화재청>


간평해시계와 혼개해시계 (간평일구와 혼개일구, 보물 841호). 조선 정조때 만들어진 것으로 간평해시계와 혼개해시계가 같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북경을 기준으로 만든 평면해시계를 보완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해시계에 그려진 시간과 절기를 표시한 선. 세로줄이 시각선이고 가로줄이 24절기선이라고 한다.

북극을 중심으로 둥글게 선을 새긴 해시계와 남극을 중심으로 둥글게 새겨 날금과 씨금을 나타낸 해시계를 나란히 두었다. 간평해시계의 세로줄은 시각선이고, 가로줄은 24절기선이다. 서울의 표준위도를 적어 놓고 있다. 혼천해시계의 좌우로 벌어져 가는 선은 시각선이고 중앙에 있는 수직선 밑은 남쪽을 가리키며 시간상으로는 정오를 뜻한다. <출처:고궁박물관>

2개의 해시계를 하나의 돌에 새긴 매우 독특한 형태의 해시계이다. 서울의 위도 37도 39분 15초와 황도와 적도의 극거리 23도 29분을 측정기준으로 하여 1785년에 만들었다고 새겨져 있다. 간평일구는 앙부일구를 그대로 수평면 위에 투영한 것과 같으며 길이 129㎝, 넓이 52.2㎝, 두께 12.3㎝이다. 해시계 면의 지름은 43㎝이며, 평면 원의 중심을 천정(天頂)이라 새기고 시각선의 복사점을 북극이라 새겼는데, 이 북극에 맞춰 보아 상공의 태양운행과 시간을 알 수 있게 고안한 것이다. 혼개일구는 해시계 면의 지름 46㎝이며 2구 모두 원안에 곡선으로 이루어진 세로선과 가로선들이 그어져 있는데, 세로선은 시간을 가로선은 계절을 나타낸다. 가운데 바늘의 길이는 원지름의 반이고 그림자의 변화에 따라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절기마다 정오에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가 다른 것을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이 2구의 해시계는 시계면의 선들이 정확하고 정교하며 또 섬세한 선들을 음각하여 돌에 새긴 솜씨가 뛰어나다. 품위가 있고 구조가 독특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출처:문화재청>


중국 북경 자금성 정전인 태화전 앞에 있는 해시계 


평면해시계 (19세기). 삼각형의 영의 그림자가 원판 위에 드리워지면 그림자의 끝이 가리키는 지점으로 시간을 읽을 수 있다.

 


대표적인 공동해시계라고 할 수 있는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룩소르 신전 앞에 있는 오벨리스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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