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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역사를 기록한 자료로는 국왕의 일대기를 기록한 <실록>과 일상을 세세히 기록한 <승정원일기>, 왕실 주관의 각종 행사를 기록한 <의궤>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 의궤는 왕실주관의 각종 행사와 주요 절차를 그림과 함께 정리한 기록이다. 조선왕조 의궤에 기록된 그림들은 당대 최고의 전문화가라 할 수 있는 도화서 화원들이 사실에 근거해서 그린 그림으로 기록화에 가까운 그림들이다.

 이들 그림들은 당시에 사용하였던 최고급 안료를 이용하여 최고의 화가들이 그렸기때문 기록화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그림으로서도 상당히 수준이 높은 그림들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행사들에는 기념촬영 등을 통해서 행사장면을 남겨놓고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그림으로 중요한 행사장면들을 남겨 놓고 있다. 특히 의궤는 조선후기 문예중흥기라고 할 수 있는 영.정조대에 상당히 많이 그려졌는데 1760년 청계천 준설 공사를 마친 뒤 이를 기념하여 베푼 무예시험 장면을 그린 <준천시사열무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에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화성원행반차도>, 1817년 효명세자의 성균관 입학 의식을 그린 <익종대왕 입학도> 등이 유명하다.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복제), 1759년. 정조대왕의 화성행궁 반차도와 함께 의궤에 실린 그림중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간략하면서도 아주 세밀하게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의궤 말미에 그려진 반차도. 당시 왕실 행사의 모습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1759년 6월에 있었던 영조와 정순왕후 김씨의 결혼식 과정을 기록한 의궤, 왕비 후보를 뽑는 삼간택의 과정을 비롯하여 납채(청호서보내기), 납징(결혼예물 보내기), 고기(날짜잡기), 책비(왕비의 책봉), 친영(별궁으로 가 왕비 맞이하기), 동뢰연(혼인 후의 궁중 잔치) 등 왕실 결혼의 구체적인 절차들이 나타나 있다. 말미에 그려진 반차도는 친영에 해당하는 것으로, 국왕이 별궁인 어의궁으로 가서 왕비를 모셔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표지의 '오대산상'은 제작 후 오대산 사고에 보내졌음을 의미한다. <출처:규장각>


임진전란도,


이충무공전서, 1795년. 정조의 명으로 발간된 이순신 장군 관련 자료 모음이다. 이 책자에서 거북선을 비롯한 당시 무기의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고, 오늘날 이 책자를 근간으로해서 당시의 무기들을 복원하고 있다.


이충무공 전서

충무공 이순신의 문집, 14건 8책의 정유자본이다. 1795년(정조 19) 정조의 명으로 교서관에 도감을 설치하였으며, 각신 이만수가 편찬을 지휘하고 검서관 유득공이 실무를 담당했다. 책머리에 국왕이 작성한 윤음과 신도비명이 있으며, 본문은 시와 장계, 난중일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라좌수영의 거북선과 무기의 도설이 실려 있다. <출처:규장각>


화기도감의궤. 17세기초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의궤로 당시의 각종 화약무기 제조과정을 기록하였다.

1615년 화기도감에서 불랑기, 삼안총 등 각종 화약 무기를 제조한 과정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의궤, 내용은 목차없이 도설, 좌목, 일지 순으로 기록되었다. 1614년 당시 제작되었던 무기 그림인 도설이 수록되어 있다. 북방에서 흥기하는 건주 여진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차원에서 화기가 제작된 과정을 기록하고 있으며, 화기 도감 담당 관리들의 좌목과 화기 제작 과정이 날짜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의정부,비변사,춘추관, 예조와 4사고에 각 1건씩 분상되었다. 무기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조선시대 유일한 의궤라는 점에서 국방을 중시한 광해군 시대의 성격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출처:규장각>


준천시가열무도, 1760년(영조 36)

1760년에 도성내 하천 준설공사를 완성하고, 이를 기념하는 무사들의 무예 시험 행사를 4첩으로 기록한 그림. 홍수피해 방지와 하천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국왕 영조의 지대한 관심속에서 공사가 이루어졌다. 당시의 공사현황과 경비, 인부, 말 등의 숫자 등을 기록한 <준천사실>에 의하면 도성내의 하천 공사는 1760년 3월 역사를 시작하여 4월 16일 끝난 것으로 되어 있다. 동원된 인부가 총 50여만 명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 공사였다. 흥인문 남쪽에 있는 오간 수문에 행차하여 준천의  현장을 관람한 영조의 자리와 국왕을 수행한 관리의 모습을 비롯하여, 하천변에서 소와 수레 등 각종 도구를 활용하여 준설 작업에 열중인 인부들의 모습이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 <출처:규장각>


준천사실, 1760년

1760년 청계천 준설 공사 업무를 주관한 준천사의 사업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한성판윤 홍계희가 왕명을 받아 편찬하였는데, 책 머리에 영조의 어제 서문과 한성부 판윤에게 내리는 교서가 있으며, 다음에 본문에 해당하는 <준천사실>과 <준천사절목>이 실려 있다. <출처:규장각>


참의공사연도(모사본), 1828년

1817년 7월 서정보는 세자시강원 보덕의 직책으로 익종의 성균관 입학식에 참여하였는데 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왕세자입학도>를 만들면서 집안에 전해지던 10대조 서고의 <서연관사연도>와 서성의 <남지기로회도>를 합쳐서 <참의공사연도>라 이름하였다. <출처:규장각>


종묘의궤, 1706년

1706년에 종묘서 도제조 서문중 등이 종묘의 제도와 연혁, 의식 절차, 관련 행사 등을 그림과 함께 기록한 의궤. <국조오례의>,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각 관청의 등록 및 개인 문집 등에서 종묘와 관련되는 내용을 뽑아 분류.정리한 것으로, 종묘에 관한 최초의 종합적인 기록이다. 책의 첫머리에 편찬 원칙을 밝힌 12개조의 <범례>가 나오며, 1책에는 도설을, 2~4책에는 종묘와 관련된 각종 기록들을 수록하였다. <종묘영녕전도>는 종묘의 정전과 영녕전의 전경을 그린 것으로, <범례>에서 밝혔듯이 창건 초기의 모습이 아니라 이후에 증축된 모습이다. <출처:규장각>


사직서의궤, 1804년

사직의 제도와 의식절차, 관련 행사 등을 그림과 함께 기록한 의궤, 1783년 종조의 명으로 처음 편찬되었으며, 본 의궤는 최초의 의궤에 1783년 이후부터 1804년 2월까지의 기록들을 추가로 기록한 것이다. 정조는 1783년 사직제를 지내기 위한 준비를 하던 중 당시까지 <사직서의궤>가 편찬되지 않았음을 알고 의궤 편찬을 지시하였다. 본 의궤의 내용을 보면, 1783년까지으 기록들은 서체가 일정하고 참고 문헌이 명시되어 있는 반면, 그 이후부터 1804년까지의 기록들은 서체가 다르고 참고문헌이 밝혀져 있지 않다. 권두에는 <사직서전도>, <단유도설>, <찬실도설> 등의 그림이 실려 있어서 사직단의 전경과 사직제의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규장각>


송광사지도, 19세기 전반

19세기 전반에 제작된 송광사 지도. 송광사으 연혁과 사적 및 법당.요사 등의 규모를 기록한 <송광사사적>에 실려 있는 가람의 배치도이다. 조계산의 연봉들을 마치 꽃이 활짝 핀 것과 같은 구도로 그리고 그 내부에 가람을 배치하였다. 산지의 기암 절벽과 수목, 그 사이를 흐르는 냇물이 회화적으로 표현되었다. 대웅전을 비롯한 가람의 배치가 매우 상세하며, 절의 북쪽의 많은 부도와 비가 유서 갚은 고찰임을 보여준다. <출처:규장각>


온양별궁전도, 1795년

충청도 온양 별궁의 모습을 그린 그림. 충청도 관찰사 이향원이 온양별궁에 영괴대를 설치한 내력을 기록한 책인 <영괴대기>의 앞 부분에 그려져 있다. 영괴대는 1760년에 사도세자가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은 것을 기념하여 세운 대의 이름이다. 중앙에 행궁의 정전과 온천이 보이고 좌측 상단에 영괴대가 위치해 있다. 별궁에 빽빽히 위치한 기와 및 초가의 각종 관청의 모습에서 온양별궁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규장각>


금오좌목, 1750년. 서울에 거의 남아 있지 않는 조선시대 관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1750년 4월 의금부에 모였던 도사 10인의 명단과 이들이 의금부 건물에서 회동한 모습을 기록한 그림. 의금부는 중부 견평방(현재의 종로 제일은행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의금부 관아의 배치상태 및 중앙의 마루에 채응일을 비롯한 도사 10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렸다. 관아의 주위에는 수양버들을 심었고, 관아의 뒤로는 연못이 보인다. 좌목에는 직책, 성명, 호, 출생연도, 사마시에 합격한 해, 본관을 적었다. <출처:규장각>


선형영정첩, 1793년

숙종에서 정조 연간에 활약한 고위 관리들의 초상화를 모아 놓은 화첩. 주로 영조.정조 연간에 판서 이상의 고위직을 역임한 인물들이 관복 차림을 한 모습을 그렸다. 1790년대를 기준으로 생존하지 않는 인물은 기존의 초상화를 모사한 것으로 보인다. 2첩으로 구성되었으며 첫째 화첩에는 이여, 김재노, 유척기 등 14명, 두번째  화첩에는 허목, 권대운, 목내선 등 10명의 초상화가 실려 있다. 초상화 우측 상부에는 그련진 인물의 성명과 관직명이 쓰여져 있다. <출처:규장각>


평생풍속도.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기는 하나 평생도는 개인들이 많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그림 중 하나이다.


신자하서첩,

신위가 쓰고 그린 시문과 그림을 모아 엮은 서화첩. 신위는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로 자는 한수, 호는 자하.경수당, 본관은 평산이다. 본첩에는 매화와 난초 그림 2점, 칠언절구 4수, 칠언고시 1수, 문장 1편, "영정치원, 담박명지"가 실려 있다. 전시한 면은 매화를 그리 수목화로 여백에 "세외선향"과 "청하"가 쓰여져 있다. <출처:규장각>

규장각 소장 회화자료
규장각에는 각종 기록화, 인물화, 산수화, 풍속화 등이 남아 있다. 이들 회화 자료는 대부분 궁중의 화원들이 국가적 행사 등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린 것이다. 현재 소장되어 있는 회화 자료들은 식물이나 광물에서 채취한 천연 물감을 사용하여 그렸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색감을 유지하고 있어 그 가치가 빛난다. 기록화는 국가적 행사나 역사적 사건 등을 기념하기 위하여 사실에 입각하여 충실하기 그린 그림을 말한다. 각종 왕실 관련 행사를 그린 진찬도, 반차도, 연회도, 능행도 등의 의궤 그림이나 사대부들 사이의 계모임을 그린 계회도 등이 이에 포함된다. 규장각에는 1572년 의주에서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모습을 그린 <의순관조영도>, 1760년 청계천 준설 공사를 마친 뒤 이를 기념하여 베푼 무예시험 장면을 그린 <준천시사열무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에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화성원행반차도>, 1817년 효명세자의 성균관 입학 의식을 그린 <익종대왕 입학도>, 서덩 등이 남대문 밖 남지에서 잔치하는 모습을 그린 <남지기로회도> 등이 소장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화들은 사진이나 비디오 카메라가 없었던 전통시대의 모습을 완벽하게 복원시켜주고 있다.